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과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후쿠시마 오염수' 논의 없어
젤렌스키 대통령 만나 우크라이나 지원 약속
윤석열 대통령이 2박 3일 간의 G7 정상회의 데뷔전을 마쳤다. 21일 오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 /뉴시스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박3일 간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데뷔전을 마치고 21일 귀국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짧은 스탠딩 회담을 갖고 '새로운 수준의 3국 공조 발전'을 위한 네 번째 한미일 정상회담을 기약했다. 또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총리와 히로시마 원폭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경제·인도적 지원을 약속하는 등 국제사회 기여 방안도 밝혔다.
하지만 2주 만에 일본 정상과 마주한 자리에서도 국내 최대 관심사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는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또 한미일 정상회담도 2분 만에 종료돼 사실상 눈에 띄는 논의는 없었다. 이를 두고 야당은 "그림자에 그친 들러리 외교"라고 혹평했다.
◆한미일 "3국 공조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회담 '2분'에 그쳐
이번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방일 기간 가장 이목을 끈 일정은 21일 오후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이었다.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회담한 이후 6개월 만에 세 정상이 다시 만나는 것으로, 그동안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12년 만의 셔틀 외교 복원 등 3국 간 관계가 진전을 보이면서 북한 위협 대응과 경제안보 등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됐다.
이날 회담에서 세 정상은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에서 "정상들은 대북억지력 강화를 위해서는 물론,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3국 간 전략적 공조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며 "(이번 회담을 통해) 3국 간 공조를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와 같은 3자 안보협력, 인도·태평양 전략과 경제안보 등에 대한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의 노력으로 3국 간 연계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다만 이들 정상의 만남은 '2분' 간의 짧은 스탠딩 회담에 그쳤다. 대통령실도 사전에 짧은 회담을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짧은 시간에 여러 나라들이 여러 미팅을 갖다 보니까 길게 앉아서 얘기할 시간이 없어서 서로 발표할 문안과 내용을 이미 조율했다"고 말했다.
짧은 만남 대신 세 정상은 네 번째 한미일 회담을 기약했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미국 워싱턴DC로 초청했다. 양국 정상이 공식적인 국제회의를 제외하고 나란히 미국을 찾는 것은 이례적이다. 향후 워싱턴에서 한미일 회담이 열리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미일 정상회담 당시에는 '프놈펜 성명'을 통해 '북한 미사일 경보 실시간 공유' 등에 합의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북한 핵 억지력 강화를 위한 한미일 신규 협의체 창설에 대한 논의도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바이든 대통령의 평가와 미국 초청 제안을 두고 윤 대통령의 외교 성과라고 자평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대승적 결단을 통한 셔틀외교의 복원은 물론, 강력한 한미일 공조를 이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미국으로 초청했다고 한다. 네 번째 한미일 정상회담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행동으로 사과" vs "들러리 외교"
대통령실이 이번 방일 기간 중점을 둔 일정은 기시다 총리와의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다. 윤 대통령 부부는 방일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 7시 30분께 기시다 총리 부부와 함께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약 10초간 묵념했다. 이번 공동 참배는 지난 5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제안한 것으로, 한국 대통령이 위령비를 찾은 것도 한일 정상이 공동 참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참배에 앞서 지난 19일 저녁 히로시마 동포 원폭 피해자를 만나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히로시마 원폭 당시 한국인 희생자 중 다수가 인근의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동양공업주식회사 등에서 일하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시다 총리의 참배가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도 이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에 대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추모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우리 총리님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위령비 공동 참배에 대해 "양국 관계에 있어서도 그리고 세계 평화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현지 브리핑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국 정상의 공동 참배에 대해 "그동안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 왔다면, 이번에는 두 정상이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일 정상은 또 35분간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히로시마를 포함한 직항로 재개, 공급망과 첨단기술 협력 진전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의 원활한 운영 등을 제기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은 밝혔다.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은 양국 경제 단체가 청년들의 교류를 촉진하고 반도체 공급망 등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마련하기로 한 공동 기금이다. 한-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각각 10억 원씩 총 20억 원 규모를 조성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국내 기업 중심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을 발표하면서 일본 기업의 참여도 기대했지만, 일본 측은 현재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만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다만 2주일 전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대로,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된 한국 측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이 이날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들 시찰단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적정한지 22일부터 25일까지 오염수 정화 및 처리 과정 등을 점검하고 26일 귀국할 예정이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 행보에 대해 "'퍼주기 외교'를 넘어 '들러리 외교'"라고 혹평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도 "위령비 참배가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과 행동이라는 대통령실의 인식은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궤변"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일본 총리가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데 무슨 실천이고 행동이 있을 수 있나"라며 "강제동원,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해결하기 위한 행동과 실천은 오직 일본 정부의 사과, 책임, 보상"이라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또 윤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침묵했다며 "일본의 후쿠시마 홍보에 조연으로 머물렀다"고 혹평했다.
윤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우크라이나 지원을 약속했다.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악수하는 윤 대통령. /뉴시스 |
◆우크라이나 비살상무기 지원 검토..."국제사회 공조로 북한 인권 해결 나서"
윤 대통령은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영국, 코모로, 이탈리아 총리 등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에 지뢰제거 장비와 긴급후송차량 등은 물론 우크라이나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의 지원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에 돌아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지뢰 제거 장비와 의료용 구급차를 좀 요청하고 있어서 먼저 그 부분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서 신속하게 지원할 생각이다. 비살상용 무기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일부 목록을 줬는데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확대회의에서 식량과 보건 분야 기여 방안을 밝히고 북한 위협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규탄 메시지도 냈다.
윤 대통령은 확대회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세션을 통해 식량위기국가에 매년 쌀 5만 톤 지원한 것을 내년에는 2배 늘리고, 신종 감염병 백신 연구 개발을 위한 '감염병혁신연합'에 공여금 규모를 현행 300만 불에서 올해는 8배 늘린 2400만 불 규모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날 열린 세 번째 세션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유엔안보리 결의에 대한 정면 위반으로서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북한 정권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 또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사회가 더 이상 이를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와 번영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규탄하고 강력 대응을 경고했다. G7 정상들은 전날(20일)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추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자제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포기해야한다"고 했다. 또 "무모한 행동은 반드시 신속하고 단일하며 강력한 국제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이에 대해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지난 문(文)정권 5년간 정작 우리 정부가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점, 목소리조차 내지 않은 데 대해 오히려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5년 만에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복귀했고, 국제사회와의 공고한 공조를 통해 북한 인권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과 대비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