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탄압 대여투쟁' 앞세운 '원팀 전략' 한계
'구주류' 친문 움직임 관건
더불어민주당이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지자들 사이에선 균열이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 10월 국회 앞 본청 계단에서 열린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맨 앞)/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우리 안의 차이가 아무리 커도 상대와의 차이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다른 점을 찾아 갈등 분열할 것이 아니라, 같은 점을 찾으며 힘을 모아야 합니다. (11월 25일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서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당이 표면적으로 '단일대오'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지자들 사이에선 내부 균열의 틈이 갈수록 벌어지는 모양새다. 사법 리스크 우려가 당 전반으로 퍼진 상황에서 '정치탄압 대여투쟁'만 앞세우는 '이재명표 원팀'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선 균열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사법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이 대표의 당내 입지가 좁아질수록 '이 대표 엄호' 기조에 반하는 목소리나 인물에 대해선 '공격' 수위가 거칠어진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반응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이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비난한 트위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사실이 알려지자 친명 강성 지지자들은 "그동안 문(전 대통령)에게 참았던 것들을 이참에 터뜨리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냉철하게 해야 한다" "풍산개나 서해 공무원은 칼같이 방어하더니 같이 방어해준 이재명 관련 실언은 한마디도 없다" 등 강하게 불만을 쏟아냈다. 일부는 '친문' 인사인 윤건영 의원과 고민정 의원의 사무실에 항의 전화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윤 의원이 '실수'였다며 문 전 대통령 측 입장을 전달했지만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논란을 지켜본 지지자 중에선 "이재명은 지지자들로 인해 외톨이가 될 수 있겠다"며 이 대표 팬클럽 '재명이네 마을'을 떠난 이도 있었다.
친야(親野) 성향 유튜브 시사타파TV를 운영하는 이종원 씨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친야 유튜버 간 다툼이 불거진 데다, '이 대표가 기소될 수 있으니 정청래 의원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취지의 이 씨 발언이 알려지면서 공세 수위가 높아졌다. 정 의원을 향해서도 "수석 최고위원을 왜 달라고 했나. 제대로 하는 게 안 보인다" "최고위에서 가장 말이 가볍다" 등 원색적인 인신공격성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 전당대회 당시 지지를 보냈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친명 강성 지지자들은 최근 남욱 변호사의 진술 이후 이낙연계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영찬 의원은 '법적 조치'까지 언급하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지난해 8월 23일 이병훈 의원, 윤영찬 의원과 회견장을 나서는 이낙연 전 대표(가운데). /남윤호 기자 |
강성 지지자들과의 대립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낙연 전 대표 측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퍼트린 장본인이라는 취지의 카드뉴스가 공유되자 윤 의원이 카드뉴스 제작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하면서다. 해당 카드뉴스는 대장동 사업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가 지난 5일 재판에서 "A변호사(정영학 변호인)가 윤영찬 민주당 의원에게 (대장동 관련) 자료를 넘겼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제작됐다. '이재명을 친 건 이낙연 남욱의 법적 증언, 수박(이낙연계 인사를 뜻하는 은어)들 초토화' 등의 문구에 이낙연 전 대표와 윤영찬 의원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담겼다.
이에 윤 의원은 지난 7일 "남욱 변호사의 법정 진술을 기점으로 다시 거짓된 내용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며 "'수박'과 같은 표현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이전 지도부의 경고가 거듭 있었지만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을 갈라치기 하고 의견이 다른 이들을 악마화하는 행동은 민주당답지 않다"고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낙연계와 친명계와 대립했던 이른바 '명낙대전'이 지난해 대선 경선에 이어 재점화한 모습이다. 당시 양 후보 지지자들은 감정의 골이 깊어질 정도로 다투다가 경선에서 패배한 이 전 대표가 이재명 대선 캠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합류하면서 임시봉합됐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가 커지고 남 변호사 진술을 계기로 다시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명낙대전'을 치렀던 양 진영의 골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10월 24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이낙연 전대표 회동장소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찻집에서 양측지지자들이 모인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최근 지지자 균열 양상의 배경에는 이 대표 '원팀 전략'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포용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과 6·1 지방선거, 8월 전당대회 당시 '원팀 민주당'을 거듭 외쳤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가 취임 후 친명 인사로 지도부를 구성하고 비명계와의 소통이 활발하지 않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일례로 이 전 대표는 이 대표에게 캠프 복지국가비전위원장을 맡았던 이상이 제주대 교수의 당원 자격정지 8개월 징계처분을 선처해달라고 직접 호소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이 교수는 지난 1월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선처 요구 후에 이 대표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고 조치도 없었다. 조치가 있었으면 제가 왜 탈당했겠나. (탈당하기 전) 두 달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낙연 지지자들은) 민주당 후보가 최종적으로 뽑혔으니 대선을 위해 뭉쳐야 한다고 해서 이 대표를 후보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인천 계양에 출마하면서 많은 당원들이 심리적으로 탈당 상태에 있다. 그러니 한쪽 목소리만 더 크게 들리면서 여론이 왜곡돼 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개딸(친명 지지자)들 목소리는 작아지고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법 리스크 위기감 해소 노력 없이 '야당탄압 대여투쟁'을 앞세우면서 성급하게 형성한 단일대오 전선이 애초에 탄탄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에 의하면 지난 10월 26일 소속 의원은 물론 원외지역위원장, 당직자, 보좌진이 총결집해 당 추산 1200여명이 모였던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당이 의원실별 참여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인사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그동안 친문계가 비판 목소리를 자제해 원팀으로 뭉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가시화하면 친문 진영에선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수사는 정책 결정 과정과 연관돼 있지만 이 대표 수사는 비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섞이면 방어막을 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친문이 '문 전 대통령은 건드리지 않으면 이 대표 (보호에) 손 떼겠다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라며 "(검찰 수사가) 오래 끌면 끌수록 분열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unon89@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