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중국 견제 CPTPP 가입 위해 후쿠시마산 수입
한국도 가입 희망…日, 후쿠시마산 지렛대 삼을 수도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G7 정상회의 국가들과 초청국들의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 의사 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뉴시스 |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후쿠시마 시찰단 파견 과정에서 자주 언급된 나라는 대만이다. 지난해 3월, 11월 후쿠시마 시찰단 파견 전력이 있는 데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비교적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은 시찰단 파견 이전인 2022년 2월 8일 후쿠시마와 인근 4개 현(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치바)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허용한 나라기도 하다. 수입품 전량 대상으로 통관 검사를 진행하는 조건이다.
대만 정부가 후쿠시마산 수입 재개라는 결단을 내린 이유에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일본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CPTPP는 기존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국을 결정한다. 아·태 지역 11개국(일본,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이 참여한 다자간 무역협정인 CPTPP는 포괄적인 자유화 및 시장개방과 참여국간 무역 장벽 해소를 지향한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GDP의 13%, 교역액의 15%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 권역으로서 향후 확장 가능성도 크다.
2021년 2월 최초로 신규 가입을 신청한 영국은 지난해 6월 말 후쿠시마산 수입규제 철폐를 공식 선언했고, 올해 3월 말 CPTPP 가입 승인을 얻었다. 2021년 9월 대만도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가입을 신청했다. 대만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입 허용을 발표하며 "대만이 세계 통상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검사를 전제로 수입을 허용할 때라고 판단했다", "식품 수입 제한 조치 변경 후에도 국제 표준보다 더욱 엄격한 과학적 검사를 통해 국민의 식품 안전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국민들을 설득했다.
대만도 후쿠시마산 수입에 대한 부정 여론이 강했다. 2018년 11월 '후쿠시마와 4개 현의 농산물과 식품 수입금지 규제 유지 동의하느냐'는 안건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찬성 72.29%, 반대 20.70%로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됐다. 수입 허용 조치가 이뤄지기 직전인 2022년 1월 25일, 대만민의기금회(TPOF)가 1087명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조금 달랐다. 조사는 '대만과 일본의 관계 증진을 위해 정부의 엄격한 심사 하에 후쿠시마와 인근 4개 현 농산물 및 식품 수입을 개방하기로 결정한다면 지지하겠느냐'고 물었다. 결과는 54.6%는 '지지하지 않는다', 38.8%는 '지지한다'로 나타났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최근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주요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라며 대만해협에서의 군사 훈련을 비난했다. / AP=뉴시스 |
반대 여론은 과반으로 여전히 높았다. 그러나 조사 기관은 반대 여론이 점차 감소한 점을 들어 '전반적인 민의의 대전환'이라고 해석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대만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이다. "2021년 5월 대만이 코로나19 백신 부족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일본이 적시에 4백만 도스 이상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원조했고, 일본 아베 내각부터 현 기시다 내각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무력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차이잉원 정부가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에서 썼던 여론전도 영향을 줬다. 차이잉원 정부는 2021년 12월 국민투표에서 락토파민을 함유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계속 허용하는 데 대해 51%의 찬성표를 이끌어냈다. 정부는 미국 돼지고기 수입을 식품 안전 차원보다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방안으로 접근했다. 대만인들이 후쿠시마산 수입과 CPTPP 가입도 비슷한 사례로 판단해 지지 여론이 생겼단 분석이다. 실제로 수입 재개 이후 차이잉원 총통이나 집권당인 민진당 지지율에 큰 변동은 없었다. 그 해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대패했지만 주요 원인으로 후쿠시마산 수입재개가 꼽히진 않는다.
한국 정부도 대만처럼 CPTPP 가입을 희망한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가입 의사를 밝혔고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로 이어받았다. 2022년 3월 CPTPP 가입 신청 관련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수출시장 확보와 안정적 공급망 구축 등 경제적 효과와 함께 다자간 공조에 참여한다는 데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공청회에서 "시장 개방에 따른 교역 확대와 생산·투자·고용 증가로 실질 국내총생산(GDP) 0.33~0.35%, 소비자 후생 규모도 30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가입에 따른 경제효과는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결과적으론 국익에 부합해 추진하고 있단 얘기다.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에 있는 도쿄전력(TEPCO) 본사 앞에서 시위대가 '방사능 오염수 방류 반대' 손팻말을 들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다. / AP=뉴시스 |
문제는 일본이 대만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산 수입 금지 해제를 CPTPP 가입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현재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모든 수산물과 후쿠시마 등 15개 현의 쌀과 차, 버섯류 등 27개 품목의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협정에 가입하더라도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은 '아니다'라는 덴 변화가 없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관련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거듭 밝혀 왔다. 그러나 수출시장 다변화, 한미일 협력 등 대내외적 요인이 부각돼 CPTPP 가입에서 일본의 협조가 절실해진다면 양보나 태도 변화가 요구될 수도 있는 문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대만 수순'을 밟을 가능성에 대해 "외교 전략이 될 수 있고 그 평가는 나중 일이겠지만 국민 반감 정도는 대만과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권과 여론에 따라 일본에 대한 온도차가 컸던 한국과 달리 대만과 일본은 꾸준히 경제·민간 교류를 이어왔고, 일본에 50년간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아주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거부 반응도 별로 없는 게 대체적인 국민 정서"라면서다. 강 교수는 "일본은 중국을 의식해 대만에 많은 공을 들여왔는데, 사실상 과거사 문제를 다 내준 한국에 일본이 보이는 성의있는 조치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결국 일본 측 호응을 얼마나 이끌어내느냐가 정부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