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출마 앞두고 尹과 대척점
친윤계 "반윤, 제2의 유승민"...맹폭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임명직 '사의'로 당권 도전을 암시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으로 빗장을 걸었다. 나 전 의원은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전대 출마 가능성을 접지 않았다. 다만 선택지는 크게 줄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임명직 '사의'로 당권 도전을 암시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으로 빗장을 걸었다. 나 전 의원은 '윤심(尹心)'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전당대회를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서 치러야 하는 만큼, 정치적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 전 의원은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대리인을 통해 제출하면서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도 숲은 그 자리를 지키고,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며 당권 도전에 무게를 실었다.
나 전 의원은 "함부로 제 판단과 고민을 추측하고 곡해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드린다"며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후 나 전 의원은 공개 일정 없이 당 대표 출마 여부를 위한 장고에 들어갔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후 윤종필 전 의원, 정양석 전 의원, 김민수 혁신위원 등과 충북 단양의 구인사를 찾았다. 구인사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대선 당시 방문했던 곳으로 나 전 의원이 전대 출마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은 점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나 전 의원이 13일 오후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해 총무원장 무원 스님의 안내를 받아 경내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 윤 대통령 부부도 지난 대선 이곳을 찾았다. /대한불교 천태종 제공 |
앞서 나 전 의원은 당원 여론조사에서 매주 1위를 차지하며 유력 당권주자로 언급됐지만 '윤심(尹心)'의 선택은 김기현 의원이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3일 라디오에서 전대 출마와 관련해 "제가 맡은 역할을 (윤 대통령과) 어떻게 조율할 것이냐 고민이 남아있다"고 말하며 대통령실과 불편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후 나 전 의원이 지난 5일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하자 대통령실은 "실망스럽다" "부적절한 처사"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나 전 의원은 결국 지난 10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문자로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하고 이날 정식 사직서를 제출하며 전대 출마에 대한 장고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이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민에 빠진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실은 '해임'을 결정했다. 나 전 의원이 겸하고 있고 사의조차 표하지 않은 기후환경대사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내렸다. 이어 공석이 된 두 자리에 즉각 후임을 내정했다.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에게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 전 의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
정치권에선 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정치적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윤심'(尹心)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전대 출마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 오히려 리스크로 부상했다고 해석한다.
우선 나 전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공식화하더라도 힘을 실어줄 현역 의원이 몇이나 될지 미지수다. 여당 내에서는 '친윤계'가 주류로 자리를 잡은 데다, 권성동 의원의 불출마 등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전대 출마자의 교통정리가 이뤄지면서 단일대오가 공고히 형성됐다. 이미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나 전 의원을 돕는 것만으로도 '비윤' '반윤' 프레임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익을 위해 세일즈 외교를 나가시는 대통령의 등 뒤에다 대고 사직서를 던지는 행동이 나 전 의원이 말하는 윤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를 위하는 길인가"라며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친윤계 박수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 그래서 제2의 유승민은 당원들이 거부할 것"이라며 나 전 의원을 '제2의 유승민'으로 못 박았다.
지난 2019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국회를 찾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였던 나 전 의원을 찾아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
나 전 의원이 당권 레이스를 완주한다 하더라도 낙선할 경우 정치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나 전 의원의 주요 지지층은 전통 보수층인 '60대 남녀'와 'TK(대구경북)'다. 윤 대통령에게도 이들은 주요 지지층으로 통한다. 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세운 상황에서 전대에 출마해 낙선한다면 감당해야 할 손해가 막심하다는 분석이다. 낙선 이후 총선 공천 가능성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나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해임 조치 이후 페이스북에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한다"면서도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나 전 의원의 '어느 자리에 있든'이라는 표현을 두고 출마 강행이라는 주장과 불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견으로 갈린다.
다만 시간은 나 전 의원 편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이달 14~21일 해외 순방에 나서는 데다 순방 직후에는 설 연휴가 시작돼서다. 나 전 의원이 설 연휴 이후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윤 대통령과 갈등 국면을 이어간다면 스스로에게 부담일 뿐 아니라 정치적 피로도까지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