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기호 "한일 관계, 한중·한미와 달라…해결 아닌 관리해야"
입력: 2023.04.23 00:00 / 수정: 2023.04.25 09:08

"기시다 내각, 주변국 의식한다는 인상"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물러서지 말아야"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인간적 관계를 맺어두면 쌍방이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통 큰 양보가 한일관계의 해빙 분위기를 조성한 건 분명하고, 130여개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줄어든 부분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지난 21일 서울 구로 성공회대학교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양 교수. /구로=임영무 기자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인간적 관계를 맺어두면 쌍방이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통 큰 양보가 한일관계의 해빙 분위기를 조성한 건 분명하고, 130여개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줄어든 부분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지난 21일 서울 구로 성공회대학교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양 교수. /구로=임영무 기자

[더팩트ㅣ구로=조채원 기자] "통큰 양보로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진정성은 믿는다. 그런데 현실을 못 보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21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한미, 한중관계와는 달리 역사, 영토 문제 등 곳곳에 갈등 요소가 있다. 최근 양자 간 인식 차로 충돌이 더욱 격화하는 상황"이라며 "한일 갈등은 단숨에 해결하기보다는 세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치외교 전문가인 양 교수는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주고베총영사를 지냈다.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서는 "일본 우파적 세계관이나 외교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접근했다"며 "철저한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기본 전제로 하는데 일본은 극히 일부 진보적인 학자를 제외하곤 1910년 한일합병을 합법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제3자 변제안에는 일본 측의 사죄, 배상 참여가 빠져있다. 일본이 '드디어 한국이 한일합병의 합법성을 인정했구나'로 받아들인 이상, 어떤 추가 호응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겠느냐는 얘기다.

양 교수는 "일본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을 때 하나를 되돌려주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사회 윤리와 외교 논리는 다르다"며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인간적 관계를 맺어두면 쌍방이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통 큰 양보가 한일관계의 해빙 분위기를 조성한 건 분명하고, 130여개 전범 기업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줄어든 부분은 성과"라면서도 "속도 조절, 지속적인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한일 과거사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일까. 양 교수는 "40~50년이 지나면 어떨 지 몰라도 현 세대의 벌어진 인식 차를 금방 좁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정반대 흐름으로 가고 있지만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많은 노력의 결과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노력의 결과물'로 1992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2010년 나오토 담화 등을 들었다. 식민 지배의 강제성·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일관된 외교 기조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무라야마 담화),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식민지배'(나오토 담화)라는 내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다.

양 교수는 "역사를 뛰어넘은 화해의 기제들을 만들어 온 만큼 한일 양국이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한일 양국 정부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일정책 기조를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시다 총리가 최근 야스쿠니 신사 춘계 대예제를 맞아 공물을 헌납한 것에 대해 양 교수는 봄·가을 예대제보다는 8월 15일, 패전일이 더 상징적인 날이라 더 지켜볼 필요는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기시다 총리가 최근 야스쿠니 신사 춘계 대예제를 맞아 공물을 헌납한 것에 대해 양 교수는 "봄·가을 예대제보다는 8월 15일, 패전일이 더 상징적인 날이라 더 지켜볼 필요는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다음은 양 교수와의 일문일답.

-기시다 총리가 21일 야스쿠니 신사 춘계 대예제(봄 제사)를 맞아 공물을 헌납했고, 약 90명의 일본 여야 국회의원들이 신사에 집단 참배했다. 우리가 바라는 '성의 있는 호응'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야스쿠니 신사엔 A급 전범과 260만 명 명단이 신으로 모셔져 있다. 조선인 가운데 일본군, 군속(군 공무원) 등으로 끌려가 사망하신 분들도 2만 명 넘게 있다. 한국과 중국이 가장 크게 문제 삼는 것은 일본 정치인들이 'A급 전범'들을 추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1943년 조선인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시기 조선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와 30만 명이 학살(중국 정부 추정)된 것으로 알려진 난징대학살에 관여한 히로다 코기, 무토 아키라, 마츠이 이와네 등이 A급 전범에 속한다. 공물을 바치건 참배를 하건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중국은 이 문제에 더 강경한 편이다.

