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수 성지' 서문시장 상인, 與 전대 묻자 "정치놀음할 시간 있나"
입력: 2023.02.28 05:00 / 수정: 2023.02.28 05:00

시장 내 상권 불균형…인근 특성화 골목도 경기 불황 직격탄
尹-與 향해 "경제 살려야…선거 전과 후가 다르면 안 된다"


27일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대구=신진환 기자
27일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대구=신진환 기자

[더팩트ㅣ대구=신진환 기자] "경제가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법 봄기운이 물씬 풍겼던 27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의류업에 종사하는 60대 이모 씨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이같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봄·가을용 형형색색의 점퍼가 1~2만 원대, 잠옷류는 5000원 정도로 의류가 저렴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뜸했다. '자영업의 체감 경기가 어떤가'라는 물음에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암담하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하루 전날 보수 성지 서문시장 상인들이 생각하는 당 대표는 누구인지 들어보고자 했다. 진영을 떠나 선거철 대구 방문에서 빠지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도 서문시장을 각각 찾은 바 있는 곳이다. 상인들은 어떤 여당 당대표를 또 이른바 윤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상인들에게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날 오후 시장 서1문에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시민들로 북적였다. 공영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북이 운행'을 했다. 대구의 유명 시장답게 활기를 띠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 시장만큼은 수년째 이어지는 불황이 빗겨 간 것처럼 보였다. 50m쯤 시장 안쪽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있는 쪽인데, 채소와 나물을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남기려는 상인과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소비자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전통시장 특유의 후한 인심은 여전했지만, 저마다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비산동에 거주하는 윤모(55·여) 씨는 "물가가 많이 올라 많이 부담된다"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한 할머니 상인도 "장사 안돼"라고 했다.

27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5지구는 야시장골목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상권이 침체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27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5지구는 야시장골목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상권이 침체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시장을 가로지르는 통로 양옆으로 중간중간에 뻗은 좁은 골목 상권은 비교적 한산했다. 수선 골목과 액세서리 골목, 곡물 상가가 모인 골목은 등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잡화상 장모 씨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상인들을 살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지난 정부 때와) 달라진 게 없다"며 "선거 전과 후가 다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종합상가가 밀집한 시장 5지구는 더 썰렁했다. 좀처럼 행인들을 보기 어려웠다. 아예 문을 닫은 상가도 많았다.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시장에서 정부에 대한 일부 상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식품업자 최모 씨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액은 큰 차이는 없다. 코로나 영향이 있었다지만 계속 어렵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되물으면서 "올해 경기가 더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5지구를 끼고 내당2동 방면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침구류 거리가 나온다. 이곳 자영업자들은 떼온 이불을 옮기는 작업으로 바빴다. 다만 손님은 찾기 어려웠다. 최근 방문 손님은 드물고, 주로 온라인판매로 겨우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게 일부 침구류 업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 시장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이동하는 시민들이 대다수였다.

27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인근 일명 미싱골목. 행인이나 손님들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27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인근 일명 미싱골목. 행인이나 손님들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대구지하철 3호선 서문시장역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공구골목과 오토바이거리, 수선골목은 경제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사실상 사장화한 업종으로 볼 수 있겠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평일 낮 시간대임을 고려하더라도 오가는 시민들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16년째 공구점을 운영하는 최모 씨는 "그만두지 못해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다"며 "생업이라고 하기에 민망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팍팍하고 고된 삶을 살면서도 묵묵히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자영업자들에게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당은 다음 달 8일 전대에서 차기 지도부를 당원투표 100% 방식으로 뽑는다. 그렇다 보니 당 대표 후보와 최고위원 후보 등은 민심보다 '당심' 사냥에 집중하고 있다.

당 대표가 누가 되든, 민생을 잘 돌봤으면 한다는 취지의 의견이 많았다. 쇳가루 냄새가 강했던 공구단지 작은 골목에서 기계설비업에 종사하는 한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생사가 달린 문제에 정치놀음할 시간이 있는가."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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