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가치로 묶인 나라들, 경제 부분선 러시아와 협력"
"尹, 조급함에 국익·과거사 놓쳐…국회의 공간 열어놓길"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 1년 외교에 대해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정세의 엄중함에 비해 지금 정부는 역사상 가장 단순한 외교를 하고 있다"고 총평하며 "외교라는 초당파적 분야에서조차 야당은 고사하고 국회의 공간 자체를 열어두지 않는 것도 현 정부의 문제점"이라고 짚었다. 이 의원이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회=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채원 기자] "대한민국이 한미일 동맹 틀 안의 조연이기보다는, 복잡한 외교 지형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주빈이었으면 좋겠다. 국회도 충분히 돕겠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 1년 외교에 대해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정세의 엄중함에 비해 지금 정부는 역사상 가장 단순한 외교를 하고 있다"고 총평했다. "진영 논리에 갇혀 한쪽 편에 서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말 암울해질 것"이라면서다. 재선인 이 의원은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다.
이 의원은 "미중 갈등만 해도 그 양상이 1년 전, 몇 달 전, 현재가 다르고 미국 조야의 인식도 각각 다르다"며 "정작 세계는 미중 전략경쟁보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현안으로 예의주시하고 있고, 가치에서 다른 진영으로 분류되는 나라들끼리도 에너지 무기화에 대비한 수입 다변화 과정에서는 협업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국익은 다양한 축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원칙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는 '투트랙 외교', '쓰리트랙 외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외 정상외교에 나설 때마다 이는 '빈손 외교', '자질 부족' 논란에 대해 "호언장담했던 한미동맹 복원, 한일관계 개선을 1년 안에 이뤄내야 한다, 형식적인 결과물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빈방미와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 받았던 G7 참석 자체가 결승점인 것처럼 내달리다 보니 미국의 이익과 맞물렸고, 한일 과거사 문제 등 상당 부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그는 "외교라는 초당파적 분야에서조차 야당은 고사하고 국회의 공간 자체를 열어두지 않는 것도 현 정부의 문제점"이라며 "속도전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보수·진보 세력이 외교를 바라보는 전통이나 시야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충분히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이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지난 국빈방미에 대해 "우리는 형식 외의 유의미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 상대방은 형식을 만들어준 댓가로 무언가 얻어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영무 기자 |
- 연이은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총평은.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에서는 국빈방미나 워싱턴 선언, 한일정상회담에선 '12년 만의 답방'이라는 형식 면에서의 성과를 부각하고 자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형식도 국가 간의 만남에서 유의미하고 우리 대통령이 국격에 맞게 대접받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건 내용이 뒤따라 줄 때 얘기다. 외교는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염려스럽다. 우리는 형식 외의 유의미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 상대방은 형식을 만들어준 댓가로 무언가 얻어갔을 거다.
- 성과라고 할 만한 일이 없었다고 보나.
워싱턴 선언엔 기존과 획기적으로 달라진 내용이 없다고 본다. 한미공동선언에도 우리 기업 이익과 직결된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었던 도청 문제도 알아서 변명했다. 전략자산 전개를 통한 확장억제 강화라고 하지만 핵잠수함은 은밀히 활용될 때 가치가 빛나는 무기다. 핵잠수함에 탑재한다는 미사일 사거리가 최대 1만 2000km인 점을 고려하면 굳이 남한 가까이에 전개하는 게 군사적 효과나 의미 면에서 기존과 달라진 게 있는가도 지적하고 싶다.
