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도 확장 시도하며 "전직 대통령 흑역사 반복돼선 안돼"
민주당 "민주주의 퇴행,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필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아 추도식이 열린 봉하마을에는 정치권 인사들이 총집결했다. 여당은 '노무현 정신'을 말하면서 외연 확장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쇄신 요구가 분출했다. 이날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해=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맞아 김해 봉하마을에 총집결한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노무현 정신'을 강조했지만 메시지는 엇갈렸다. 지도부 리스크를 잠재운 국민의힘은 '통합'을 강조하며 외연 확장에 나섰다. '돈 봉투·김남국 코인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는 한편 '노무현 정신 계승'과 함께 강도 높은 쇄신 요구가 분출했다.
추도식은 이날 오후 봉하마을 묘역 인근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추도식에 입장하며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에 대한 흑역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면서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그는 "잘 아시는 것처럼 저는 바로 직전 대통령으로부터 엄청난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피해 당사자"라며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치 선진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흑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생각과 철학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하고 그에 대한 존중의 뜻을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제가 국민의힘 원내대표로서 대표 권한대행을 맡을 때도 추도식에 참석했고, 이번에 당 대표가 된 다음에도 참석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대표는 최근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이준석 대표가, 2021년에는 당시 당 대표 권한대행이었던 김 대표가 참석했다. 2020년에는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이 참석했다.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통합과 원칙의 가치'를 거론하면서도 여권의 현재 기조를 재확인했다. 윤희석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익에 반하는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으로 국민 분열이 초래되고 노 전 대통령께서 강조했던 '참여 민주주의'마저 돈으로 오염된 상황"이라면서 "그렇기에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이 꿈꾸셨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위해 청년의 희망을 짓밟거나 공정·정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권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가짜 뉴스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우려를 '반일 선동'으로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또 노조의 고용세습을 비판하며 '공정채용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최근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직 자녀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하며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김 대표와 함께 구자근 당 대표 비서실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윤희석 대변인 등이 함께했다. 총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중도층 사로잡기, 외연 확장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지난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추념식에 의원 전원 참석을 당부한 바 있다. 당일 김 대표는 추념식 참석에 이어 광주·전남 지역의 청년들과 간담회를 하며 적극 소통에 나섰다. 김 대표는 지난달 16일에 열린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도 윤재옥 원내대표와 함께 참석했다.
야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퇴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야권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퇴행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지도부는 봉하마을로 총출동했다. 이재명 대표와 함께 박광온 원내대표 등 주요 지도부와 당직자들이 참석했다. 개별적으로 추도식에 온 의원들도 100여 명에 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셨던 노무현 대통령께서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4년 됐다"면서 "민주주의가 다시 퇴행하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꿈꾸셨던 역사의 진보도 잠시 멈췄거나 과거로 일시 후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역사에 대한 노무현의 말씀과 믿음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며 "민주주의는 누구나 누릴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민주주의의 발전,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는 이 안타까운 현실 속에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훨씬 큰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며 자성과 함께 강도 높은 쇄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추도식에 앞서 박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겸손과 무한책임이라는 '노무현의 유산'을 잃어가고 있다"며 "당을 둘러싼 위기 앞에 겸허했는지 철저히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쇄신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높은 도덕성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라며 "엄격한 잣대로 '자기 개혁'을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윤건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앞에 서니 길을 찾지 못한 어수선한 우리 당 상황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며 "우리의 혁신은 내려놓을 각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민주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변화시킬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원욱 의원도 "대통령님이 우뚝 서 있는 민주당은 위기"라며 "연이은 선거 참패에도 여전히 국민을 보고 있지 못하다. '노무현 정신'을 말하면서 그 삶이 보여준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