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 김성주 "연금개혁, 주택구입 연계 '싱가포르 모델' 주목"
입력: 2023.02.10 00:00 / 수정: 2023.02.10 00:00

"국민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천천히 한 걸음씩"
"연금 개혁의 모든 과정을 국민과 함께해야"


김 의원은 주택 자금 등의 목적으로 국민연금을 중도 인출해서 쓸 수 있는 싱가포르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김 의원은 주택 자금 등의 목적으로 국민연금을 중도 인출해서 쓸 수 있는 '싱가포르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상>편에 이어

[더팩트ㅣ국회=이철영·박숙현 기자]

◆국민연금으로 주택 자금 대출 가능? "싱가포르 모델 고민"

국민연금으로 주택 구입, 의료비 지출 등의 목적으로 중도 인출해 활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 모델이다. 구체적인 국민연금 개혁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다.

본인 적립액에 이자를 더한 액수가 연금 수령액으로 결정되는 완전 적립식이다. 부동산 용도로 사용 가능한 일반계좌, 노후용 특별계좌, 의료용 의료계좌 등으로 세분돼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싱가포르 중앙정립기금(CPF)의 보험료율은 37%(55세 이하 기준)로,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9%)의 4배에 해당하지만,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어 납부자 저항이 적다. 자금 운용도 안정적이다 보니 이를 바탕으로 주식, 부동산 등 대체투자를 통해 상당한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연금은 채권, 주식 등에 치우쳐 있는 자산 구성을 다양화할 수 있는 한편, 연금가입자는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같은 방안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국민의당 창당 당시에도 주목받았다.

'싱가포르 모델'을 언급하자 김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역사학도 출신답게 '복지 제도'의 역사를 풀어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모델은 사회보험 방식으로 근로자의 소득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영국의 베버리지 모델은 조세 기반으로 전 국민을 포괄적으로 보호하고 빈곤을 예방하는 데에 방점이 있는데, 현대 복지제도는 이들이 결합되고 사적 연금까지 더해진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 체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위에서 강조하는 '구조 개혁' 과정에서 자연스레 '싱가포르 모델'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퇴직연금 간의 관계, 정년과 연금 수급개시 연령의 차이 등 노후소득 체계 전반을 종합적으로 재설정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의 경우 윤석열 정부는 '40만 원' 방안을, 민주당은 '노인부부 합산 감산 폐지' 방안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김 의원은 이 같은 부분까지 검토해 공적연금 구조를 다듬어야 제대로 된 연금개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 의원은 특히 싱가포르 모델이 주택 구입과 연계한 것을 두고 "아주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연금 불신'이 깊은 청년층을 유인하고, 연금 제도가 지속 가능하게 하는 체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우리로 따지면 LH(한국도시주택공사)를 통해서 공동주택, 아파트를 짓는다. 그것을 국민들한테 주는 것이다. 신청하면 된다. 20평대 아파트면 2억 원대 정도인 데, 이제 막 각 대학을 졸업하거나 취직한 사람은 그 돈이 없다. 그러니까 전체 금액 중 몇 %만 계약금으로 내면 내 집이 된다. 그러고 나서 매월 국가에 나머지 돈을 갚아나간다. 내가 낸 연금 계정에서 국가가 자동으로 빼가는 것이고, 한 50세 정도 되면 100% 낸 게 된다. 이 제도의 특정은 임대주택이 아닌 자가주택이라는 것이다. 100%가 되면 또 연금 계정으로 돌려준다. 그러면 내 집 하나가 생기고, 노후 대책까지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하면 연금을 받는다. 완전히 보장되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어 "그 나라의 현실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집도 마련이 되고 노후도 보장이 되기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 나라가 되겠나"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을 이용해 내집 마련 자금을 빌려준다면 연금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봤다. 국민연금 이사장 시절이던 2018년 10월 13일 전주대학교 특강 청년, 국민연금을 만나다 모습. /김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김 의원은 국민연금을 이용해 내집 마련 자금을 빌려준다면 연금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봤다. 국민연금 이사장 시절이던 2018년 10월 13일 전주대학교 특강 '청년, 국민연금을 만나다' 모습. /김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국민 설득해야"

