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 중단 후 '선택적 소통'
의혹 해소 못 시키는 대통령실 대응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칠곡할매글꼴'을 만든 주인공인 칠곡 할머니 다섯 분을 초청, 할머니들이 작성한 대통령실 방명록에 화답 메시지를 작성하는 것을 김건희 여사가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시도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이 멈춘 지 두 달가량 지났습니다. 도어스테핑이 진행되던 장소에 대통령이 드나드는 모습을 출입기자들이 볼 수 없게 설치한 '가림 벽'엔 최근 꽃과 화분이 놓였습니다. 대통령실 청사 로비에 설치된 거대한 나무 벽으로 인한 삭막한 느낌은 다소 줄었지만, 어찌 보면 대통령과의 언론의 사이에 '장애물'이 더 생긴 셈입니다.
윤 대통령 소통 방식의 변화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취임 후 처음으로 맞는 신년에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갖는 관례가 시작된 이후 취임(당선) 후 첫 신년에 대통령이나 당선인이 이를 하지 않은 정치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윤 대통령 세 명뿐입니다. 이 중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 신년에 기자회견보다 더 활발한 소통인 '국민과의 대화'를 했기 때문에 다른 두 대통령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대신 윤 대통령은 국내 매체 중에선 조선일보, 해외 매체 중에선 AP통신을 선택해 해당 매체와 신년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메시지는 기자회견이나 국민과 대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방적인 형태로 전달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핵에 대한 대응을 미국과 공동으로 한다는 점을 언급한 인터뷰 내용을 로이터 통신 기자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물었고, 바이든 대통령이 'NO'라고 부인했다가 양국 고위 참모들이 수습에 나서는 일도 있었죠.
윤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소통을 지속하는 게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고, 원활한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최근 사례만 봐도 윤 대통령은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겸 기후환경 대사 '해임' 결정 과정을 통해 실제론 '윤심'을 당에 강력히 전달했습니다.
저출산 대책 관련한 위원회의 장관급 부위원장이 대통령실과 뜻이 다른 아이디어를 검토하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대통령실 사회수석에게 공개적 면박을 받고 '사의'를 표명했는데, 3일간 "사의 표명을 전달 못 받았다", "사직서 제출 등 행정적 절차는 없었다"며 이해하기 어려운 침묵을 택하다가, 나 전 의원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사의 수용'이 아닌 '해임' 결정을 왜 한 것인지에 대한 부가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 대사직에서 '해임'된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머리카락을 넘기는 모습. /남윤호 기자 |
또한 지난 대선 과정에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건희 여사가 11일 보수 정치인에게 상징적인 장소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등 '조용하지 않은 내조'를 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에게 물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제대로 답하지 않습니다. '조용한 내조 기조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대통령실은 "계속적으로 조용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엉뚱한 답만 내놓습니다. 김 여사의 서문시장 방문은 봉사활동의 일환이 아니었습니다.
도어스테핑 이후의 새 대통령 소통 방식에 대해 대통령실은 두 달째 "기자회견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대국민 소통방안에 대해서 계속 검토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MBC 기자의 무례한(?) 도어스테핑 질문과 '바이든/날리면', '이XX' 보도 등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도어스테핑을 중단할 때 대안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나 싶은 의심도 듭니다. 마지막 도어스테핑 직전에 뒤에 있는 취재진의 얼굴을 대통령이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단상을 설치했다가 딱 한 번 이용하고, 더 이상 도어스테핑이 열리지 않게 된 것도 이런 의심에 힘을 싣는 대목입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면서 '소통 강화'를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웠고, 그 대표적 방식이 도어스테핑이었습니다. 집무실을 옮기기 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윤석열, 경청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중략)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독단'으로 문제를 정리하나 민주주의에서는 오직 대화와 타협만이 해결책입니다.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대통령은 언론에 자주 나와 기자들로부터 귀찮지만 자주 질문을 받아야 하고 솔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취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1회 정도 기자들을 기탄없이 만나도록 하겠습니다."(2022년 2월 11일 대선 후보 TV토론회)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건희 여사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1일 단독으로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에서 어묵을 시식하며 상인들과 대화하는 김 여사. /뉴시스 |
윤 대통령의 그리 멀지 않은 과거 발언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발언을 지난해 3월 10일 당선 인사말에서 한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많은 국민이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국갤럽이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35%, 부정 평가는 57%로 긍·부정 평가 격차가 22%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부정 평가자는 그 이유로 △경험·자질 부족/무능함(12%) △소통 미흡(10%) △경제·민생을 살피지 않음(10%) △독단적·일방적(9%) 등을 이유로 꼽았는데, 소통 미흡과 일방적이라는 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소통에 대한 문제가 실질적인 가장 큰 부정 평가의 이유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표본오차 ±3.1%P, 상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누리집 참조).
대통령이 스스로 여러 차례 약속하기도 했고, 대통령을 부정 평가하는 과반 국민도 가장 큰 문제라고 꼽는 '소통'에 대한 재점검이 시급해 보입니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