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 말"
이태원 참사 유가족, 생존자들이 12일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 참석해 진술했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2차 공청회에서 생존자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태원참사 유가족, 생존자들. /뉴시스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참사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에게 개인적인 극복도 중요하지만 진상규명 만큼 큰 치유는 없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찾아서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극복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치료와 상담으로 아무리 개인적으로 노력해도 결국 바뀌지 않는 사회와 쏟아지는 망언들이 제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듭니다."
12일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2차 공청회에서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씨가 증언대에 섰다. 김 씨는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상황인식과 발언이 '2차 가해'라고 지적하면서 정확한 진상규명과 상황판단이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김 씨는 이날 생존자 2명 중 첫 번째로 마이크를 잡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나갔다. 김 씨는 "나는 왜 살았는가. 살았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진술에 따르면 김 씨는 2017년부터 매년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 참사 당일에도 여느 때처럼 이태원으로 향했다. 저녁 10시께부터 인파가 몰렸고 "압박이 점점 심해져 발이 동동 뜰 정도"였다.
김 씨는 참사 당일 상황을 덤덤하게 설명해나갔다. 그는 "오후 10시 40분부터 11시 20분이었다. '사람이 깔려 죽었어요. 제발 통제에 협조해주세요' 외치는 것을 봤고, 이내 곧 1초에 4, 5명씩 들것으로 실려 나오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뭔가 잘못됐다 느꼈지만 실려가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김 씨는 이태원 상인들의 도움으로 자정을 넘겨 귀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도 불안과 공포는 이어졌다. 김 씨는 "집으로 돌아오고나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뉴스 속보가 뜰 때마다 사망자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도대체 내가 무슨 현장에 있었던 것인지 피부로 느꼈고 죄책감과 후회로 서서히 제 일상은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했다.
김 씨는 직접 심리 상담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트라우마 극복에 나섰다고 밝히면서 "저는 강한 사람이다. 심리상담도 자발적으로 잘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악성 댓글이나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를 힘들게 하진 않았다. 저에게 2차 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었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참사 후 행정안전부 장관 첫 브리핑을 보며 처음으로 무너져내렸다. '예전에 비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의 인파는 아니었고 경찰 병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저는 이 말을 '놀러 갔다가 죽은 사람들이다'라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어 159번째 희생자 소식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한 발언을 언급하며 "치료와 상담으로 아무리 개인적으로 노력해도 결국 바뀌지 않는 사회와 쏟아지는 망언들이 제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든다"고 반박했다.
김 씨는 "저는 올해도 이태원에 갈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태원과 핼러윈은 잘못한게 없기 때문"이라며 "누군가에게 일상이었던 이태원과 누군가에게 일상이었던 할로윈이 왜 아직도 혐오의 대상으로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사람 많은 곳은 가는게 아니야'라고 알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무엇이 잘못 됐는지, 왜 사람들은 혐오문화를 생성해내는지를 다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참사현장에서 모두는 삼류가 아닌 일류였다. 삼류는 그 위에서 시스템을 잘 돌아가게 지휘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참사의 원인은 유흥과 밤문화, 외국 귀신파티문화가 아니다.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군중밀집관리 실패"라면서 진술을 마쳤다.
한편 이번 공청회에 여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출석을 반대하면서 이 장관과 생존자, 유족과의 면담은 불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