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 논란 속 국회 입성
전문성 살린 입법활동으로 주목받는 이들도
21대 국회는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 시작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소수정당을 위해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이 무색하게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 창당하면서다. 거대 양당이 사실상 편법을 사용한 것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제가 정치개혁의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의사당 전경 /더팩트 DB |
정당의 얼굴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는 정당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전체 의석 300석 중 47석만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선거제 개편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비례대표 확대' 방안이 대두되고 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례의원들, 비례대표 제도 자체에 대한 유권자 신뢰는 두텁지 않다. <더팩트>는 21대 국회에서 활동하는 비례대표 의원 47명의 주요 의정활동과 이들에 대한 인식을 짚어보고, 22대 총선 준비 현황을 살펴봤다. 아울러 비례대표제가 지금의 '양극단 혐오 정치'를 바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총 세 편에 걸쳐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21대 국회는 선거를 시작하기 전부터 논란이 거셌다. 거대 양당이 비례 전용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이다. 당초 정치권은 정당득표율과 의석수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미래한국당을, 더불어민주당은 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과 연합한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며 다당제 실현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또, 위성정당을 급조하며 공천을 두고도 잡음이 일었다. 특히 미래한국당은 미래통합당 황교안 당시 대표와의 의견 차이로 명부가 하루만에 뒤바뀌는 사태도 벌어졌다.
2020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왼쪽)은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비례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며 비판을 받았다. /이새롬 기자 |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기대감과 위성정당의 논란 속에서 국회에 입성한 21대 비례대표 의원. 이들의 의정활동은 어떨까.
성실성의 척도인 출석률을 살펴봤다. 지역활동이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대체로 높은 출석률을 보였다. 국회 회의록과 참여연대 '열려라 국회' 등에 따르면 비례대표 의원들의 평균 본회의 출석률은 90.82%, 상임위원회 출석률은 93.69%다.(2023년 1월 17일 기준)
본회의 출석률 상위 5명은 △배진교 정의당·최영희 국민의힘 의원 100% △양경숙 민주당 의원 99.1% △전용기 민주당 의원 98.2% △이수진·강민정 민주당 의원 97.3% △노용호 국민의힘 의원 96.43% 순이었다. 반면 하위 5명은 △이용 국민의힘 의원 74.77% △정운천·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77.48%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79.28%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81.08% △조명희·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84.68% 순이었다.
상임위 출석률 상위 5명은 △강은미·류호정 정의당 의원 100% △김경만 민주당 의원 99.55% △양경숙 민주당 의원 99.39% △최혜영 민주당 의원 99.34% △정필모 민주당 의원 98.88% 순이었다. 하위 5명은 △이용 국민의힘 의원 81.44%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82.73%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 83.22% △노용호 국민의힘 의원 85.19%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 85.86% 순이었다.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 활동을 기반으로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지역구 의원에 비해 의정활동도 눈에 띄기 어렵다. '금배지를 쉽게 달았다'는 비판도 따라온다. 21대 국회의원 배지. /더팩트 DB |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인식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지역 활동을 기반으로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지역구 의원에 비해 의정활동도 눈에 띄기 어렵다. '금배지를 쉽게 달았다'는 비판도 따라온다. 특히 위성정당 논란이 있었던 21대 비례대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비례대표제 취지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전문성 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정치권 관계자 A 씨는 "지난 비례대표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가 약한 것 같다. 위성 정당하면서 명부도 바뀌고 정치색이 강해지고 전문성은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 B 씨는 "(지난 총선에서) 전문성이 아니라 당시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은 사람을 공천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으로 채워놓았으니 비례대표 취지대로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제도 자체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다. 정치권 관계자 C 씨는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제도 자체가 책임성이 약하다. 유권자가 직접 뽑지 않는다. 의원 개인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지역구 의원에 비해 전문성이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도 않다. 진짜 실력있고 경쟁력 있었으면 지역구에 나가지 않았겠나"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에 비해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비례대표 의원이라고 의정활동에 제약이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실제로 비례대표 의원을 '0.5선'이라고 부르는 지역구 의원도 있다. 지역구 의원에 비해 목소리에 힘이 안 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정활동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전국적인 의제를 끌어내는 등 다수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본연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는 "위성정당 때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공천을) 정신없이 빨리 해야됐기 때문에 그런 면(공천 불투명성)도 좀 있지 않았을까"라면서도 "비례대표 의원 수준이 지역구 의원보다 낮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역구 의원은 전국적인 의제를 가지고 제대로 활동한 사람이 몇 명 안 된다. 사모펀드, 무자본 거래도 문제가 많았지만 지역 민원이 아니기 때문에 법안이 잘 안 나온다"며 "오히려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 눈치를 안 봐도 돼 국회의원 본분에 가깝다. 특정 지역이 돈을 더 많이 가져가는 그런 이슈가 아니고 국가 전체적인 비전을 이야기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 12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2023 항공우주인 신년 인사회'에서 축사를 하는 김 의원. /남용희 기자 |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몇몇 의원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북한 무인기의 P-73구역 침범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살린 사례다. 김 의원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의 국방안보전문가다. 그는 "무인기 항적을 먼저 알았다면 북한과 내통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여당의 공세에 "국방부 보고 내용 등을 분석하면 30분이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군방안보를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 '주블리 김병주'는 구독자가 15만 명이 넘는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의정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윤 의원은 한국금융연구원장 출신의 금융·경제 전문가로 주력 의제는 '가상자산'이다. 지난 5월 루나·테라 폭락 사태 후에 발족한 국민의힘 디지털자산특별위원장을 맡아 디지털자산기본법 등을 대표발의했다.
