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쟁 속 민생 외면하더니…뒤늦게 입법 전쟁
입력: 2022.12.13 00:00 / 수정: 2022.12.19 20:32

방송법·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 충돌 전망
'한전법' 본회의 '부결' 후 뒤늦게 재추진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되면 여야는 본격적인 입법 전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화 나누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남윤호 기자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되면 여야는 본격적인 입법 전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화 나누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내년도 예산안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으로 뜨겁게 대치 중인 여야가 경쟁적으로 민생 행보에 나섰다. 아울러 예산안 처리 후 입법 정국에 대비해 쟁점 법안으로 전선을 넓히면서 임시국회 주도권 줄다리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야가 합의한 '스토킹 처벌법'이나 전기료 인상을 막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넘지 못했다. 입법이 정쟁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정작 '민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대 강 대치 중인 여야는 경쟁적으로 '민생'을 강조하며 국민에 지지를 호소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측근 2명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줄줄이 기소 되면서 사법 리스크 현실화에 직면한 민주당은 13일부터 '민생 투어'를 가동한다. 민생경제 현장을 방문해 국민 보고회를 열거나 현장 최고위원회의와 타운홀미팅을 개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12일 최고위원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여러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민생과 민주의 복합적 위기 상황"이라며 "위기 상황을 국민과 함께 극복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직접 소환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민생 행보'를 강화해 사법 리스크 돌파구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도 민생탐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도 12일 부산을 방문해 지역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한편, 2030 부산 엑스포 지원사격에 나섰다. 비대위는 부산을 시작으로 오는 14일 백령도를 방문해 군 장병 위문 활동을, 21일에는 서울 강남 구룡마을에서 연탄나눔 봉사활동을 실시할 예정이다.

당 지도부의 민생행보와 달리 원내에선 입법을 둘러싸고 주도권 잡기가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노란봉투법·방송법·양곡관리법 등 쟁점 법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손해배상액 47억 원 배상 판결을 받은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시민들의 '노란봉투 캠페인'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의 '7대 중점추진 과제'이기도 하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달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야당 단독 표결로 상정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노동계의 불법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 쟁점 법안 중 하나가 노란봉투법이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제정을 위한 정의당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 /뉴시스
여야 쟁점 법안 중 하나가 '노란봉투법'이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제정을 위한 정의당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 /뉴시스

방송법 개정안(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9명 또는 11명인 공영방송 이사 수를 21명으로 대폭 늘리고,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와 직능단체, 시청자위원회가 이사를 추천하도록 하는 한편 이사회가 사장을 추천할 때도 특별다수제(3분의 2 찬성)와 결선투표 방식을 거치도록 했다. 민주당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 영향력을 줄이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취지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방송 영구 장악법"이라고 반발하며 최장 90일 숙의 기간을 갖도록 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신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자당 출신' 박완주 무소속 의원을 활용해 이를 무력화하고 지난 2일 상임위에서 개정안을 통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긴 상태다.

민주당이 당론 채택해 지난 10월 19일 상임위에서 단독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 중 하나다. 해당 개정안은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은 "쌀 농가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입법 정국에 돌입하면 '최후의 보루'인 법사위에선 쟁점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다수당인 민주당은 법사위에서도 총 18명 가운데 10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회권을 쥐고 있는 법사위원장을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맡고 있어 안건 상정 보류로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국회법 개정안을 활용해 강행 처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법 86조 3항에 따르면 법사위가 상임위 통과 법안을 60일 이상 심사하지 않으면 상임위로 돌려보내 상임위 의결로 본회의에 바로 부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양곡관리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물리적으로 각각 이달, 내년 2월 상임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부의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은 국회에서 재의결을 할 수 있다. 이때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해 국민의힘 자력으로 막을 수 있다.

여야는 상임위에서 합의했던 한전법 개정안을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다.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의 한전법 개정안 부결관련 긴급 점검회의 모습. /뉴시스
여야는 상임위에서 합의했던 '한전법 개정안'을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다.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의 '한전법 개정안 부결관련 긴급 점검회의' 모습. /뉴시스

여야가 쟁점 법안으로 대치하는 가운데, 정작 민생 입법 추진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전력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대폭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예상과 달리 부결된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개정안은 한전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최대 6배까지 늘리는 내용이다. 전력업계는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한전채 발행 없이 전력 대금을 결제하고 한도가 초과한 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내년에 전기료를 약 3배 올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민생경제와 직결된 법안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갖고 "한전법은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의 유동성 확보를 통해 국민의 전기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며 처리를 당부했다고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한전법은 여야가 상임위에서 합의한 비쟁점 법안이었다. 그러나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무더기로 반대·기권표를 던졌고, '윤핵관'을 포함해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도 불참하면서 국회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때문에 여야 모두 정쟁에 몰두하면서 원내 입법 전략에 당력을 집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야는 한전법 개정안을 재발의 해 최대한 연내 처리하자고 뜻을 모았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다시 여야가 협의해서 상임위에서 발의하고 가급적 올해 가기 전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그 과정에서 정책의원총회가 열리면 내부 설명, 공론 조성이 한 차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야가 경쟁적으로 발의했던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안)도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은 국가와 지자체의 피해자 지원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신당역 사건과 관련해 "법무부로 하여금 제도를 보완해서 이런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여당도 발맞춰 적극적으로 입법 검토했고, 민주당도 관련 입법에 열을 올렸지만, 정기국회 내 처리되지 못한 것이다. 사건 담당자 등 업무 관련자를 대상으로 스토킹 예방과 방지를 위해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고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간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국회가 사전에 소관 부처와 협의를 거쳤다면 정기국회 내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여야의 정쟁이 심화하면서 민생 입법과 행보는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민생 행보라면 여야가 예산안 문제부터 집중적으로 풀어냈어야 한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이 하면 다 '이재명 보호법'이라고 얘기하고, 민주당은 정부 여당에서 하고자 하는 윤석열표 예산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감액부터 들고나오고, 이 와중에 이상민 장관 해임 건의안도 냈다. 여야가 모두 겉으로는 민생을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대치 정국 속에서 기 싸움을 계속 벌여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정부의 국정계획 속에 전체적인 민생 입법 전략을 짜야 하는데 그게 별로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상임위에서 막히면 풀어나가야 하는데 좌고우면하다가 다수당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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