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정지…헌재 '탄핵' 판단은 미지수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 야3당이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헌재 판단을 통해 이 장관이 탄핵될지는 미지수다. 이 장관 파면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 야3당이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헌정사 첫 국무위원 탄핵 소추 사례다. 이 장관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끝날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여당은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을 위해 이 장관 탄핵을 가결시켰다며 '헌정사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이라고 반발했다. 21대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장관 탄핵안 가결 사태가 빚어지면서 여야 경색 국면은 한층 더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8일 오후 본회의에서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친 결과 총 투표수 293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09표, 무효 5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이 장관에게 송달된 때부터 직무가 정지된다. 이 장관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에 소추의결서 정본이 전달되는 대로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된다. 행안부와 이 장관 개인에게는 소추의결서 등본이 전달된다.
앞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다수 의석을 가진 169석의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단독으로 가결할 수 있고, 야당에서는 이 장관의 책임을 물어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촉구해온 바 있기 때문이다.
야3당이 제출한 탄핵소추안에는 '이태원 참사' 관련 이 장관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소추안에는 이 장관이 △재난 및 안전관리 사무를 총괄·조정하여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대형참사 예방을 위한 사전 재난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참사 발생 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대통령 지시조차 제때 이행하지 않은 채 재난대책본부를 적시에 가동하지 않고 수습본부를 설치하지 않음 점 △부적절한 발언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에 상처를 준 점 △대형재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운영을 하지 않은 점 등이 포함됐다.
탄핵의 근거로 제시한 법률 위반 사항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위반 △사전 재난예방 조치의무 위반 △사후 재난대응 조치 의무 위반 등이 담겼다. 헌법 위반 사항으로는 '국가의 제1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제34조 제6항)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또 공무원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과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의 내용을 담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을 탄핵의 근거로 기재됐다.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을 한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제안 설명 도중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렀다. /남윤호 기자 |
본회의에서 제안 설명을 한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이태원 거리를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들은 목숨을 잃었다"며 "국민이 다급한 목소리로 위기를 알렸지만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유족들의 뜻을 받들어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러드리겠다"며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을 읽어나가기도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당초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이 장관 탄핵소추안 표결을 실시하려 했다. 민주당은 이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표결해 탄핵소추안 안건의 순서를 대정부질문 전으로 앞당겼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안건을 회부에 조사를 우선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 여당은 즉각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 집결해 "'이재명 방탄쇼' 탄핵소추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관으로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데 몇 달 동안 비우는 일을 민주당이 강행했다"며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민주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도 이 장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데에 대해 "의회주의 포기이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민주당 등 야당 의도대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지만, 실제 이 장관의 탄핵까지는 '첩첩산중'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되면, 검사의 역할을 하는 소추위원을 여당 소속 법사위원장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맡게 된다. 이 장관의 헌법·법률 위반 사실을 입증하는 일을 여당 의원이 하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 전 기자들과 만나 '탄핵 심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취지의 질문에 "소추위원이 법적 지위이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활동할 수밖에 없고, 아닌 걸 맞다고 할 수도 없다"는 원론적 대답을 내놨다.
또 헌재 재판관 중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이선애·이석태 재판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변수다. 이선애 재판관은 임기가 내달 28일, 이석태 재판관은 오는 4월 정년 퇴임한다. 후임 재판관의 임명권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두 명의 재판관이 모두 교체된 다음 재판이 진행되면 야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헌재 재판관 총 9명 중 7명이 출석한 상태에서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이 장관은 파면된다.
야당은 이 장관을 비롯한 현 정부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진 바 없으니 탄핵소추에도 명분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역대 대형참사가 있을 때마다 주무장관 스스로 사퇴를 하거나 대통령이 해임시켜왔던 것은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만큼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장관 탄핵소추에 나선 것은 윤석열 정권을 그저 흠집내겠다는 그어떤 정치적 선택이나 술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도 오전 SBS 라디오에 출연해 "역사상 초유의 일이기 때문에 (탄핵소추안이 인용될지, 기각될지) 어느 쪽으로 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자신의 탄핵소추안 보고를 들었다. /남윤호 기 |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 장관의 경우, 향후 헌법에 대해 중대한 위반 사항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제는 법률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 소추위원이 김도읍 의원인 점 등을 보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며 "(참사 발생 시) 주무장관이 사퇴하는 것은 정무적으로는 상식이나, 현 정부에서는 버티고 있으니 야당으로서 내밀 수 있는 방법은 탄핵소추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를 기점으로 여야 간 강대강 대치가 심화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2월 임시국회에서도 여야가 현안과 관련한 입장차를 줄이지 못하고 대치를 지속하다 1월에 이어 2월에도 민생 법안 처리를 미룰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이 장관 탄핵과 관련해 "파면되어야 마땅할 주무장관을 지금까지 그 자리에 둔 것만으로도 이 정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대통령은 국민과 유족에게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사과해야 한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이 장관 문제와 더불어 김건희 여사 특검 수사 촉구 등 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일 예정이다.
반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75년 우리 헌정사에 장관 탄핵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면서 "민주당이 무너뜨린 헌법 질서를 헌법재판소가 바로 세울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