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장시간 토론 끝에 대응 방침 결정
늑장 대응 지적엔 "실체적 진실 파악 오래 걸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사과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 오갔다는 이른바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공식 수사 요청한다고 17일 밝혔다. 핵심 인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조기 귀국도 요청했다. 관련해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 5일 만의 조치다. 수사를 통해 민주당 의원 다수가 사법 처리되면 총선을 앞두고 파장도 커질 전망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준비된 원고를 꺼내 읽으며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당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한 뒤, 홀로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앞서 검찰이 지난 12일 '돈 봉투 의혹' 혐의를 받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지 5일 만이다. 검찰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송 전 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 국회의원 10여 명 등에게 총 9400만 원을 전달한 정황을 잡고 수사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이어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그 일환으로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돈 봉투' 의혹이 일자 당 안팎에선 송 전 대표가 하루빨리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송 전 대표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개인적 일탈'이라며 조기 귀국설을 일축한 바 있다.
민주당은 또 당초 당 차원의 진상 규명 실시 방침을 밝혔으나, 수사기관에 수사 요청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대표는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을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했다. 당 차원의 진상 규명이 '셀프 조사'라는 지적이 일자 과거 '한나라당 돈 봉투 사태' 당시 조치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한나라당 수사 의뢰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수사 47일 만에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관련자 3명을 불구속기소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 할 것이고,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 재발방지책도 마련하겠다"며 "민주 공화정을 무한 책임져야 할 대한민국의 공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와 실망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밝혔다.
당내에선 당 자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금 이걸 수사기관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당내에서도 가차 없이 검찰의 수사보다도 사실은 더 강하게 더 세게 더 샅샅이 해줄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해서 조사에 나서야 한다"면서 "그래야 민주당 내에 자정 기능이 발휘될 수 있지 그냥 검찰수사에만 맡겨놓으면 이건 자정기능도 없는 그냥 속수무책의 당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검찰의 수사 경력이나 경찰 수사 경력이 있는 분들을 외부에서 초빙을 해서라도 그런 기구를 만들어서 검찰 수사보다도 더 세게 성역 없이 그리고 전반적으로 다 조사를 하고 훑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필요할 경우 자체 진상규명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7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는 이 대표. /이새롬 기자 |
이에 대해 권칠승 수석 대변인은 "필요한 상황이 생기고 구체화되고 당에서 확인 필요성이 있다면 추후 검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전날(16일) 밤 격론 끝에 수사 요청 방침으로 결론을 모았다고 한다. 권 수석 대변인은 "어젯밤 굉장히 오랫동안 토론과 고민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체조사가 여러 상황상 여의치 않다는 판단, 실효성 있는 평가를 내는 게 가능하겠냐는 판단이 있었다"며 "셀프조사하는 건 셀프 면책 길로 가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있어서 그런 논란들 자체가 실체적 진실 규명에 방해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에는 "처음에는 사건 개요 자체가 확인할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이 사건 유일한 근거로 보이는 녹취록을 녹음한 사람 자체가 구속 상태이기 때문에 접근 불가능하고 그래서 당 입장에서 실체적 진실 접근이 원천 봉쇄돼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공식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향후 대응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돈 봉투 의혹' 관련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 불체포특권을 두고 '일관성 논란'도 지적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앞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와 배임 및 제3자 뇌물죄 혐의를 받는 노웅래 의원, 이 대표에 대해 '야당 탄압'이라며 체포동의안을 부결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경우에 따라서는 이랬다저랬다 하고 이재명 대표 건도 그랬었다. 그런 당의 태도에 대해서는 국민적 비판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 부실 대응, 김건희 여사 광폭 행보 등에 대해 낮은 수위로 비판했다. 마지막 순서로 모두발언한 이 대표는 "대통령실이 한미 정보 공유대상에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윤석열 정권의 퍼주기 외교에 고무돼서 독도에 대한 야욕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이다.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부정하는 국가와 정보동맹 군사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정보군사주권을 외통수로 모는 패착을 둬선 안 된다"며 "일본과의 묻지마 군사협력 강화, 전면 재검토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에 대해선 "정부는 미국의 잘못을 분명히 바로잡고 국익을 당당하게 지켜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며 미 도청 의혹 강력한 항의와 재발 방지 대책,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 해법 모색, 전쟁무기 지원 불가 원칙 전달 등 3대 의제를 관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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