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삭발 투쟁에 대통령실 앞 시위까지…입법 충돌 줄줄이 예고
尹 대통령, 4일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할 듯
더불어민주당은 양곡관리법 즉각적인 공포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신정훈(왼쪽 두번째부터),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 농민 등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삭발하는 모습.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재명 대표 '1호 민생 법안'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 대상이 될 전망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다시 넘어올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민주당은 삭발 투쟁으로 여론전에 나서는 한편 개정안 재발의로 양곡관리법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여야 강 대 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민생 입법이 정쟁 도구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 경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래 첫 대통령 거부권 행사 사례가 된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사실상 예견된 일이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야당이 주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은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증가하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8% 떨어지는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민주당은 쌀값 폭락에 따른 농가 소득을 보장하고,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정책이라며 양곡관리법을 밀어붙였다. 반면 정부·여당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무력화하고 농업 경쟁력 강화와 청년 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낭비하는 등 농업 자생력을 훼손해 오히려 쌀 산업을 위기로 몰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 대통령. /뉴시스 |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회로 넘어온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전원 출석 시 200석)이 찬성해야 하기에 169석의 민주당도 재의결은 쉽지 않다.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 대응 차원에서 우선 여론전에 나섰다.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농업은 천하의 으뜸)이라 했건만 윤석열 정부에 대한민국의 근본은 농심도 민심도 아닌 오로지 윤심인가 보다. 여태 관심도 없다가 정작 쌀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윤 대통령과 정부"라 비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신정훈, 이원택 의원 등은 이날 양곡관리법의 즉각적인 공포를 촉구하면서 삭발을 단행했다. '결의대회'에 앞서 오전에는 야당 의원들이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탄핵'도 언급했다. 4일 오전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 원내대표단, 농해수위 상임위 위원, 전국농어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쌀값 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고, 재발의를 통해 양곡관리법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병훈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발의한 원안이 아닌데도 국민의힘이 막았다"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우리가 준비했던 원안 그대로 법을 통과시키겠다"며 재발의 방침을 밝혔다.
양곡관리법 외에도 여러 쟁점 법안이 야당의 강행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모양새로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부의의 건에 대한 표결을 앞둔 가운데 집단 퇴장하는 여당 의원들. /이새롬 기자 |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쟁점 법안들을 강행처리하자 불가피하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됐다며 맞섰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우리 농업 미래를 파괴하는 이재명표 내로남불 악법"이라며 "양곡관리법이 이재명 대표 1호 민생법안이기 때문에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민주당의 몽니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입법폭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 거부권"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여야 협치가 실종된 가운데, 민생 입법이 정쟁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대선 경쟁자였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민생 입법을 두고 양보 없는 대결 양상을 보이면서 충돌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 대표의 1호 민생 법안이다. 이 대표가 지난해 9월 의원들에게 쌀값 폭락 문제 대응을 주문하자, 곧바로 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이 법안 발의에 나섰고 당 7대 중점 입법 과제에 포함됐다. 여당 반발에도 법사위 법안이 60일 이상 계류하면 상임위원회 의결로 본회의 직회부가 가능하도록 한 국회법을 처음 적용해 지난 1월 30일 단독 처리로 본회의에 부의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상임위 심사 초반부터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지난달 23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임위원회 '상시 청문회' 개최 법적 근거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7년 만의 일이 된다. 특히 최근 10년 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거부권 행사 때는 '여대야소' 국면이었지만, 현재는 '여소야대' 국면이라는 점에서 정국에 미칠 파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양곡관리법 외에도 여러 쟁점 법안들을 두고 윤 대통령과 다수 의석을 앞세운 야당의 입법 충돌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간호 인력과 간호에 대한 사항을 독자 규정하는 간호법 제정안,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이 야당 주도로 현재 본회의에 직회부된 상태이며, 불법파업을 벌인 노조에 대한 기업 손해배상 청구를 제안하는 노란봉투법도 본회의 직회부 추진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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