그나마 기시다 내각에서 주변국을 의식해 어느 정도 조절되고, 자정작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기시다 총리 자신이 그나마 자민당 여러 파벌 중에서도 자유주의적이고 주변국과 협력이란 지향점이 분명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외무상, 관방장관 같은 내각 주요 인사들이 참배하지 않았다는 점, 100명 넘는 의원들이 집단 참배해왔던 이전에 비하면 수도 비교적 적다. 그렇지만 봄·가을 예대제보다는 8월 15일, 패전일이 더 상징적인 날이라 더 지켜볼 필요는 있어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총리 취임 전에는 참배도, 공물 봉납도 하지 않았다는데.

일본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유족 모임이 있는데 이들은 자민당 우파의 굉장히 중요한 지지기반이다. 이런 집단이나 일본의 우파, 자민당을 지지하는 보수 집단 등은 야스쿠니 참배 여부로 보수 정치가로서의 자격이 유무를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총리가 되면 '표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지금 기시다 총리는 아무래도 우익 세력이나 자민당 내 아베파에 좀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공물 헌납이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일본 내에서도 A급 전범들을 별도로 합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기는 했다. 분리 합사가 이뤄지면 한국·중국을 자극할 요소가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큰 진전은 없었다.

-곧 있을 선거 때문이라면, 선거 후에도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운가.

일본 정부는 1910년 한일합병을 합법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 사회가 최근 4~5년 사이 급격히 우경화된 탓도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따른 위안부 합의의 유명무실화 △미일 동맹 강화 △ 중국의 해양 진출에 따 중일 갈등 심화 등이 원인로 꼽힌다. 대내적으론 일본 경제나 사회 전반의 침체 분위기, 한류문화 붐에 대한 선망 등도 겹쳐졌다고 보고 있다.

일본 사회 우경화를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는 아사히 신문 부수가 크게 줄어든 것을 들 수 있다. 한 해 사이 150만부 정도 줄었는데 굉장히 큰 수치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등 일본 내 진보 성향 매체로 꼽히는데, 이런 관점을 일본 국민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부수가 너무 줄어 아사히 신문 기자들 연봉도 깎였다. 이런 분위기면 일본 언론도 과거사에 대한 진보적 관점을 언급하는 데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가 21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가 21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일본의 대한외교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할 수 있을 때 갈 데까지 가면서 선례를 만드는 거다. 올해 2월 중순 나루히토 일왕 생일 기념행사 때 처음 기미가요를 틀었을 때 느꼈다. 일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초, 임기말 정책 기조 변화가 있을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너무 잘 안다. 문재인 정부 때 화해치유재단 해산도, 윤석열 대통령이 제3자 변제안에서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다 마찬가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면 '선례가 있었는데 한국 약속을 위반했다'며 우리 책임으로 몰아세울 거다. 저쪽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지점이 분명한데, 우린 그게 없이 왔다갔다 하는 게 문제다.

-과거사 문제 외에도 한일 갈등 현안이 산적해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오염수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우리 국민 기준에서 안전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서선 안 된다. 건강 주권·해양 주권 문제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기준이 어떻건 우리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 국민이 맞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일본 국민들조차 자국 내 오염수 처리와 방류에 대해 상당 부분 의심하고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 차원에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규모 있는 탱크를 몇 개 더 건설하면 최소 10년 이상은 더 오염수를 보관할 수 있다. '공간이 없다'는 일본 주장은 거짓이다. 10년 동안 한중일이 이 오염수를 완전히 처리수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한중일 국민들도 결과에 납득할 수 있고, 한중일 간 공동협력 공간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일외교에 대해 정부에 조언한다면.

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배경은 북한의 고도화된 핵·미사일 능력이 한국 방위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한미동맹이 3이라면 미일동맹에 7정도 비중을 둔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한미 관계, 한미일 공조 강화 프레임에만 계속 발을 내딛고 들어가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국민복리에 직접적인 사안도 막아내기 힘들 수 있다. 동북아에서 한국이 어떻게 해야 최대 국익을 취할 수 있느냐, 평화와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느냐, 국내 여론이 어떤가 등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한일 관계가 지금 너무 경색 국면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양보해 풀어나가자는 의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대일외교에 대한 강한 반발 여론이 계속되면 결국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여당이 다음 총선에서 참패하기라도 하면 정부 집권 3년만에 레임덕이 온다. 반면 일본은 잘 바뀌지 않는 만큼 느긋하다. 그때부턴 정부가 무슨 얘길 해도 상대하지 않고 차기 정부를 카운터파트로 여기고 기다릴 거다. 냉혹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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