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소폭' 인상…尹정부도 못 피한 '요금의 정치화'
입력: 2023.05.16 00:00 / 수정: 2023.05.16 00:00

2분기 요금인상 시점 미루다 발표
총선 앞두고 하반기 요금 인상 불투명


정부가 2분기 전기와 가스요금을 인상해 4인 가구 기준 월 7400원이 오를 전망이다. 2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정부가 2분기 전기와 가스요금을 인상해 4인 가구 기준 월 7400원이 오를 전망이다. 2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오는 16일부터 전기·가스요금이 4인 가구 기준 월 7400원 오를 전망이다. 2분기 절반이 지나서야 인상안을 내놓은 데다, 소관 부처 요구보다 낮은 인상폭이다. 내년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임기 내 단계적 요금 현실화' 목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도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공요금 조정이 정치적 상황에 좌우되는 '요금의 정치화'를 피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8원, 도시가스요금은 메가줄(MJ)당 1.04원 인상하는 '전기·가스요금 조정방안'을 발표했다. 4인 가구 기준(전력 사용량 332kWh, 가스 사용량 3,861MJ 가정) 전기요금은 월 약 3000원, 가스요금은 4400원 늘어나는 꼴이다.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의 누적 적자와 미수금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점을 인상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은 2021년부터 2년간 38조5000억 원의 누적 영업적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6조2000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지난해보다 3조 원 늘어 1분기 기준 약 11조6000억 원이다. 앞서 한전과 가스공사는 임원 임금 인상분 반납과 서울 소재 핵심 자산 매각 등 재정 건전화 방안 포함해 각각 25조7000억, 15조4000억의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여건이 계속 악화하면 안정적인 전력 구매와 가스 도입이 쉽지 않아 에너지산업 생태계와 금융시장에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인상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막판 전기 요금을 인상한 데 대해 나쁜 정부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정부 출범 이후에는 요금의 단계적 현실화 목표에 맞춰 분기마다 요금 인상해왔다. 2022년 1월 13일 전기요금 관련 공약 발표하는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더팩트 DB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막판 전기 요금을 인상한 데 대해 "나쁜 정부"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정부 출범 이후에는 '요금의 단계적 현실화' 목표에 맞춰 분기마다 요금 인상해왔다. 2022년 1월 13일 전기요금 관련 공약 발표하는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더팩트 DB

윤석열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미뤄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비판하면서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밝혀왔다. '올해 경제정책방향'에도 에너지 공기업의 누적적자・미수금이 오는 2026년까지 해소되도록 '전기·가스요금의 단계적 현실화'를 목표로 담았다. 실제로 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해 3분기부터 분기마다 전기요금을 올렸고, 가스요금은 지난 1분기에만 동결했다.

하지만 이번 인상 폭은 소관 부처와 업계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한전이 재무위기 개선을 위해 국회에 제출한 올해 연간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은 ㎾h당 52.4원이다. 지난 1분기 때처럼 분기별로 ㎾h당 13.1원은 인상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제한적 인상'은 예고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은 서민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요금 인상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춰 정부·여당도 지난 3월 서민 가계 부담 등을 이유로 전기·가스요금 인상 시점을 미뤄왔다. 정치권 안팎에선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하는 대통령실과 여권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당은 벌써 '요금 폭탄' 공세에 돌입했다. 홍성국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고단한 생계를 이어가는 국민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앞으로 집집마다 날아드는 것은 요금 폭탄 고지서로 끝나지 않는다. 가처분소득의 급감, 영업장 존폐의 위기는 어떻게 할 건가"라고 맹비판했다.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이번 인상안의 배경도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식' 축사에서 "지난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국제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한전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누적되면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최근 강경성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으로 교체되고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이 사임한 것도 요금 인상을 앞두고 국민 여론을 고려해 책임을 묻기 위한 '경질성 인사'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문제는 하반기다. 2분기에 소폭 인상에 그치면서 목표를 맞추려면 하반기 요금 인상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지만 총선이 임박해 여권이 지금보다 '여론 눈치 보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연내 추가 인상 계획'에 대해 "현재로서는 예단하고 있지 않다"면서 "글로벌 에너지 가격 동향,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상황 개선 정도 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창양 장관도 지난 11일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지금 한전의 누적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선 그(올해 총 kWh당 52원)정도 인상요인이 있다"면서도 "단기간에 (목표만큼 인상하는 것을)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고 한 바 있다.

정부는 정권마다 반복되는 '요금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정치적 요인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요금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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