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곳 중 20곳 '文 정부 임명 인사'
'대통령-기관장 임기 일치제'가 대안? "기관별로 특성 고려해야"
취임 2년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부의 국책연구기관 26곳 중 20명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인사가 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전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자세)를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조치하라."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취임 1년 차에도 국정 과제 추진에 속도가 나지 않자,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이른바 '알박기 인사'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국가 정책을 뒷받침하고 미래비전을 기획하는 윤석열 정부 국책연구기관의 기관장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인사가 10명 중 7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 연구를 수행해야 할 기관이 정부 기조와 엇박자를 내면서 국정 운영에 혼선을 키운다는 비판이 있는 반면, 독립성 침해라는 반발도 있다. 정치권에선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알박기 인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기관장 임기 일치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기관별 특성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임기와 기관장 임기를 맞추는 내용의 입법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3일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
◆26명 '文 임명 인사' 20명...'尹 정부 임명'은 4명
25일 기준 <더팩트?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기타 공공기관) 26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문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은 20명(76%)인 반면, 윤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은 현재 4명(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곳(에너지경제연구원, 국토연구원)은 현재 공석이다.
윤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기관장 4명이 임기를 남겨두고 중도 사임했다. 문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을 각각 지낸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황덕순 노동연구원장이 지난해 7월 자진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이 지난해 12월, 문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에 참여한 강현수 국토연구원원장이 지난 4월 돌연 물러났다.
김계홍 한국법제연구원장과 김홍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3년 임기를 모두 마치고 물러났다. 현재 재임 중인 20명 중 14명은 2021년 이후 취임해 임기가 최소 6개월 이상 남은 상태다. 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분과 위원을 지냈던 이태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문 정부 청와대에서 각각 중소벤처비서관과 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주현 산업연구원 원장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은 등은 여권의 사퇴 요구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기관장 추천, 의결 권한이 있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정해구 이사장도 내년 3월까지인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정 이사장은 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바 있다.
기관장은 버티기에 나서고, 정부는 이들을 외면하면서 국책연구기관이 사실상 '식물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이사장은 문 정부 시절 국무총리와 간담회 등을 통해 국정철학과 정책 과제를 공유했지만, 윤 정부 출범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반복되는 '알박기 인사' 논란..."기관별 특성 반영해 임명 절차·임기 정해야"
윤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이 '알박기 인사'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정치권에서도 공공기관장 선임 개선 방안이 화두가 됐다. 기관장 임기를 현행 3년에서 2년 6개월로 줄이고, 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에 맞추자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여야는 정책위의장 등이 참여한 '3+3 협의체'도 구성했지만 현재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는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해묵은 논란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해 구체화된 정책을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대통령과 뜻을 함께하는 기관장이 임용돼야 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계속되는 '정치적 임명'은 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업무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작의적으로 교체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특히 정부의 국책 과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국가 미래비전을 기획하는 국책연구기관의 특성상 더 첨예한 사안이다.
각 기관별로 특성과 역할이 다르므로 '정치적 임명'이 허용되는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한 뒤, 임기를 맞추는 게 필요해 보인다. 2018년 3월 13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오찬에 참석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정해구 당시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장. /뉴시스 |
국책연구기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전문가 의견도 엇갈렸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을 정부가 출연해서 운영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물론 국책연구기관이 10년 뒤도 내다보고 (연구) 하지만 당장 내년에 할 일들을 매년 예산을 받아 사업을 정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국정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정책의 집행과 결정은 행정부가 하도록 돼 있다. 행정부 수장으로 대통령을 뽑아서 5년 동안 '이렇게 가겠다'고 선택을 했으면 당연히 국책연구기관도 그쪽에 초점을 맞춰서 정책 개발을 해줘야 하고 그러려면 (기관장) 임기도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은 연구하는 곳이니 기본적으로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위치를 가져야 한다. 다만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기본적인 임무도 있긴 하다. 그래서 두 개의 지향이 많이 충돌해왔다"면서 "둘 중에 우선순위를 얘기하자면 독립성과 전문성이 먼저다. 결국 해당 분야 전문가로서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계속해서 정부에 비판할 수도 있고 보조도 할 수 있다. (정부와) 엇박자가 나는 게 훨씬 선진적이다. 결국 정부에서 (국책연구기관장을) 임명할 때는 수준이 되는 인물을 열심히 찾아 잘 모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기 일치제'에 대해선 "매우 작위적이고 퇴행적"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각 기관의 규모와 역할이 다르므로 기관 유형이나 특성별로 임명 절차와 임기를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권의 국정 수행 과제를 긴밀하게 뒷받침해야하므로 '정치적 임명'을 인정하는 '정부 밀착형 기관'과, 중립성을 보장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미래 비전을 설계하는 '국가 비전형 기관'으로 명확히 나눈다면 '기관장 알박기 인사' 논란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기관별로 '정치적 임명'과 기관장의 전문성을 우선으로 하는 인사가 명확한 모습이다. 전자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임명직 후보 명단을 공개하고 대통령 임기와 연계한 미국의 '플럼북(Plum book)' 제도가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8년 11월 발간한 '공공기관 임원 선임제도에 대한 소고'에 따르면 프랑스는 성과주의에 기초해 정치적 성향보다는 후보자의 능력과 경험 등이 중요한 임명 기준이며 임기를 보장받는 게 보편화 돼 있다고 한다. 영국도 2017년부터 기관과 직위의 특성에 따라 더 많은 중립성이 요구되는 경우엔 더 엄격한 심사과정을 적용하는 등 차등화된 임원 인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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