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표명 사실 아니다"라더니 하루 만에 김성한 '전격 사퇴'
자진사퇴 형식 취했지만 '경질설' 무성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는 한편 후임자를 곧바로 내정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최근 '경질설'이 제기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전격 사퇴했다. 전날(28일)까지만 해도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기사"라며 안보실장 교체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김 실장이 사퇴했고, 굵직한 외교 일정이 줄줄이 예정된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실의 외교·안보라인 인사 '불투명한 교체'에 대한 비판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 실장은 이날 오후 5시 3분께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에 본인 명의로 보낸 입장문에서 "저는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 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1년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 이제 그러한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예정된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서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며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대학에 복귀한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의 전격 사퇴는 앞서 이뤄진 김일범 전 의전비서관,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사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교부 엘리트 출신인 김일범 전 비서관은 지난 10일 일부 대통령실 직원에게 자진 사퇴 사실을 알리고 대통령실을 떠났다. 이에 한일 정상회담(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4월 말 예정),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참석(5월)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을 앞두고 의전비서관이 갑자기 사퇴한 것은 외교 일정 조율과 관련한 실책으로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실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개인 신상을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27일에는 또다른 외교부 엘리트 출신인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사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 비서관은 1년 동안 맡은 바 임무를 다했고, 굉장히 격무였다"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거고, 후임자가 내정이 돼서 인수인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인사 교체라는 해명이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생각에 잠겨있다. /뉴시스 |
다음 날(28일) 동아일보는 <[단독]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교체 검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해온 김 실장을 교체하는 방안이 대통령실 내에서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김일범 비서관 교체에 이어 외교안보 실무를 총괄하는 이문희 외교비서관까지 27일 교체한 윤 대통령은 다음 달 방미를 전후해 외교안보, 국방 라인을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교체 배경에 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한미 정상회담 일정과 관련해 미국이 한국을 배려해 특별한 일정을 제안해 와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경질 성격'이라고 전했다.
이에 김 실장은 동아일보에 "사의 표명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이날 오후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실장 경질론 보도에 대한 공식 입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실과 다른 기사"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김 실장이 전격 사의 표명을 하고, 곧바로 윤 대통령이 후임자까지 내정하면서 전날 김 실장과 대통령실이 사실상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김 실장이 기자들에게 사의 표명을 한 후 51분 뒤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김 실장의 사의를 오늘 '고심 끝에' 수용하기로 했다"며 "대통령은 후임 국가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 대사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인사를 하루 만에 갑자기 경질하고, 후임자를 곧바로 내정한 것은 사전에 준비되지 않고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김 실장 교체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대통령실에선) 부인했는데, 갑자기 사의를 수용하고 후임 인선까지 한 것은 어떤 문제가 있어서 교체를 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어제 말한 것은 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한 바 없다는 것이었는데, 김 실장이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여러 차례 (사의)를 피력했고, 대통령도 제가 알기로는 만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이 (사의)를 고수했고, 대통령이 수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루 만에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관계자는 '사직 이유가 공식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엔 "김 실장이 전한 글로 갈음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중요한 시기 외교안보 라인을 전격 교체한 배경을 두고 미국 측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 국빈 초청 때 블랙핑크(사진)와 레이디 가가 합동 공연 등의 특별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해당 프로그램 진행이 차질을 빚을 뻔해 사실상 경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중요한 시기에 외교안보 라인 실무 책임자에 이어 총괄까지 교체됐지만, 대통령실의 설명은 부족한 상황에서 그 배경을 둘러싼 각종 관측이 제기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대통령실 안팎에선 미 국빈 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정 관련 보고가 누락된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측이 윤 대통령 부부 국빈 초청 때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 합동 공연 등의 특별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해당 프로그램 진행이 차질을 빚을 뻔했다는 것이다.
두 비서관과 김 실장 모두 자진 사퇴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경질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대일 외교 정책 등을 두고 김 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간 알력 다툼이 있었고, 그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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