정부가 과거사에 '통큰 양보'를 한 만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답방 기대치는 윤 대통령 방일보다 훨씬 높았다.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복원은 사과받으면서 돼야 할 일이지 성과가 결코 아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회고록에서 2018년 한국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음을 인정한 만큼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WTO에서 한국 승소가 유력했다. 기시다 총리의 '사과인 듯 사과 같은 사과 아닌 개인적 유감' 역시 우리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이 의원이 지난 9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
- 한일관계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을 우리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밝혀낸 내용만 해도 과정 상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최근엔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전력이 바다로 방류하려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측정·평가 대상 핵종을 기존 64개에서 30개로 재선정했는데, 도쿄전력 상당수 자료에선 7개 핵종에 대한 데이터만을 공개·수록하고 있다. 오염수 내에 포함될 수 있는 모든 핵종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해도 안심하지 못할 판인데, 안전점증 절차를 간소화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도쿄전력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외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제3자 검증을 의뢰한 기관의 경우 핵종 측정, 평가 능력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듯 과정에서부터 대한민국 국민 뿐 아니라 일본의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과정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면 불완전한 것이다. 기존 한국 외교의 노력이 부족했던 측면도 있지만 지금 정부도 일본에 확실한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 노선에 대해 "미국과 가치적으로는 한데 묶여 있을 것 같은 나라들조차 다양한 경제적 실리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임영무 기자 |
- 신냉전 구도가 뚜렷해지면서 '안미경중'과 같은 균형 외교는 수명을 다했다는 관측도 있다.
일단 안미경중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때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국제관계는 동적이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외교는 실리가 있는 곳에 명분을 갖고 가는거다. 지금 외교적·경제 상황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 때로는 안보는 미국 아닌 프랑스나 독일과, 경제는 중국 아닌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 외교에선 고정된 시각으로 가치를 교조화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과 가치적으로는 한데 묶여 있을 것 같은 나라들조차 다양한 경제적 실리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항해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일본도 작년 한 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더 늘렸다. 작년까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미 노선을 택했던 베트남도 한편으론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논의했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에 단호하게 규탄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 밖의 것들까지 일렬로 줄 세워놓고 한쪽편에만 설 필요가 있나. 우리 정부가 투트랙, 쓰리트랙을 모른다는 게 가장 염려된다.
- 야당 외통위 간사로서 대안을 갖고 있나
한국이 중심이 되는 다자외교다. 의원외교를 통해 느꼈던 것은 미국과 가까이 있는 캐나다가 중국을 대하는 인식, 미국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굉장히 유사하다. 캐나다도 아무리 동맹이고 가치를 공유한다 해도 한쪽 패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국제적 연대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프랑스, 독일 등 중견국들과의 다자외교로 패권에 대응하고, 세계 질서를 리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의원외교를 하다보면 한국이 경제, 문화수준 등 측면에서 다자외교 전선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것도 느낀다. 어려운 시기지만 한국에 대한 위상이나 호감도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해 적극 외교, 우리 중심 외교를 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국회 외통위 야당 간사인 이 의원은 "여야 외통위원들이 의정활동을 통해 정상회담 전에 점검을 제대로 했다면 회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라며 "속도전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보수·진보 세력이 외교를 바라보는 전통이나 시야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충분히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임영무 기자 |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외교에서 '국회의 공간'을 열어놓길 바란다. 야당 외통위 간사인 나조차 정상급 회담 소식을 언론을 통해 하는 데다 자료를 요청하면 숨기기 바쁘다. 사전·사후 보고도 없는 실정이다. 적어도 전임 정부에선 그렇지 않았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비밀 사항이라도 야당과 정보를 공유했다. 물론 전임 정부에서 국민적 지탄을 받을 만한 외교 협상이 없었다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상임위를 개최해 비판 받을 건 비판 받고 해명할 건 해명하며 설득해나가는 완충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당이 외통위 상임위를 여는 데조차 대통령실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여야 외통위원들이 의정활동을 통해 정상회담 전에 점검을 제대로 했다면 회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한일 과거사 문제도 야당을 끌어들여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위한 초당적 논의체' 같은 걸 만들 수도 있었다. 문 대통령을 의식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G7 시간표'에 조급해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끌고 갈 여지는 충분했다.
☞이재정 의원은 누구? 1974년생. 경북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언론위원회에서 공익변호사로 활동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2020년 21대 총선에선 국회 경기 안양시동안구을에 출마해 재선됐다. 2020년 6월부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2022년 8월부터 외통위 간사를 맡고 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