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혁신위 '당헌80조 삭제 검토'...비명계 '부글부글'
李 "총선 승리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진화
더불어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혁신위)가 '부정부패 관련 혐의 기소 시 당직자 직무 정지'를 규정한 민주당 '당헌 80조'를 당헌·당규에서 삭제하는 것을 검토 중인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재명 대표(왼쪽)와 장경태 혁신위원장.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혁신위)가 "퇴행위"라는 당내 비판에 직면했다. '부정부패 관련 혐의 기소 시 당직자 직무 정지'를 규정한 민주당 '당헌 80조'를 당헌·당규에서 삭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고위원인 장경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둔 혁신위가 '정치교체'를 명분으로 출범했으나 결국 '이재명 방탄' 프레임을 강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혁신위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입맛에 따라 공천 룰도 좌지우지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도부 소통 부재 등 지적에 대해 사과하면서 당 내홍 진화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촉발한 '당헌 80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지난 15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민주당 혁신위가 당헌 80조 전체를 삭제하는 방안을 두고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최고위원이자 혁신위원장을 맡은 장경태 의원은 관련해 언론 인터뷰에서 "당헌 80조를 포함한 다양한 의제에 대해서 발목 잡기 조항이다. 또 군더더기 조항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정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도 이후 논란이 일자 장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혁신위의 다양한 제안은 수백 건에 이른다"며 "현재는 제안을 취합 정리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의원은 당헌 80조 삭제 검토 시점도 "공천 제도가 마무리된 이후"가 될 거라고 덧붙였다.
당헌 80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만든 조항이다. 뇌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이 대표가 검찰에 기소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당시인 지난해부터 일부 비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에게 당헌 80조를 적용해야 한다고 꾸준히 외쳐왔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기소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 '당연히 예외'라는 입장을 밝히며 '이재명 방탄'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혁신위가 당헌 80조 삭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향후 이재명 대표가 추가 기소될 시 당내에서 당헌 80조를 명분으로 거취를 결단하라는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이유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남용희 기자 |
혁신위가 당헌 80조 삭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향후 이 대표가 추가 기소될 시 당내에서 당헌 80조를 명분으로 거취를 결단하라는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이유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잡음이 생길 수 있는 요소를 없애 갈등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 이 대표의 지지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당 지도부의 입장 또한 포함돼 있다.
당 지도부는 당헌 80조 삭제가 '당원들의 요구'라는 이유를 들었다. 한 최고위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당헌 80조가) 실용적이지 못하고 분란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없애달라고 요구하는 당원들이 굉장히 많다. 한편으로는 (당헌 80조가) 퇴행적이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혁신안들이 많이 언급되는 과정에서 보도가 나온 것 같은데, 향후 충분히 논의돼야 할 부분은 맞다"라고 말했다.
혁신위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이달 초에는 당무 감사에 권리당원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내용이 담긴 당헌·당규 개정안이 혁신위 내부 문건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무 감사는 총선 공천의 평가 지표로 쓰인다. 이를 두고 의원들의 공천에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며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혁신위 정당분과위원장인 이해식 의원은 "당무 감사의 여러 지표 가운데 지역위원장에 대한 평가에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이 안 된다"며 "당원들의 여론조사를 통해 이를 반영해야 하지 않겠냐고 혁신위에 제안한 것"이라고 혁신위 차원의 논의가 있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비명계 의원들은 잇따른 혁신위의 움직임에 이 대표를 향한 방탄 논란만 더 커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혁신위가 공천과 면밀히 관련된 룰에 관해 손질할 것이라는 '예고'를 해놓고 논란이 불거지면 '검토 중'이라고 입장을 내는 대응 방식도 지적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당헌 80조 삭제 등 혁신위의 움직임과 관련해 "지금 벌써 이게 세 번째인데 그 안에서 논의가 있었다고 언론 보도가 되면 (혁신위) 위원장은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건 사실이나 그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 당 외부에서 온 위원이 그걸 주장했을 뿐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는 톤으로 (언론 보도가) 나간다"라며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장 위원장이 얘기를 한 거 보면 또 거기에 상당히 방점을 두는 듯한 그런 식의 인터뷰가 나간다"라고 지적했다.
비명계 한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혁신위가 강성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며 '부화뇌동'(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혁신위 출범식 당시 (왼쪽부터) 김경협 의원, 이재명 대표, 장경태 혁신위원장. /남윤호 기자 |
비명계 A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혁신위가 강성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며 '부화뇌동'(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혁신위가 아니라 '퇴행위'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문재인 대표 때 당을 혁신하겠다고 만든 룰을 이재명 대표로 바뀌었다고 논란의 여지가 된다며 없애겠다는데 그 발상이 뭐가 혁신인가. 퇴행하겠다는 얘기다. (당헌 80조 삭제)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당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비명계 B 의원도 "혁신위가 '방탄'이라고 비판받을 논란만 생성하는데, 이 정도면 '해체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다른 의원들도) 눈살 찌푸릴 만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지난달 불거졌던 자신의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발생한 사태와 관련해 "의원님들의 당을 향한 충정과 지적으로 생각한다"며 "그 부분은 겸허히 수용한다"고 '당 내홍 진화'에 나섰다. 비공개회의에서 이 대표는 "상황의 근본적 원인이 본인을 비롯한 지도부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혼란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오영환 원내대변인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