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급이 꺼낸 저출산 아이디어 이례적 제동
마이웨이 지속에 "부적절한 처사, 대단히 실망"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유력한 당 대표 후보로 꼽히는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통령실이 저출산 대책을 고리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유력한 당 대표 후보군으로 꼽히는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나 부위원장이 '출산 시 대출금 탕감' 정책 카드를 꺼내고, 전당대회에도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에 대통령실은 즉각 '선 긋기'로 맞대응했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선 대통령실이 나 부위원장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사실상 종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 5일 나 부위원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도 신혼부부나 청년에 대한 주택 구입, 전세자금 대출과 관련한 지원책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며 "조금 더 과감하게 원금 부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며 헝가리 사례를 언급했다.
헝가리는 저리로 40세 미만 초혼 여성에게 최대 4000만 원까지 대출을 해주고 5년 이내 1명의 자녀를 출산하면 대출이자를 면제한다. 또 2명의 자녀를 낳으면 대출액의 3분의 1 탕감, 3명 이상 출산 시 대출액 전체를 탕감해 준다. 이 제도를 도입한 해인 2019년 9월 기준 헝가리 혼인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해 가시적 효과를 보였다.
이와 함께 나 부위원장은 6일 KBC광주방송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선거 출마와 관련해 "많이 마음을 굳혀가고 있다"며 출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음을 시사했다.
이후 같은 날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나 부위원장의 발언을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어제 간담회에서 나 부위원장이 밝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하는 정책 방향은 본인의 개인 의견일 뿐 정부의 정책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선 나 부위원장이 전당대회 출마로 결심을 굳힌 듯한 언론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대통령실이 나 부위원장을 저격하는 브리핑을 한 것을 두고, 그의 출마를 '견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정치적인 것은 제가 말씀드릴 계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공식적으로 대통령실은 나 부위원장이 꺼낸 저출산 대책 검토 의견 반대와 전당대회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를 방문해 아이들을 살펴보는 모습. /남용희 기자 |
하지만 나 부위원장은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실의 우려 표명에 대해 십분 이해한다"라면서도 "돈을 준다고 출산을 결심하지는 않으나,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 재정투입 부담도 크나, 그 불가피성도 뚜렷한 것이 사실이기에 더욱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더욱 치열한 논쟁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번 이슈를 정책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의 프레임에 가두고, 억측을 바탕으로 근거 없는 곡해를 하는 일은 지양해주시기 바란다"며 "정치권 일부 인사들이 저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따른 향후 유불리 계산에 함몰돼, 이번 사안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사회수석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부인한 정책을 나 부위원장이 거듭 언급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은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일 <더팩트>에 "대단히 실망스럽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서 위원장인 대통령과 전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나 부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라며 "국무총리실이 국정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를 강행한 것은 행정부의 일원임을 망각한 처사"라고 질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나 부위원장은) 예산 주무부서인 기재부마저도 예산 조달 방법과 예산 추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점을 들어 극구 반대한 '개인 의견'을 발표해 국민들께 심각한 혼란을 야기했다"며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내각으로부터 나 부위원장의 언론 발언의 심각성에 대해 보고를 받고 해당 정책에 대해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반된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언론 인터뷰에 이어서 또다시 페이스북에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 '재정투입 부담도 크나, 그 불가피성도 뚜렷한 것이 사실이기에 더욱 어려운 문제'라는 등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국가적 중대사인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부위원장으로서 지극히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나 부위원장의) 일련의 언행은 수십조 원이 들어갈지도 모를 국가적 정책에 대해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공직자로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처사"라며 "대통령실은 나 부위원장의 일련의 처사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러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거듭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언급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 청사 전경. /뉴시스 |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통령실의 과도한 선거 개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9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나 부위원장을 직격한 대통령실의 메시지에 대해 "자꾸 대통령실에서 나 부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며 "나 부위원장이 잘못한 건 맞지만, 그렇게 까칠하게 (대통령실이 대응)할 필요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조 대표는 '이게 결국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는 진행자 말에 "삼권분립이 된 나라에서 대통령의 의중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라면서도 "선거 개입이 맞다. 박근혜 대통령 때에 비해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이) 훨씬 심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국민의힘 청년당원 100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전당대회는 100만 책임당원 시대, 당원들의 축제로서 한국 정당사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며 "나경원 전 원내대표, 김기현 전 원내대표, 안철수, 조경태, 윤상현 의원과 같은 당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후보로 모두 나와 당원들의 온전한 선택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같이 당원들의 큰 지지를 받는 후보가 반드시 참여해 컨벤션 효과를 일으키고, 당원 총의로 당 대표를 선출해 총선까지 이어가야만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며 나 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를 요청했다. 나 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대통령실과 당심이 엇갈리는 가운데 나 부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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