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관련 법안 40여개 상임위 계류
여야 극한 대립에 통과 여부 불투명
지난 2월 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의 학교폭력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실효적인 학폭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가운데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쌓여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와 고교 시절 피해자의 복수 과정을 그린 드라마 '더 글로리'의 흥행으로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학폭' 근절과 학생 피해자 보호 등을 뒷받침할 각종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21대 국회에서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학교폭력 수만 건…정순신 아들 사건 공분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학교 내 폭행은 해마다 수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5년간(이하 2017~2021년) 학교폭력 검거 건수는 △1만4000건(2017년) △1만3367건(2018년) △1만3584건(2019년) △1만1331건(2020년) △1만1968건(2021년)이다. 신고건수는 △7만1985건 △6만1887건 △6만1302건 △2만8241건 △3만7845건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경찰이 검거한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모두 6만4250명으로 범죄유형으로는 폭행·상해가 3만7321명으로 가장 많았다. 성폭력은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1만2625명으로 금품갈취 6032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사이버 폭력도 심각성을 더한다.
해마다 학교폭력 검거 건수는 1만 건을 넘는다. /경찰통계연보 갈무리 |
성폭력이나 폭행 등 범죄나 따돌림, 언어폭력 등을 당한 피해자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적 기능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정도가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학교폭력은 한 가정을 박살 내는 피해를 동반하기도 한다. 학폭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교내에서 다양한 폭력은 횡행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건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정 변호사는 아들이 고교 시절 학교폭력으로 전학 조치되자,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 전학을 막기 위해 모든 법적 대응을 행사한 것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피해 학생은 정신적 고통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9일 학폭 조치사항을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안을 검토하고, 가해·피해 학생 즉시 분리 규정 강화 등 피해 학생이 2차 가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학교폭력 근절대책 추진방향'을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했다. 학교 내 학폭 조사 전담 기구에 전문가 참여를 확대하고 관련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대책에 담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논란'에 대해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했다. /이새롬 기자 |
◆학폭 관련 법안 '수두룩'…통과 여부는 '글쎄'
정치권도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이 정 변호사 자녀의 학폭으로 드러난 제도의 허점이나 미비점을 손질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2차 가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거나 피해 학생을 한층 더 보호하는 법안들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 11명은 가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 및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의 조치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할 경우, 피해자의 법 집행 과정상 발생할 수 있는 후속 피해를 최소화하는 내용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해 학생 또는 그 가족이 '시간 끌기'를 하는 동안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한 조치(학급교체, 치료·요양, 일시보호, 가해 학생과 분리)가 무력화되는 것 막자는 취지다.
민주당 서동용 의원 외 12명도 가해 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피해 학생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교육감이 변호사 선임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피해 학생이 법률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행정심판위원회의 행정심판 관련 자료 요구에 교육장의 제출 의무를 골자로 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학폭 관련 법안 40여 개가 쌓여 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를 오는 31일 연다. /남용희 기자 |
정 변호사 자녀 학폭 논란 이전에 발의된 학폭 관련한 법안들도 쌓여 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40여 개의 '학교폭력예방 개정안' 중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건이다. 학교장이 사건을 인지하면 피해 학생과 교사를 포함해 가해자를 원칙적으로 분리하고, 이후 피해 학생이 요청하는 경우 추가적인 긴급보호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내용이 핵심인 법안이다.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들 가운데 비슷한 내용이 몇몇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조치 받은 사항 삭제 금지, 가해 학생의 특별교육 이수 의무화, 사이버 학교폭력에 대해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등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대표적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비슷한 법안이 양산되는 것은 보여주기식 정치로, 내용이 중복된 형편 없는 법안이 많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여전히 40여 개의 법안 대부분이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야는 최근 '근로시간 개편', '양곡관리법', '한일 과거사 문제' 등 여러 현안을 두고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푸른나무재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한때의 바람으로 그치지 않도록 실제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