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활동 원활하게 해야"…"보수정부 감세정책 실패"
여야는 예산안 처리 시한을 하루 앞둔 14일에도 핵심 쟁점인 '법인세 인하' 여부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여야가 예산안 협상과 관련해 핵심 쟁점인 '법인세 인하'를 두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15일까지 예산안 협상 시한을 연장한 이후 여야는 꾸준히 협상에 나섰지만,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섰다. '투자 활성화'와 '초부자 감세'라는 여야의 주장을 두고 정치권 안팎의 의견이 분분하다.
예산 부수법안인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금융투자소득세·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선 여야가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인세 최고세율 조정 문제는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여당은 정부가 제출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법인세법 개정안에 현재 4단계의 과세 체계를 3단계로 단순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법인세 과세표준 구간을 '200억 원 이하'와 '200억 원 초과'로 단순화하고, 200억 원 이하 구간은 20% 세율을, 200억 원 초과 구간은 22%의 세율을 적용하며, 과세표준 5억 원 이하의 금액은 10%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는 게 핵심인데, 이 부분에 대해 여야의 견해차가 있다.
국민의힘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하향하면, 기업이 법인세 인하로 줄어드는 세금을 투자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이 제고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국외로 떠난 우리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고, 외국 자본도 유입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5일 법인세 인하에 대해 "초부자 감세가 결코 아니고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기업을 만들고 거기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안은 법인세 정상화라는 게 여당의 설명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정권 시절 법인세를 낮췄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때인 2018년 법인세를 3% 올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인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8% 높다는 점을 거론하며 법인세 인하를 통해 국제적 조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과거 한국의 법인세율은 중간 정도에서 지금은 중상 내지 상하 정도로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법인세를 인하함으로써 기업의 주주, 근로자, 넓게는 경제 전반에 어느 정도 혜택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지금처럼 법인세 상승에 따른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활동을 원활하게 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법인세를 낮추면 경제 활동이 커지고 그만큼 기업 활동도 활발해지며, 그에 따른 세수는 덜 줄 수가 있다"면서 "기업은 주주에 대한 배당과 근로자의 급여를 더 줄 여력이 생기며, 근로자는 소득세를 더 내게 될 것이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도 처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혜택이 예상된다. 경기를 부스트업하는 데 좋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는 정부안에 대해 '초부자 감세'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남윤호 기자 |
민주당은 법인세 인하에 반대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의 초부자 감세, 특권예산에 대한 집착이 요지부동"이라며 "고작 100개 정도의 초거대 기업과 수백 명 남짓한 초부자들을 위한 천문학적인 특권 감세를 하려고 한다. 대다수 국민과 많은 기업들의 고통을 더는 데 정부의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민주당은 법인세법상 과세표준 3000억 원을 초과하는 법인이 적용받는 최고세율은 현행을 유지하되, 5억 이하 중소·중견기업은 세율을 대폭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과세표준 2억~5억 원 구간의 5만4000여개 중소·중견기업의 세율을 현행 20%에서 10%로 내려 폭넓게 혜택을 주자는 방침이다. 일명 '국민 감세안' 중 일부 내용이다. 다만, 법인세 최고세율은 내릴 수 없다는 완고한 태도다.
정의당도 명백한 '부자 감세'라고 반대하고 있다. 정혜영 의원은 지난 12일 국세청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 25%를 적용받은 과표 3000억 원 초과 법인은 단 103개에 불과하며, 이는 전체 법인 91만개 중 0.01% 수준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영국도 현재 19%인 법인세를 25%로 인상할 예정이며, 네덜란드도 법인세율 인하 조치를 취소한 바 있다면서 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권 밖에서는 법인세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경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팀장은 통화에서 "여당이 말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기업 투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그런 식으로 감세 정책을 펴서 서민 증세 결과를 가져왔고, 내수 진작도 안 됐다"면서 "현 정부에서 반성적인 검토 없이 이런 감세 정책을 펴는 것은 근시안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서민들의 삶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 투자와 사회 안전망 투자를 확대하려면 세수가 필요하지만, 정부 예산안을 보면 의무지출 정도만 증가하고 약자를 위한 복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과거를 답습하는 정책 기조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시민들을 위해 일할 자세가 돼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최고세율 22% 인하·2년 유예안' 등 중재안이 제시했다. 그런데도 여야는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끝내 여야 간 합의가 불발된다면 민주당은 자체 수정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