한국·스위스·대만, 헌법 개정에 '국민투표' 필수적
한국, 대통령만 부의 가능…스위스·대만은 국민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관련 국민투표를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 뉴시스 |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관한 대한민국의 입장을 국민투표로 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국민 스스로의 손으로 정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숙의하고 토론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부디 국민투표를 함께 요구해달라"고 호소했다. 용 의원은 국회 본회의가 열린 12일부터 이날까지 3일간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관련 국민투표 제안 호소 피케팅(팻말 시위)'을 진행했다.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이나 외교·국방·통일 등 중요한 국가안위사항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직접 확인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행 헌법상 국민투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필수적 국민투표(헌법 제130조),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대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정해진 임의적 국민투표(헌법 제72조)이다. 용 의원 제안은 헌법 72조에 근거한다. 국민투표의 절차나 구체적 사항은 국민투표법에서 정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국민투표가 실제로 실시된 것은 6차례다. 4차례는 박정희 정권, 2차례는 전두환 정권 때 헌법개정안 승인을 위해 이뤄졌다.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는 여태까지 모두 가결됐다. 외교·국방·통일 등 분야에서 국가 중대사안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시행된 적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국민투표가 시행되고 있다. 국민투표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나라는 스위스다. 가까운 나라로는 대만을 찾아볼 수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해 필수적으로 국민투표를 시행한다는 점은 한국·스위스·대만이 공통적이다.
◆가장 오랜 국민투표 역사를 지닌 스위스
스위스는 26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하나로 1848년부터 국민투표제를 실시했다. 스위스 국민투표제는 국민투표 사안과 부의 대상, 요건 등에 따라 필수적 국민투표, 선택적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투표로 구분된다. 이 중 국민이 부의권을 가지는 건 선택적, 국민발안 국민투표다.
선택적 국민투표는 100일 이내에 유권자 5만 명 이상 혹은 8개 주 이상의 요구가 접수되는 경우, 국민발안 국민투표는 18개월 이내에 유권자 10만 명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는 경우 시행된다. 선택적 국민투표는 연방법률 개정이나 국제기구 가입 사안 등이 안건이 된다. 국민발안 국민투표의 안건은 자유롭지만, 모든 내용이 다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연방헌법에는 연방의회가 국민발안의 통일성과 일관성, 국제 규정 위배 여부 등을 고려하여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연방내각과 연방의회가 국민발안 안건에 반대하는 경우, 원안의 대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
2021년 3월 7일(현지시간) '이슬람 부르카 착용 금지' 국민투표가 가결된 날 스위스 베른에서 "인종차별적 가부장제도 함께 사라졌다"는 팻말을 든 시위대의 모습. /AP.뉴시스 |
스위스에서는 매년 최대 4차례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마지막 국민투표는 지난해 9월 이뤄졌다. 당시 총 4개 안건이 올라왔는데, 국민발안 건은 '공장식 축산업 폐지' 찬성, 반대에 대한 것이었다. 결과는 반대 63%로 부결됐다.
올해 첫 국민투표는 오는 18일 진행된다. 두 개의 세법 개정안과 코로나19에 관련한 법 개정의 찬반 여부를 묻는다. 세법 관련 안건은 다국적 기업에 15%의 최저 법인세율 적용 여부, 가스·오일 난방 시스템을 보다 기후 친화적인 시스템으로 대체하기 위해 10년 동안 20억 스위스 프랑(약 2조 8200억 원)의 재정 지원을 제공하느냐다. 기존 코로나19 방역조치였던 백신 접종자 등에 대한 면역증명서 발급과 접촉자 추적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찬반 여부도 묻는다.
◆'후쿠시마산 수입금지 유지 동의하나' 국민투표 부쳤던 대만
대만 국민투표법(공민투표법)은 2003년 11월 제정됐다. 한국 정부에 해당하는 행정원,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 그리고 국민이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다. 주로 4년에 한 번인 총통선거나 입법원 선거와 함께 실시된다.
2018년 1월 3일 개정된 공민투표법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유권자 수 0.01%가 모이면 투표에 상정할 안건에 대해 서명을 시작할 수 있고, 1.5%의 서명을 얻으면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전체 유권자의 25%가 참가해야 결과가 유효하고, 25% 이하면 투표 자체가 무효가 된다. 2018년 기준 안건 제안은 1879인 이상, 안건 상정을 위한 서명 요건은 28만1745명이 됐다. 국민투표 유권자의 25%에 해당하는 유효 투표수는 약 493만 표다.
대만 정부는 2022년 2월 8일 후쿠시마와 인근 4개 현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 /AP.뉴시스 |
국민투표에서 제시되는 안건은 다양하며 국가 정체성과 안보 등 중요한 이슈가 포함되기도 한다. 2018년 이전 국민투표안은 대부분 정당이나 총통이 발의했지만, 이후부터는 행정·입법부에 의한 국민투표보다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국민투표안이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11월 실시한 국민투표에서는 총 10개 안건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는데, 3개 건은 국민당이 7개 건이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 발의한 것이다.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문제도 2018년 국민투표에 부쳐진 적 있다. '후쿠시마와 인근 4개 현(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치바)의 농산물과 식품 수입금지 규제 유지에 동의하느냐'는 안건이었다. 당시 찬성 72.29%, 반대 20.70%로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됐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2022년 2월 8일 후쿠시마와 인근 4개 현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수입품 전량 대상으로 통관 검사를 진행하는 조건이다.
*참고자료
오창룡. 2022. '주요국 국민투표제도 비교와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지은주. 2019. '2018년 대만의 지방선거와 국민투표 분석'. 한국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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