각계각층을 대변한다는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에 충실한 의정활동으로 눈에 띄는 의원들도 있다.
'치킨집 사장' 출신인 이동주 민주당 의원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목소리를 꾸준히 대변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해 손실방지법, 임대료멈춤법 등을 발의했다. 세 차례 이뤄진 대정부질문에 모두 참여해 지역화폐 예산 삭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한국노총 출신으로 노동계를 대변한다. 이 의원은 최근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및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 강화를 주장했다.
젠더·기후위기·난민 등 새로운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도 비례대표 의원만의 차별화된 점이다.
세계은행 출신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외국인 정책에 관심을 두고 난민 문제에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조 의원은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는 이민청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한 외국인 투표권 문제에 대해서도 법안을 발의했다. 최근 정부의 이민정책이 부족한 노동인구, 저출생 대책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데에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개혁 2050 긴급토론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성주 정의당 전 정책위부의장,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 천하람 국민의힘 혁신위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 신인규 국민의힘 바로세우기 대표,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 /이새롬 기자 |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이다.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된 장애인 탈시설도 장 의원의 주력 의제다. 장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를 '기후국감'으로 진행하며 관심을 모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의제는 단연 기본소득이다. 용 의원은 기본소득의 재원이 되는 탄소세·토지세·횡재세 등을 주장했다.
비례대표 의원이 가진 다양성이 국회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2021년 출산 후 유아차를 끌고 국회에 출근해 화제가 됐다. 중년 남성 일색인 국회에서 볼 수 없던 행보다. '최초의 여성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내 시각장애 안내견이 출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반면 각종 논란으로 이름을 알린 비례대표 의원들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 D 씨는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인지도가 있어야 하니 무리수를 두기 쉬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이태원참사 당일 닥터카에 탑승해 비판을 받았다. 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사 현장에서의 사진을 게시하며 '구조활동을 벌였다'고 했다. '참사 현장을 의정활동 홍보용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발언으로 논란을 낳았다.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당내에서도 섣불렀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빚었다. 최근엔 이태원 참사 유족에 대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보좌직원 부당해고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법정 다툼 중인 의원들도 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사적 용도로 썼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경력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급변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기대를 받고 도입된 제도다. 비례는 '낙하산 공천', '줄만 잘 서도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윤호 기자 |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급변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기대를 받고 도입된 제도다. 정치적·사회적 자원이 약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배려해 원내 진출의 벽을 낮추고 의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발전 차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지역구는 경쟁을 통해 당선되는데 전국구 비례는 '낙하산 공천', '줄만 잘 서도 된다'는 인식이 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쭉 생각이 잡히다 보니 전국구 비례는 하나의 특혜라는 생각이 있다"면서도 "국회의원이 (직업) 전문성만 살리는 자리는 아니다. 권역을 대표하면서 자기 전문성 살리고 약자나 소수자 대변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다만 '다양성 반영'이라는 취지마저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당이 후보 순위를 정하는 현행 '폐쇄형 명부' 방식에선 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이미지 중심 인물이나 논공행상 성격을 띈 공천이 다수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비례대표 47명 중 23명은 직업전문성으로 직능을, 14명은 각 분야의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한 반면 10명은 당직자, 시의원 등 '정치인' 출신이다. 또 의원 다수가 비례대표를 다음 선거 지역구 출마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면서 비례대표의 장점이 변질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당은) 전문성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비례의원을 충원하지만은 않는다. 전문성 위주로 모든 비례대표를 선정하느냐. 여기에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비례대표는)어떻게든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당선) 후의 행적이 좀 그렇다. 다음 선거 공천 받아야 해서 지역구에 신경을 더 쓰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B 씨는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증명하지 못하면 제도가 공격받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