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전세 피해' 심각성 인식
시민단체 "예방법안 빠르게 처리해야"
'전세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세입자 보호 등을 위해 적극적인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일종(왼쪽)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악의적인 '전세 사기'와 집값 하락·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가가 매매가를 초과하는 소위 '깡통전세'가 속출하면서 임차인들의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 가운데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세입자 보호 등을 위해 적극적인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빌 '빌라왕' 김 씨와 관련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 사고는 김 씨가 세운 법인 보유 주택에서 91건, 김 씨 명의 주택에서 80건 등 171건으로 보증사고 금액은 무려 334억 원이다.
김 씨보다 더한 '악성 임대인'도 있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금액이 가장 큰 사람은 박모 씨로, 293건 계약에서 646억 원을 떼먹었다. 2위 정모 씨는 254건 계약에서 보증금 600억 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HUG 집계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미반환 상위 10명의 체납 건수는 2073건으로, 피해액만 무려 4500억여 원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달 세입자가 집주인의 신용도 확인을 위해 세금체납 현황을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최우선 변제 소액 임차인 변제금을 1억5000만 원에서 1억6500만 원으로 올리는 일부 방안을 마련했다. 집세 대신 임의로 관리비를 높이는 것도 제동을 걸었다. 다만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납세증명서 '제시'를 요구하는 권한은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세 사기의 문제점은 임차인이 금전적 피해와 주거 불안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보증금 반환이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고, 법적 구제 절차 등이 복잡하고 시일도 오래 걸리려 세입자는 큰 애로를 겪는다. HUG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는 대신 전세보증금도 받을 수 없어 살길이 더욱 막막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서민임차인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과 입법 보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9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가 속출한 데 대해 우려하면서 "전세 사기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피해지원센터를 추가 설치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의 법률과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배정한 기자 |
김상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시민들에게 전세자금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고 이마저 날리게 되면 극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일쑤"라며 "전세 사기에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엄하게 처벌하고 재발방지대책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당국의 긴밀한 협조와 국회의 적극적인 입법 추진을 통해 신속히 제도 보완에 나서겠다"고 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지난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전세 사기 대응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근본적인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국민 보호가 절실하다"며 "국민의힘은 보다 적극적인 입법 추진으로 정부의 전세 사기 방지 대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세입자 보호 등을 위한 법안은 이미 여러 개 발의돼 있다. 21대 국회 들어 깡통전세 방지를 위한 대항력 강화 법안, 보증금이 매매가를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법안, 국세 미납 등 임대 주택의 정보 열람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이 계류 중이다.
최근에는 전세보증금을 다시 돌려주지 않는 다주택자 등 악성 채무불이행자에 대해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명단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됐다. 전세 사기에 연루된 임대사업자는 사업자 등록을 불허하고, 기존에 등록된 사업자의 경우 등록을 말소하는 등 벌칙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상임위 소위에서 법안 심사가 지지부진해 전세 사기 관련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여야가 안전운임제·추가연장근로제 등 일몰법안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다만 여야가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를 계기로 임차인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통화에서 "몇백 채의 집을 가진 임대인뿐만 아니라 임차인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예방하지 않는 부분들은 문제다. 깡통전세도 과거에서부터 부도 임대주택 문제가 있었고, 집값이 내려가면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라면서 "임차인 보호와 관련한 정책들을 정부와 국회가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간사는 "사실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했을 때 법률적으로 구제하는 것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나쁜 임대인들 명단 공개 법안, 전입 신고하면 바로 대항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설명 의무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 등 전세 사기를 예방하는 데 최소한의 법안이 마련된 것을 국회에서 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