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 노동 실태<하>] "국회 70년, 보좌진 보호 시스템은 어디에"
입력: 2023.01.03 07:53 / 수정: 2023.01.03 07:53

"문제 제기하느니 떠난다"
"정당·국회 차원에서 보좌진 보호 노력해야"


인권침해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회의원 보좌진. 그러나 문제제기는 쉽지 않다. 피해를 겪은 보좌직원은 의원의 문제를 공론화하기보다는 조용히 떠나는 걸 택한다. 국회의사당 전경. /조성은 기자
인권침해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회의원 보좌진. 그러나 문제제기는 쉽지 않다. 피해를 겪은 보좌직원은 의원의 문제를 공론화하기보다는 조용히 떠나는 걸 택한다. 국회의사당 전경. /조성은 기자

국회의원의 '손과 발' 그리고 그림자인 보좌진. 이들에겐 의원 심기보좌도 하나의 업무다. 특히 보좌진의 임면권을 가진 의원은 이들에게 절대적이다. 면직예고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하루아침에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별정직 공무원으로 근로기준법도 적용이 안 된다. <더팩트>는 법을 만드는 곳에서 일어나는 '법 밖의 노동'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전·현직 보좌직원들을 통해 국회 안에서 경험한 각종 '갑질' 이야기와 함께,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일해야 하는 보좌진들의 고충을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국회의원 보좌진의 보수는 높다. 일반 국가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다. 일반 국가공무원이 근무한 연수에 따라 호봉을 쌓고 거기에 급수를 대입해 산정하는 반면 보좌진은 4급부터 9급까지 어느 급수에 있어도 가장 높은 호봉을 받는다. 국회사무처의 2022년도 국회의원 보좌직원 보수 지급기준에 따르면 △4급 보좌관 8759만 원(21호봉) △5급 선임비서관 7763만 원(24호봉) △6급 비서관 5405만 원(11호봉) △7급 비서관 4669만 원(9호봉) △8급 비서관 4094만 원(8호봉) △9급 비서관 3635만 원(7호봉)이다.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고 업무 환경도 혹독하다. 인권침해는 '높은 보수'를 이유로 정당화되기 쉽다. 일상적인 업무도 인권침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모 의원실 현 보좌직원 G 씨는 높은 보수의 이유에 대해 "국회의원이 언제든 해고할 수 있어서, 휴가는커녕 워라밸을 보장받을 수 없어서, 권력기관이니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이유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대부분도 '보좌진은 돈을 많이 받으니 시간 제약없이 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단적인 예로, 주말에 의원과 동행하거나 평일에 새벽까지 일해도 휴식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연차 사용은 말도 못 꺼낸다"고 전했다.

휴가철이 되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G 씨는 "보좌진의 휴가일정은 의원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 대부분이 특정 기간을 보좌진에게 주고 나눠서 쉬라고 한다. 그 기간이 정해지기까지 휴가는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의원의 휴가계획이 나오고 보좌진이 의원의 비행기표, 숙소까지 예약 완료하면 그때부터 보좌진도 휴가 일정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다 아는' 문제지만 입밖에 꺼내기는 쉽지 않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 보좌직원의 상담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생이나 어린이집 보육교사 등,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환경에서는 인권침해가 쉽게 일어난다. 의원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의원과 보좌진의 특수한 관계, 세평이 중요한 업계 환경 등의 이유 때문에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을 밝히고 있는 국회의원회관. /조성은 기자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을 밝히고 있는 국회의원회관. /조성은 기자

다른 의원실 현 보좌직원 H 씨는 지난해 벌어진 박완주 당시 민주당 의원의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며 "사안이 워낙 심각해 공론화되지 않는 이상 인권침해 사건은 알려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H 씨는 "의원실이 300여 개다. 좁은 바닥이다보니 평판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 바닥 뜬다'는 생각 아니면 개인이 조용히 그만둔다"고 했다.

H 씨의 말대로 피해를 겪은 보좌직원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외부의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조용히 떠나는 걸 택한다. '모시던 의원의 등에 칼 꽂은' 인사를 채용하는 곳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는 동료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박 의원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윤예림 변호사는 "(피해자가) 3선 의원을 고소했으니 다른 의원실로 가는 건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사건 공론화로 피해자는 20년 커리어를 포기한 셈이다.

