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중인 사건에 영부인 변호인 자처하는 대통령실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내 편'과 '네 편' 다른 적용?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면서, 사실상의 변호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가 지난달 31일 경기 성남 분당구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열린 디자인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최근 대통령실이 앞장서 김건희 여사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 대통령실 뉴스룸 '사실은 이렇습니다' 카테고리에 올라온 7개의 글(17일 기준) 중 김 여사와 관련한 해명 글이 5건입니다. 나머지 2건은 각각 '천공, 관저 이전 관여 의혹', '윤석열 정부 개정 교육과정서 의도적으로 5·18 민주화운동 삭제 의혹'에 대한 해명 글이었습니다. 대통령실 공식 홈페이지 뉴스룸이 김 여사 의혹 해명에 집중적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아무런 법적 지위가 없는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과 결혼하기도 전에 있었던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특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당사자는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기존 청와대에서 여사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이행했습니다. 즉, 공식적으로 현재 대통령실에서 여사와 관련한 업무를 전담하는 공식 조직 및 인력도 없습니다.
◆대통령실, 수사 중인 사건에 '무죄' 가이드라인 제시
나아가 검찰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김 여사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검찰 인사권을 쥔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기관인 대통령실에서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검찰에 어떻게 결론을 내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법적 논리도 맞지 않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14일 <도이치 판결문에 김건희 여사 계좌 등장? → "法, 文 정권 억지 기소에 제동…판결문에 무고함 드러나">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 시절 2년 이상 탈탈 털어 수사하고도 기소조차 못 한 사유가 판결문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대선 기간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사건을 억지로 공소시효를 늘려 기소했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 "2년 넘게 수사하고도 김 여사의 구체적인 가담 사실을 특정할 내용이 전혀 없어 공소사실을 작성할 수조차 없었던 것" 등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추미애·박범계 장관 시절 검찰 조직의 수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0개월이 지나도록 검찰은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았으며 '무혐의'나 '기소' 등 결론도 내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는 김 여사의 계좌를 통한 거래 가운데 재판부가 유죄로 본 거래가 48건이나 됐고, 판결문 본문에는 '김건희'라는 이름이 37회나 등장합니다. '김 여사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차 작전 세력은 전혀 관계가 없다'던 대통령실의 앞선 해명도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또한 대통령실은 이 사건의 본질을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사건을 억지로 공소시효를 늘려 기소했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은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 원'이라는 '유죄'를 받았습니다. 함께 기소된 증권사 주가조작 선수 등도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 판결을, 일부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분명 유죄를 받은 범죄자들도 있습니다.
/대통령실 공식 누리집 갈무리 |
대통령실의 말대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사건이면 재판부는 모두 '기각'이나 '무죄' 판결을 내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그런데도 법원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대통령실이 한 것입니다.
김 여사 의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의혹에 대한 이중적 대처도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각각 영부인, 제1야당 대표가 되기 전 발생한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아무런 법적 지위가 없는 영부인보다 삼권분립 체제의 한 축인 입법부의 핵심 인물인 제1야당 대표가 더 엄혹한 잣대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부인과 제1야당 대표, 의혹에 다른 대처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를 '대장동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했습니다. 검찰 수사를 받기도 전이었습니다. 윤 후보의 이 발언은 검찰 수사 착수 1년 5개월 만에 일정 부분 현실화됐습니다. 그간 이 대표와 그 주변은 사상 최대 규모 수사, 백 번이 넘는 압수수색, 세 차례에 걸친 소환조사를 받았고 16일 검찰은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이라고 판단하고, 헌정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반면 김 여사는 검찰 수사에서 한 차례 서면 답변서를 보냈을 뿐 소환조사도 없었고, 압수수색도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여사를) 소환조사한 바는 없고 (지난 정부에서) 서면조사를 했었고, 그리고 출석요구를 한 바는 없는데 소환을 위한 변호사와의 협의는 있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 장관은 김의겸 민주당 의원의 '왜 서면조사를 받고서도 무혐의 처리하거나 아니면 기소를 하거나 결정을 못 짓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엔 "지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1심 결과까지 잘 고려해서 수사해서 결론을 낼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진 법무부 장관도 김 여사 사건에 대한 결론이 안 났다고 하는데, 대통령실에서 '무죄'라고 이미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도어스테핑이 진행되던 시절인 지난해 10월 20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전 정권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민주당에서 야당 탄압과 기획 사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질문에 "수사에 대해선 저 역시 언론보도를 보고 아는 정도다. 수사 내용을 챙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12월 1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서해 피격 수사와 관련해서 정권이 바뀌자 판단이 번복됐다고 말했는데, 대통령실 입장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대통령실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장동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이 발언은 검찰 수사 착수 1년 5개월 만에 일정 부분 현실화됐다. 고강도 수사를 벌인 검찰은 16일 '대장동 몸통은 이재명'이라고 판단하고, 헌정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
전 정권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고, 김 여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실제로 수사가 이뤄지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무죄'라고 주장하는 내로남불적인 행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16일 "어제 법사위 회의에서 한 장관이 김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와 관련해 서면 답변서의 존재를 확인해 줬다. 서면조사의 시기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어떠한 조사도 없었다"며 "야당 대표에게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와 망신 주기 소환조사로 일관하던 검찰이 왜 김 여사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 소환도 조사도 하지 않는 것인가. 김건희 특혜를 위한 검찰인가"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박 대변인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남편 덕에 김 여사는 마치 무고한 사람 행세를 하며 수사 특혜를 보고 있다. 이것이 윤석열 정권이 침이 마르도록 강조한 '법과 원칙'인가"라며 "유독 이 정권은 김 여사 앞에서만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나만 빼고 공정과 상식을 지키라 한다면 어느 국민이 그 말에 동의하겠는가"라고 질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개월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은 과연 모든 국민에 동등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민주당의 주장처럼 '내 편'과 '네 편'에 다른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요?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김 여사 변호인처럼 나서서 무죄를 계속 주장한다면 후자에 대한 의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습니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