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대립'을 부르는 '개딸'과 이재명의 '실용 정치'
입력: 2023.03.06 00:00 / 수정: 2023.03.06 00:00

'선명성 경쟁'으로 팬덤 급성장
'대립과 혐오' 대신 '비전' 채워야


이재명 대표의 강성 팬덤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2월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는 이 대표. /임영무 기자
이재명 대표의 강성 팬덤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2월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는 이 대표.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버금가는 '여의도 문법 파괴자'가 있다. 지난해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0.5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통상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면 1년 이상 잠행한 후 재기를 도모하지만 이 대표는 2개월 만에 재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셀프 공천' 논란도 불거졌다. 지역 연고가 없어 명분이 약하다는 비판에 "제 모든 것을 던져 전국 과반 승리를 이끌겠다"며 강행,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의 약속과 달리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상처뿐인 영광'만 얻었다.

두 번의 치명상을 입은 이 대표가 당대표 선거에 또 도전할까 싶었지만, 그는 거침없었다. "당이 사법 리스크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에도 "유능하고 강한 민생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나왔고, 압도적인 지지로 강한 리더십을 쥐고 사령탑에 올랐다.

이 대표 취임 후 약 6개월이 돼간다. 정치권 관측대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넘어왔다. 예상치 못한 건 '무더기 이탈표'다. '가결 같은 부결'을 미처 대비하지 못한 당은 혼란에 빠졌다. 이 대표의 거취를 두고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공천권 보장 거래를 위한 것" "듣기 거북스럽다" "민주당 타이틀을 걸고 내년 총선에 나오면 안 된다" "조폭보다 못한 친구들" 등의 날카로운 말이 오간다.

이 대표 결단에 이목이 집중된다. 모 매체 논설위원장은 이 대표가 대표직 사퇴 의사는 전혀 없고 옥중공천도 불사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그런 의사를 밝힌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이 대표의 그간 행보를 보면 논설위원장의 전언은 이 대표 의중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만간 검찰이 이 대표를 불구속기소하면 비명계의 '퇴진' 요구가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이 대표는 이번에도 '여의도 문법'을 따르지 않을 것 같다.

당내 기반이 약한 이 대표의 '믿는 구석'은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인천 계양을 출마, 지방선거 참패 후 당대표 출마에 도전할 때마다 그는 지지자들을 찾았고, 지지자들은 그때마다 호응했다. 이번 '무더기 이탈표 사태'에도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자들이 앞장서 손에 피를 묻혔다. '배신자 색출' 작업을 벌이고 '살생부 명단'을 공유하는가 하면, '이탈표 배후'라며 지난 대선 경선 당내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당 영구제명을 요청하는 청원을 올렸다.

민주당 누리집에는 이낙연 전 대표 영구 제명을 요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와 당 지도부가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민주당 누리집에는 이낙연 전 대표 영구 제명을 요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와 당 지도부가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소위 '비명계'로 낙인찍힌 의원실에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와 문자가 쏟아진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에 대한 영구제명 청원에 당 지도부가 공식 답변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까지 왔다. 같은 날 오후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선 10여 명의 지지자들이 비명계를 일컫는 '수박' 풍선을 터뜨리며 "다음 번에 압도적으로 부결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저러는 게 당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지도부가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특단의 조처를 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도 여러 차례 지지자들에게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다만 그의 요청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문자 폭탄 등 과격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이 대표는 '효과'를 강조한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둔 지난달 14일 유튜브 방송에서 그는 "압박하면 효과가 있겠나. 전혀 없다. 그리고 저를 의심한다. 이재명이 시킨 거 아닌가 하고. 이재명을 도와주거나 이재명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전체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게 결국 그걸 망치고 있다"라고 했다.

또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정치인데 압박하는 문자를 여럿이 보내면 받는 사람이 무서워서 (오히려) 반대로 할 가능성이 높다"라거나 "소수자일 땐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데 책임지는 다수자 측이 됐을 땐 정말 자해행위"라고도 했다. 지난 4일 페이스북 글에서도 "명단 제작, 문자폭탄, 제명 요청...누가 이득 볼까요?"라며 "우리 안의 갈등이 격해질수록 민생을 방치하고 야당 말살에 몰두하는 정권을 견제할 동력은 약해진다. 이럴 때 가장 미소 짓고 있을 이들이 누구인지 상상해달라"고 했다. 일부의 과격 행위가 인격 모욕적이기 때문에 '해선 안 될 일'이라기보다, 내부 갈등은 상대 진영을 견제할 동력을 잃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방점이 있다. 개개인의 상처보다 '정치적 효과'를 우선 생각하는 듯하다.

이 대표는 자·타칭 '실용주의자'다. 2016년 "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파, 좌파 정책 다 갖다 쓸 수 있는 실용주의자"라고 밝혔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나, 연설에서 자주 말하는 "정치는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받아 대리한다" 등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에는 언제나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기조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그를 '변방의 장수'에서 당 대선 후보까지 성장시키고 열성 팬덤을 만든 비결일 것이다.

이 대표는 지지자들에게 과격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고 있다. 내부 갈등으로 상대 진영 견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지난 3월 3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수박 풍선을 준비하는 강성 지지자들. /박숙현 기자
이 대표는 지지자들에게 과격 행위를 자제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고 있다. '내부 갈등으로 상대 진영 견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지난 3월 3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수박 풍선을 준비하는 강성 지지자들. /박숙현 기자

그러나 이 대표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발언과 행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념과 진영 논리를 배격하는 본래의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부·여당을 '독재정권' '악'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초부자 감세만 하고 서민은 돌보지 않는다"면서 연일 반정부 지지자들을 국회 앞, 숭례문 앞으로 끌어모은다. '실용 정치'보단 '팬덤 정치'에 가깝다.

당내에선 비명계가 선명성 비교의 대상이다. 지지자들에게 이 대표와 친명계는 개혁의 주체, 비명계는 개혁을 막아서는 '기득권 똥파리'다. 공격할 상대가 있어야만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대립과 혐오의 정치다. 여기엔 포용과 연대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 점이 이 대표가 연일 '과격 행위 자제'를 요청하지만 강성 팬덤과 결별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가 설레는 미래 비전과 정치 신념으로 지지자 마음을 사로잡는 노력을 더 기울이길 바란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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