모 의원실 현 보좌직원 I 씨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I 씨는 "가해 의원이 그 일로 정치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당장 한쪽의 문제제기가 있다고 해서 의정활동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피해자가 사건을 알렸을 때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짚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의원의 지지자들도 있고, 꾸준히 세를 과시한다. 그 의원이 의정활동을 계속하는 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디지만 변화의 움직임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과거 쉬쉬하며 지나갔던 일들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보좌진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즈음부터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짤짤이' 발언 논란과 박 의원 사건에서다.

최 의원 '짤짤이' 발언 사건은 최 의원이 보좌진이 참석한 온라인 회의에서 동료 남성 의원을 향해 성행위를 연상케하는 발언을 했다고 논란이 된 사건이다. 최 의원은 성희롱성 발언이 아닌 발음이 비슷한 '짤짤이'였다고 해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강성 지지자들은 "검찰개혁하겠다는 최 의원을 날리려는 불순한 의도"라며 해당 자리에 참석했던 보좌진을 색출해 공격을 쏟아냈다.

의원들이 침묵하는 사이 목소리를 낸 건 동료 보좌진이었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와 민주당 여성 보좌진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자신의 비위를 무마하기 위해 말장난으로 응대하며 제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그러는 동안 사건을 제보한 보좌진에게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최 의원을 비판했다.

박 의원의 성폭력 사건은 피해 보좌직원이 박 의원을 형사고발하며 알려졌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선거를 앞뒀다는 이유로 사건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피해자는 민보협을 통해 외부와 소통했다. 이어 박 의원실에서 피해자가 면직동의서에 서명한 것처럼 허위문서를 작성해 피해자를 면직처리하자 이에 문제제기해 국회사무처로 하여금 면직을 취소처리하게 했다.

지난 2018년 3월 민보협 성평등 교육 당시. /더팩트 DB
지난 2018년 3월 민보협 성평등 교육 당시. /더팩트 DB

사실상 노조 역할을 하고 있는 보좌진협의회지만 역시 같은 보좌진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의원에 대해 제재할 수도, 의원실에 개입할 수도 없다. 당사자인 의원이 협조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보좌진협의회 차원에서 아직 이같은 인권침해 사건에 대응하는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이동윤 당시 민보협 회장은 "이전까지 그렇게 공론화된 사건이 없었다"며 "사건 당시만 해도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나 매뉴얼이 없어 회장단 위주로 대응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건 이후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접수받을 수 있는 신고센터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민보협 차원에서 1차 조사하고 필요하면 중재 시도나 당대표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초안 작업까지 논의됐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당 지도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피해자 보호 조치와 관련해서 윤호중 당시 공동비대위원장과 수차례 논의했다"면서 "보좌진과 매뉴얼을 만들어 비대위 회의 때 공유했으나 이후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당 차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회의원에 대한 정당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의원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면서 큰 자율성을 갖게 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의원이 가진 권력은 정당을 매개로 주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의의 전당이라 불리는 국회지만 국회의원 보좌진의 인권침해 등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전무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한 갑질 등에 대해서는 정당과 국회사무처가 보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회의사당 전경. /조성은 기자
민의의 전당이라 불리는 국회지만 국회의원 보좌진의 인권침해 등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전무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한 갑질 등에 대해서는 정당과 국회사무처가 보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회의사당 전경. /조성은 기자

이지백 현 민보협 회장도 "저희가 의원과 문제에 개입해 중재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은 사실상 어렵다"면서 "당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내 윤리심판원과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현재 윤리심판원 구성에 보좌진 참여가 보장돼있지 않다. 지난 7~8월 당헌·당규 개정을 논의할 때 보좌진이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해서 우리 입장을 대변하는 방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반영은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 차원에서는 윤리특위를 통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국회 차원에서 보좌진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의힘보좌진협의회(국보협)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제방훈 국보협 회장은 "사건을 지켜보며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명문화된 매뉴얼을 만들 계획"이라면서도 "피해자가 나서서 얘기하거나 이슈가 되지 않으면 먼저 알고 개입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생기면 보좌직원 개인이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사무처나 국보협에 신고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보좌진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짚었다.

제 회장은 "보좌진은 사무처 소속인데 사무처에서 뭘 해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통계도, 관련 자료도 없고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도 없다"며 "국회사무처 감사관 주요 기능에도 직장갑질이나 피해 현황에 대해 조사한다는 내용은 없다.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만들어진 지 70년이 지났는데 보좌진 보호 시스템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꼬집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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