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동의 유무 판단하기 어려워...억울한 피해자 양산 가능성"
<더팩트>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비동의강간죄 도입, 젠더갈등을 넘자!' 토론회에서 법무부는 기존의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동의강간죄 도입, 젠더갈등을 넘자!'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아 검사(법무부) ,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 박상병 시사평론가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 류호정 정의당 의원, 신인규 변호사(국민의힘 바로 세우기 대표). /국회=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강간죄 구성 요건을 '동의' 유무로 개정하는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법무부가 '신중론'을 꺼내 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법무부는 "각계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종합적 의견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법체계상의 문제 △동의 유무의 불확실성 △폭행·협박 정도에 관한 판례의 변화 △입증책임 전환의 우려 등을 이유로 사실상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30일 <더팩트>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비동의강간죄, 젠더갈등을 넘자!' 토론회에서 법무부 측 패널로 참석한 법무부 형사법제과 이정아 검사는 이런 의견을 밝혔다. 비동의강간(비동의간음)죄는 현재 형법 제297조가 규정하고 있는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의 유무에서 '동의 유무'로 개정하자는 내용이다. 1990년대부터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무고죄 양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검사도 '억울한 피해자의 양산'을 우려했다. 이 검사는 "모든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에 형법을 적용하는 건 과잉 입법"이라며 "동의 유무는 '동의'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특히 이런 문제가 입증책임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검사는 "원칙적으로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있으나 실제 재판에서는 객관적 반대 자료가 없으면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할 수 없다는 판례의 태도에 따라 피고인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될 것"이라며 "피·가해자의 진술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검사는 '법체계상의 문제'도 들었다. 이 검사는 "현재 형법뿐 아니라 성폭력범죄 특례법,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 등을 통해 성적 행위와 관련한 유형력 행사 유무를 의제강간, 궁박 상태에서의 간음·추행, 위계에 의한 간음·추행,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등으로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몇 개의 조문에 '의사에 반하여'를 추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이정아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동의강간죄 도입, 젠더갈등을 넘자!' 토론회에서 법무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또 현재 강간죄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에 대해 최근의 판례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폭행·협박이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해야 한다는 최협의설을 취해왔다"면서 "최근 판례는 합리적인 저항에 그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실무는 다양한 성적 행위에 엄정 대응하고 있으며 피해자를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있다. 처벌 공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검사는 "각국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16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추행은 동의가 있더라도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16세 이상 미성년자·장애인에 대해서도 폭행·협박 없는 위력에 의한 추행도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의 입장은 지난 2월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답변과 같다. 한 장관은 당시 비동의강간죄(비동의간음죄)에 관한 류 의원의 질의에 "동의 없는 성관계는 기본적으로 범죄"라면서도 법제화에 대해서는 "억울한 사람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사가 아닌) 피고인에게 100% 입증 책임이 돌아갈 것"이라며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다만 상대방의 동의 없이, 또는 의사에 반해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방향"이라고 인정했다.
법무부는 이어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도 "동의 여부는 내심의 의사를 입증해야 하므로 실제 재판에서 피고인의 입증책임 문제, 형법 체계상 '성범죄'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필요성은 1990년대부터 제기됐다. 이를 시작으로 2007년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 시작했다.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건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이후다. 이에 2018~2019년 관련한 형법 개정안이 총 10개 발의됐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에서 '비동의강간죄 신설 필요성 검토'를 정책 과제로 꼽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도입을 공약했으나 보수 성향의 지지층의 반대로 철회한 바 있다. 보수 성향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는 더욱 소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류호정 의원(오른쪽)은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과 비동의강간죄 도입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 장관은 '억울한 사람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30일 이뤄진 토론회에서 법무부 측 이정아 검사도 같은 의견을 밝혔다. /YTN 유튜브 갈무리 |
이에 따라 정책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발표 자료에서 "형법 제297조의 강간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 검토"라고 했다. 이는 류 의원이 발의한 비동의강간죄와 같은 내용이다. 여가부는 이 계획을 당일 오전 11시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5시 법무부에서 "소위 '비동의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발표하자 8시 "비동의간음죄 개정 검토와 관련해 정부는 개정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며 사실상 철회했다.
비동의강간죄는 여성과 남성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며 관련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젠더갈등'으로 비화하는 주제다. 이날 토론회는 '젠더갈등'의 벽을 넘어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사회는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가 맡았으며 발제자로 류 의원과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이 참여했다. 찬성 측 패널로는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와 신인규 변호사(국민의힘 바로세우기 대표)가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은 △국민의 인식 변화 및 현실의 반영 △다양한 성범죄의 등장 △세계적인 추세를 드는 반면 반대하는 측은 △무고죄 양산 △형사·사법 체계의 안정성 △최근 판례의 태도 변화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무고죄'였다.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타협의 여지를 찾기도 했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법제화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동의 없는 성관계는 범죄'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 토론의 주최자인 류 의원도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교 행위'라는 요건에서 백혜련 민주당 의원안인 '상대방 의사에 반한 간음'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