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에게 호소하려는 전략...결과적으로 안 좋은 사건 끄집어내
"윤심에만 기대는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지지층에서 잊고 싶은 과거를 다시 꺼내자 '자폭'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오후 대전 동구 대전대학교 맥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지역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인사하는 김 후보.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탄핵' 발언에 이어 '바이든·날리면' 발언 소환 등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의 잇단 설화가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대세론'을 형성했던 김 후보가 '설화 리스크'를 자초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한편 "김 후보가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후보는 지난 20일 MBN이 주관한 2차 방송토론회에서 천하람 후보에게 "천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 변화가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청년을 대표하는 천 후보가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공격해 본인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급급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천 후보는 "'바이든'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것이라고 본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후보의 취지는 천 후보가 '대통령을 공격해 인지도를 올린다'고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을 곤란하게 한 사건을 끄집어내는 동시에 천 후보에게 소신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어 결과적으로 자충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 천하람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TV토론에 참석하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결과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저격하고 천 후보의 존재감을 더 부각시킨 것 같다"고 보았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그냥 말하다 나온 게 아니라 준비해 온 이야기인 것 같다"며 "김 후보는 자신이 윤 대통령과 가깝고 여기에 대답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대통령과 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흑역사에 가까운 건데 그걸 다시 끄집어내서 굳이 떠올리는 게 안 좋은 효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천 후보 측에서도 김 후보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천 후보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제 입장에서 너무 잘됐다"며 "(김 후보가) 요새 전략적인 사고를 못하시는 건가, 왜 이렇게 여유가 없으신 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 후보가 전당대회 룰이) 당원 100%라는 거에 너무 꽂혀 계시는 것 같다"며 "(당원들 중에는) '날리면'이라 생각하는 분도 꽤 되시겠지만, 당원들은 이 이슈가 나오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에 계시는 수많은 분들이 이 이슈가 재점화되는 걸 불편해하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 후보가 되레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는 사건을 환기했다는 것이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대통령실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건이다. '바이든·날리면'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순방에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을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냐?"고 한 발언을 말한다. 해당 장면을 최초 보도한 MBC는 해당 영상과 함께 '○○○'을 '바이든'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날리면'이라고 반박하며 해당 보도에 대해 강경한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외교부는 MB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시간이 지나며 잦아든 사건을 김 후보가 다시 환기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김 후보의 최근 발언 등과 관련해 "윤심에만 기대는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새롬 기자 |
김 후보의 발언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1일에는 안 후보를 겨냥해 "지금의 당대표는 대선의 꿈을 가지면 안 된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부딪히면 당이 깨질 수 있고 차마 입에 올리기도 싫은 (대통령) 탄핵이 우려된다. 대통령 임기가 얼마 안 지났는데 그런 분란은 안 된다"고 말했다.
'윤심(尹心)'을 내세워 당원에게 호소하려는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경쟁 후보들에게 역공의 빌미도 됐다. 안 후보는 다음날인 12일 페이스북에 "아마도 전략적으로 당원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 한 것 같은데, 패배가 겁난다고 여당 당 대표 하겠다는 분이 대통령 탄핵 운운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천 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김 후보는 이제 급기야 대통령 탄핵까지 입에 담나"라며 "아무리 당대표 선거가 급하고, 지지율에 조급해도 여당의 전당대회에서 할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긁어 부스럼'은 장외에서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도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안 후보가 당대표가 될 경우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어 지난 6일에는 "(안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경우에 따라 윤 대통령이 신임 1년도 안돼서 레임덕 상태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김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신 변호사는 논란이 이어지자 사퇴했다.
박 평론가는 "김 후보가 상대 후보들을 오직 '윤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는 점만 부각시켜 표를 얻으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싶다"면서 "전략의 부재, 어떻게 보면 윤심에만 기대는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으로는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김 후보가 지지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점에 조급함을 느끼는 것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박 평론가는 "안 후보는 대선 출마, 창당의 경험이 있다. 황 후보도 당대표, 국무총리 등의 경험이 있다"면서 "반면 김 후보는 초반부터 인지도가 낮았다. 울산시장을 했지만 보여준 게 없지 않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결선투표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조급함이 있는 것 같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