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전원위'엔 없고 '오영환'에겐 있었던 것?...'진정성'
"현장 돌아가겠다"는 오 의원 불출마...'공무원 합격길' 응원
1988년생 오영환(경기 의정부시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22대 총선을 1년 남기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현역 의원 가운데 두 번째다.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긴 고민 끝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제22대 총선이 1년 남은 날이었다. 1988년생 오영환(경기 의정부시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현역 의원 가운데 두 번째다.
오 의원은 불출마 이유로 21대 국회 임기 동안 '절망감'과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3명의 소방관 순직과 영결식이 끝난 뒤,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발 늦은 현실에 절망했다"며 "지난달 또 한 명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으며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한계를 받아들였다고"고 말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 동안 현장에서 스러진 소방관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오 의원의 불출마 결정은 당 차원에서 상의된 바 없으며 본인의 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고백에도 정치권에선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여러 설이 나왔다. 일단 이낙연 전 대표가 장인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오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며 일종의 '배후설'이 등장했다. 또 오 의원이 출마 전 지역구 의원이었던 문희상 전 의원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기 위해 일찍이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다수였다.
이런 이유들이 아니라면 왜 오 의원이 '멀쩡한 금배지를 버리겠느냐'는 시선이 기저에 깔려있을 거라고 본다. 정치권 내 '구태의연한 전통'을 고려하면 가능성 없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치 신인의 행동에 '뒤에서 누군가 조종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이젠 좀 '라떼는'(나때는) 스럽지 않나 싶다.
비례도 아닌 지역구 의원인 오 의원이 다음 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스스로 멈출 용기를 낸 것은 'MZ세대'스러운 결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국회의원이라는 특권과 '헤어질 결심'을 한 오 의원을 향해 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오 의원이 '대한민국 소방관'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여의도를 떠나겠다는 소신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는 평가다. 정치권의 경우, 한번 발을 들이면 '금배지'를 달기 위해 혹은 재선·삼선을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던 기성 정치인들과 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분명 비교되는 모습이다.
오 의원이 '대한민국 소방관'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여의도를 떠나겠다는 소신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는 평가다. 정치권의 경우, 한번 발을 들이면 '금배지'를 달기 위해 혹은 재선·삼선을 하기 위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던 기성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남윤호 기자 |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민주당 의원 중 누가 괜찮은지'를 물으면 오 의원은 상위권 순위에 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당 원내대변인을 도맡아 국회 현안들과 관련해 야당의 입장을 견지한 인물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엔 국조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21년 '조국 사태' 당시 오 의원은 2030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반성문을 쓰며 최초로 공개 사과한 '소신파'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현안과 관련해 질문을 할 때에도 늘 통화 마지막엔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던 오 의원의 음성이 기억에 남는다. 5000자가 넘는 분량에 꾹꾹 눌러담은 약 3년 간 오 의원의 자기고백에 기자회견 당시에는 내용의 진정성에 뭉클해 눈시울을 붉히는 기자들도 있었다.
오 의원은 불출마 선언에서 여야 강대강 대결 국면으로 정쟁을 거듭하는 국회를 비판했다. 그는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쁜 국민을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서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젊은 초선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날, 오후 국회에서는 내년 총선 선거제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전원위)가 열렸다. 20여 년 만에 열리는 전원위에 국회 혁신을 위한 '변화의 물결'이 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여야 의원들이 대다수 자리를 비워 약 60여 명만이 본회의장을 지키는 등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돼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제 개편도 결국 '어떻게 선거제도를 활용해야 득표에 유리하겠나'하는 여야 셈법 놀음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썰렁한 본회의장'을 바라보며 국민들도 '이것이 정치 현실'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지난 대선 이후 국회는 상대 헐뜯기에 치중해 민생을 뒷전으로 뒀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 왔다. 다음 총선을 위한 시간은 1년 안으로 좁혀졌고,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지지 정당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유권자들이 '누가 더 싫은 정당인가'가 아닌 '누가 더 일을 잘한 정당인가'를 기준으로 두고 투표 종이에 도장을 찍는 것이 상식이겠으나, 현실적으로는 전자를 고려해 '덜 싫은 정당'에 투표하지 않겠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오 의원은 21대 총선 당시인 2020년 당선 소감에서 "청년을 대표해 싸움만 하는 대한민국의 낡은 정치를 바꿔나가겠다"고 말했으나 결국 바뀌지 않는 정치 환경에 회의를 느끼고 정치판을 떠나게 됐다. 오 의원이 느낀 정치 회의 속에 언론의 역할은 없었는지 반성해 본다.
오 의원은 임기를 마치면 소방관이 되기 위해 '소방공무원 수험생'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남윤호 기자 |
오 의원은 임기를 마치면 소방관이 되기 위해 '소방공무원 수험생'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소방관 경험을 담은 오 의원의 저서 <어느 소방관의 기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참혹한 현실 속에서 또 한 기적과도 같은 희망을 발견해내기에 삶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실감하는 일이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오 의원이 현장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날이 곧 오길, '소방 공무원 합격길'을 응원한다. 물론 앞으로의 1년은 남은 임기에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