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집단지성 형성 도움될 것" vs "큰 의미 없어"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 조만간 복당할 예정이다. 10월 27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는 이재명 대표(맨 왼쪽)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더불어민주당 복당이 임박했다. 검찰 수사 강도가 날로 세지면서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박 전 원장은 바깥에서 연일 '단일대오'를 주문하고 있다. 정치권은 박 전 원장 '역할론'에 주목하고 있다. 당내에선 대여 공세 화력에 불이 붙을 것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2선으로 물러나 있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 6월 6일. 박 전 원장이 국정원장에서 물러난 후 처음으로 민주당 전통 텃밭 '광주'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만들어 온 민주당에서, 어떻게 됐든 안철수신당에 참여했고 비록 국정원장 때문에 당적을 가질 수 없었지만 6년간 민주당을 떠나 있었다. 이것이 제 인생 제 정치에 가장 큰 오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고해성사했다. 그는 2016년 1월 당내 주류였던 친문(친문재인)계와 갈등을 빚다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을 탈당하고 안 의원이 대표로 있던 국민의당에 합류바 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낙선했으나 문재인 정부 국정원장에 전격 등용됐다.
10월 6일. 박 전 원장은 이재명 대표에게 복당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민주당에 복당하겠다고 얼마 전에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했다. (이 대표가) 지난주에 복당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곧 될 것 같다"고 했다. 정동영 전 의원 등 분당사태 당시 민주당을 탈당했던 인사들은 지난 대선 기간 이 대표의 '대통합' 기조 아래 대부분 복당했지만 국정원장 신분이던 박 전 원장은 합류하지 못했다. 이후 지방선거와 전당대회가 연달아 실시되면서 복당 시기가 미뤄졌다.
민주당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의 복당은 최종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최근 민주당 전남도당과 목포지역위원회가 중앙당 당원 자격심사위원회에 이른바 박 전 원장의 '평판'에 대해 긍정 의견을 보냈고, 중앙당이 심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와 당 최고위 절차가 남았지만 이 대표와 지역위원회가 긍정적인 입장이기에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25일 라디오 방송에서 "(중앙당에서) 아직 연락은 없다"며 "당에서 요구했던 것이고 저도 복당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밝혔다. 전남도당, 목포시당도 환영한다고 했기 때문에 (복당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어려우니까 또 늦어지는지 모르겠다"며 현재 상황을 밝혔다.
박 전 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가 탈당해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에 합류했었다. 당내에선 그의 복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난 6월 7일 경남 양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난 박 전 원장. 그는 페이스북에 "이번 일정은 제게 있어 지난 6년을 되돌아보고 민주주의의 뿌리, 민주당의 적통을 확인한 시간이었다"라고 밝혔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 페이스북 갈무리 |
박 전 의원의 복당이 이달 중 확정된다면 6년 10개월 만의 귀환이다. 그는 '1선에서 물러나 있겠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선 박 전 원장이 민주당에 복당할 경우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를 잡고, 정부·여당과의 여론전에서 활약하는 등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호남 지역 의원은 "박 전 원장이 지금 민주당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당이 어려울 때 그런 원로들이 당에 조언도 하고 분위기도 이끌어주면 굉장히 큰 힘이 될 것이다. 현상을 정확히 보는 분이기 때문에 하는 말에 무게감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집단 지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복귀 몸풀기라도 하듯 최근 박 전 원장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라디오나 방송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민주당과 윤석열 정부를 향해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당내 균열 조짐이 보이자 지난 23일 그는 "이러다가는 민주당 없어진다. 같이 싸워야 한다"고 단결을 주문했다. 앞서 19일에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초청해 서울 강북구 주민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스스로 자기 성과를 까먹고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등의 속 좁은 행태를 계속하면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며 윤 대통령을 저격했다. 박 전 원장이 정계 은퇴를 공식 선언하지 않은 만큼 22대 총선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박 전 원장의 복귀를 달가워하지 않는 시선도 있다. 2015년 그는 문 대통령과 대표직을 놓고 막말과 네거티브 공방을 오가며 격하게 충돌한 바 있다. 당시 박 전 원장이 불 지폈던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과 '친문 패권주의' 등 거친 공세의 여파는 오래 지속됐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은 호남 의석 28석 중 25석을 박 전 원장이 합류한 국민의당에 내줘야 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박 전 원장이 단결을 촉구한 데 대해 "아직 입당 안 하신 분이 나가실 때는 언제인데 또 지금 갑자기 그렇게 진한 동지애를 보내시는지 모르겠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원장 복당 후 당내 변화 전망을 묻자 "탈당한 분이 한두 분이 아니니 그런가 보다 한다"면서도 "박 전 원장 복당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경험 있는 분이 온다고 하지만 그 정도지, 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또 당이 가진 결함이 그분이 온다고 쇄신의 물꼬가 될 리도 없다"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