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팬덤 정치 결별' 실기…"이재명 대표, 강력 항의 조치해야"
'수박 찾기-살생부' 등…文 전 대통령-이낙연 전 대표도 표적
더불어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의 연일 거칠어지는 과격 행위에 난감해하고 있다. 지난달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는 이 대표. /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 사태' 이후 민주당이 또 하나의 난제를 떠안았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부터 당 극복 과제로 거론됐던 '강성 팬덤' 문제가 재점화한 것이다. 강성 지지층 '이탈표 색출 작업'에 당 지도부도 자제령을 내렸지만, 통제불능인 모양새다. 내부에선 강성 팬덤 문제를 방치해온 지도부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이 대표 지지 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 온라인상에선 '수박 찾기'가 한창이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은어로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당내에서 최소 31표가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오자 이 대표 강성 지지자를 일컫는 '개딸(개혁의 딸)'들은 불만 표출을 넘어 행동에 나섰다. 찬성표나 기권, 무효표를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에게 직접 또는 지역사무실로 항의 전화, 문제 메시지를 보내 어느 쪽에 투표했는지 캐묻고 있다.
또 의원들의 답변 내용을 커뮤니티에 올리고 내년 총선에 낙선 운동을 벌이자며 '살생부'를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대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이 포함된 '역적 배신자' 포스터가 SNS상에 공유되기도 했다.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한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전화로 표결 묻는 지지자들에게) 부결했다고 말했는데도 죽어도 안 믿는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들이 뇌피셜(추측)로 가결 의원 명단을 만드는 거다. 강성 유튜버 말만 듣는다. 전화오는 사람들은 젊은 층이 아니라 50대 이상 중장년"라고 토로했다.
비명계 인사에 대한 공개적인 '탈당'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는 이 전 대표 영구 제명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대장동 건을 최초로 터뜨려놓고 이 대표님께 사과도 하지 않고 자기는 미국으로 냅다 도망쳤다"며 "그 사람이 민주당을 검사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체포동의안에서 민주당 내 반란표가 나오게 만든 것도 이 전 대표가 꾸몄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라며 이 전 대표의 강제출당을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2일 오후 5시 기준 3만1772명이 동의했다.
개딸로 지칭되는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체포동의안 반대표 던진 의원들을 추측한 명단을 공유하고 직접 캐묻고 있다. 비명계는 "십자가 밟기"라며 불편함을 토로한다. /재명이네 마을 갈무리 |
이에 앞서 지지자들은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영장실질심사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당과 징계를 요구한다는 청원도 올렸다. 이는 5만 명 넘는 동의를 얻어 지도부가 오는 18일까지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이 외에도 청원 게시판에는 '체포동의안 찬성 국회의원 명단 공개' '당대표의 대선 출마시 선거일 1년 전까지 사퇴 조항 예외 추가' 등이 올라와 있다.
당내에선 강성 지지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출 행위가 도를 넘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명계 의원들은 일부 당원들의 색출 작업을 '십자가 밟기'에 빗대며 우려를 표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법상 비밀 무기명 투표인데 그걸 가지고서 지금 '색출'이다 또는 '살생부'다, 이런 살벌한 얘기들이 오고 가고 있다. 그건 해서는 안 된다. 나치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려고 '십자가 밟기'를 강요하고 그랬지 않나"고 비판했다. 조응천 의원도 "날아오는 문자를 보면 저를 비롯한 타깃으로 삼은 의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십자가 밟기를 강요당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추가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해 내부 결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당 지도부는 난처한 모습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비공개 고위전략회의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당의 단합에 도움 되지 않는다"며 살생부 작성이나 문자폭탄 등의 행위를 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냈다. 그는 지난달 14일에도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문자 폭탄과 수박 용어 사용 금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요청에도 통제가 안 되는 모양새다. 지지자들의 과격 행위를 당 지도부와 친명계가 방치, 또는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 대표 최측근인 김남국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어떤 의원은 이 대표 앞에서 마태복음을 읽었다고 하더라"며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모욕적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겠는가"라고 했다.
이와 관련, 한 비명계 의원은 지난달 22일 이 대표와의 오찬 자리에서 이 대표 앞에서 '마태복음 27장'을 읽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문자 폭탄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태복음 27장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대표에게 자진 사퇴를 권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해당 의원의 페이스북 댓글에는 "당대표 등 뒤에 칼 꼽고 당신이 민주당에서 편히 있을 것 같나" "당신 지역구에는 차라리 국민의힘이 당선돼야 한다" 등의 비난 글이 줄줄이 달렸다.
'강성 팬덤 정치' 문제는 이 대표에게 절실한 '단일대오 전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대표가 강성 팬덤에 대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지난달 27일 자신의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는 이 대표. /이새롬 기자 |
지난 대선과 지선 연패 이후 당은 의원 전원 워크숍을 통해 "팬덤정치의 순기능과 역기능 의견이 제시됐고 무관심과 냉소, 혐오정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며 배타적 팬덤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 대표 취임 후 강성 팬덤 정치와 선을 긋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해 3월 자신의 온라인 팬카페가 개설된 후 지지자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이어왔다. 특히 대선 직후, 인천 계양을 출마, 전당대회 출마 등 위기의 순간마다 지지자들을 찾았다. '당원 권리 강화'에도 노력을 쏟았다. 당대표가 된 직후 당사 내 당원존을 설치했고, 총선 공천 과정에서 당원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도 검토해왔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강성 지지층으로 인해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짙다. 이번 '무더기 이탈표 사태'만 보더라도 곧바로 수습할 수 있는 일이 강성 지지층의 '색출' 행위로 균열 조짐까지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통화에서 "강성 지지층에 대한 설득은 지도부가 해야 한다. 하루 이틀 되겠나. 정치라는 게 팬덤이 있어야 한다. 선거 때는 이런 사람이 있어야 치르기 때문에 필요하다. 다만 (과격 행위는) 잘 설득해야 하는 게 정치"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친명계 일부는 '그들을 존중한다' '당원들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한다' '소통해야 한다'는 식으로 개딸들의 행태를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과격) 행태를 보이면 당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겠다는 식의 강력한 항의를 이 대표가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