정치권에선 올해 10월 정부안이 국회에 넘어오면 내년 총선이 임박한 국회가 타협안을 도출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표심을 의식한 여야가 연금개혁을 두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미룰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벌써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위 산하 민간 자문위는 당초 지난 1월 초안을 보고할 예정이었지만, 이달 말로 미뤄졌다. 이에 따라 연금특위의 개혁 최종안 제출도 예정했던 오는 4월보다 늦게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여야 간사는 지난 8일 만나 '국회는 공적연금의 모수개혁보다 구조개혁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에 합의했다. 당초 특위는 '더 내고 더 받을지' 등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의무가입기간, 수급개시 연령 등 조정)을 과제로 설정했었다. 구조개혁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껄끄러운 '모수개혁'을 정부에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합의안 마련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예상 시나리오"라고 진단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당적 협의가 가능할까'라는 물음에 김 의원은 "여야가 똑같이 상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여당은 총대 메기 싫은 거고, 야당은 하기는 해야 되는데 우리가 꼭 해야 해 이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하는 게 필요한 그런 면에서 깊은 논의, 심사숙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 순회 토론회도 하고 또 이해 당사자들도 만나고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되고, 국회도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이 논의 과정에 같이 참여해야 국민이 믿고 같이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성주 의원이 취재진으로부터 국민연금 개혁과정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다 잠시 생각하는 모습.
김성주 의원이 취재진으로부터 국민연금 개혁과정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다 잠시 생각하는 모습.

김 의원은 이번 연금제도 개혁과정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노후소득보장'과 '재정 안정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게 첫 번째다. 김 의원은 "더 내고 덜 받는 윤석열식 연금 개혁과 다르다. 더 내고 더 받는 게 민주당의 연금개혁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 원칙을 언급하기 전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글로 정리했다. '신중함'이 엿보였다. 김 의원은 "두 번째는 초당적 연금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다. 여당 때 추진했고 이루지 못했는데 야당이 됐으니까 우리는 뒷전으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책임있게 연금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정치적인 이해 득실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국민과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과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연금 개혁의 모든 과정을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제도는 세대 간, 계층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국민 참여가 개혁 추진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연금제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노후실태가 어떤지 국민이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다양한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는 모수개혁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고, 구조개혁 방안도 함께 논의하는 게 필수라는 진단이 깔려 있다.

김 의원은 "맨 먼저 해야 할 것은 노후 실태가 어떤지 국민에 객관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거다. '국민연금이 있으면 내가 노후 걱정이 없겠구나' 그런 결론을 스스로 내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개혁이 되겠나'라는 거듭된 물음에 김 의원은 말했다.

"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입니다. 그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를 어떻게 뜀박질해서 할 수 있겠어요.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씩 나가야 해요. 이제 걸음만 뗐어요. 이제 코끼리 안 가려고 하는 걸 낑낑 밀어 가지고 겨우 한 걸음 뗐는데 '너 왜 이렇게 천천히 가'라고 채찍질하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요."

김 의원은 연금개혁은 코끼리 옮기기라며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연금개혁은 코끼리 옮기기"라며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19대 때와 21대 국회 간 차이를 느끼는지'라고 묻자 김 의원은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19대 때보다) 입법 제안은 굉장히 활발합니다. 훨씬 더 많은 법안들이 제출되고 있고 통과도 되는데, 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정치 기능은 오히려 약화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정치 양극화 그러니까 여야의 양극화, (양당 모두) 같은 정당 내에서의 견해 차들이 더 벌어진 것 같습니다. 국회가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진짜 받으려면 문제 해결형 정치를 해야 합니다. 국민은 아우성을 치는데 그에 대한 국회의 응답은 없어요."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구? 1964년생. 전북 전주 출신. 민주화운동 출신인 그는 1998년 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주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 이어 삼수 끝에 전라북도 도의원에 당선되면서 풀뿌리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 때 전주시 덕진구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전문위원 단장을 맡아 국정 방향 설계에 참여했다.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약 2년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후, 21대 총선에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19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 상반기까지 약 4년간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를 맡아 '복지 분야 전문성'을 발휘했다. 현재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전거 출퇴근하는 국회의원'으로 유명하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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