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깊은 유감...우리 정부 단호히 대응해야"
與 일각에서도 "강력히 항의하고 사과 받아야"
더불어민주당 및 무소속 국방위·외통위·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국의 대통령실 도·감청 관련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는 한편 이번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규정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국회=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정황이 드러나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10일 "국가 안보에 심각한 문제"라며 공세에 나섰다. 야당은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면서 도청 방지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대통령실 졸속 이전'을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10여 일 앞둔 가운데 여당은 "진상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야당 국회 국방위·외통위·정보위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최고의 정보기관이 불법 스파이 활동을 우리나라와 같은 동맹국을 대상으로 자행해 온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규정하며 공세 수위를 올렸다. 이들은 "안보의 최전선인 대통령실이 보안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라며 "아무런 마스터플랜 없이 대통령실을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나설 때, 급하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시스템을 꾸리고 보안 조치를 소홀히 하여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지 명백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도·감청 가능성은 용산 이전이 결정되면서부터 제기되던 문제다. 군 장성 출신인 김병주 민주당 의원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월 이종섭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도·감청 위험성을 제기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제가 봤을 때 대통령실은 무방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 창문은 도·감청 필름을 붙여 도·감청 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벽은 돼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벽을 하려면 다시 대공사를 해야 하지 않냐. 대통령실 졸속 이전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보안대책이 제대로 안 됐다"고 말했다.
그는 "100m 가까이 미군 기지가 있는 것은 옛말로 창호지문, 종이문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꼴"이라며 "방 안에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리는 그런 형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것은 주권침해이기 때문에 강하게 항의하고 원인 분석을 한 뒤 거기에 대한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며 "예전에 미국이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일부 국가는 국빈 방문까지 취소한 적도 있다"고 짚었다.
야당은 한목소리로 정부 대처를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관련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거론하며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명확한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고 미국과는 동맹관계다. 동맹의 핵심적 가치는 상호존중"이라며 "일국의 대통령실이 도청에 뚫린다는 것도 황당무계하지만 동맹국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관련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거론하며 "사실이라면 한국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와 대통령실을 미국이 일일이 감시하며 기밀을 파악했다는 것"이라며 "우리 국가 안보에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단호한 대응은커녕 '한미 신뢰는 굳건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미국과 협의하겠다. 타국 사례를 검토해 대응하겠다'며 남의 다리 긁는 듯한 한가한 소리만 내뱉고 있다"며 "즉각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기밀문건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요구하고 파악해 우리 국민께 한 점 숨김없이 명명백백히 밝히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 회의에서 "미국의 불법 도·감청은 대한민국에 심대한 주권 침해를 버젓이 자행한 중대 사태"라고 지적하며 정부의 대응에 대해 "미국 눈치 보기"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익을 포기하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안보 구멍이 숭숭 뚫린 대통령실에서 무슨 외교 전략을 짜겠다는 것이냐"며 "한미 정상회담 성사에 목매고 미국에 한마디도 못 한 채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주권 국가 대통령 자격상실"이라고 비판했다.반면 여당은 "사실 여부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해당 의혹을 두고 "우선 사실확인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
대통령실은 야당의 공세에 "NSC의 보안이나 안전은 청와대보다 용산이 더 탄탄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청사의 보안 문제는 이전해 올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고, 정기적으로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점검이 이뤄지고 있으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오히려 청와대 시절 '벙커' 구조는 반쯤 지상으로 돌출돼 있어서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의 보안은 용산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에게 저항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자료 대부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내용인데, 미국에서는 자료 일부가 수정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며 "특정 세력의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우리는 필요한 경우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여당도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우선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도·감청이 있었는지 자체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에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까지 갈등이 고조된 걸 고려해보면 이 문제에 대해 국익에 부합하는 조치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제3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안이 불거지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여당 내에서도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여당 소속 김태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도청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부 차원에서 유감을 표명해야 하고, 미국 정부의 해명과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전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야 하고 사과도 요구해야 한다"며 "우리는 주권 국가이기 때문에 그 나라가 누구든 간에 따질 건 따지고 사과를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홍석준 의원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아주 강력하게 항의하기에는 조금 그럴 수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주권 침해이기 때문에 강력한 항의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기밀 문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요구해야 하며, 미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며 "대통령실의 반응은 한심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 항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협의를 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 등은 CIA가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도·감청 한 기밀 문건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