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이재명 사법리스크 위기감 속 '민생' 행보 주력
정의당 "민주당, 노란봉투법 추진 소극적"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민주노총 총파업과 관련해 발언을 아끼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을 방문, 양경수 위원장(왼쪽)과 기념촬영하는 이재명 대표(오른쪽).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3일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았다. 당내 사법리스크가 고조되면서 불만이 응축되는 가운데, '경제 살리기'를 부각하려는 행보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민생과 직결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총파업 사태에 대해선 침묵했다. 민주노총이 정기국회 내 처리를 요구한 이른바 '노란봉투법' 제정에도 다수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향후 정치권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이하 경제대책위)는 이날 오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산업계 대응 전략과 경쟁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김태년 대책위 위원장은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을 만나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반도체가 살얼음판인 것 같다"며 "반도체 없는 4차 혁명은 없으니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기술을 잘 지켜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초 민주당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이재명 대표도 참여하는 현장 최고위원회를 주재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측근의 연이은 구속과 야당 의원 압수수색 등 검찰의 전방위 압박에 '유능한 경제 정당, 민생을 챙기는 야당'을 부각하려는 의지로 해석됐다. 다만, 이 대표를 포함해 지도부 현장 방문 안은 추진되지 않았다. 경제대책위 관계자는 "검토 정도만 했던 것"이라며 특별한 사유는 없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전통적 지지기반인 민주노총의 총파업 국면에서 기업 현장 방문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민생 현안으로 떠오른 '민주노총 총파업'에도 말을 아꼈다. 민주노총은 지난 22일 △화물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적용 업종 확대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 3조 개정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교통·의료·돌봄 민영화 중단 및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선언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고 심판하고자 총파업·총력투쟁에 돌입하고,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라고 농성에 돌입한다"고 했다. 특히 오는 24일에는 화력 부대인 화물연대가 파업을 예고해 정치권이 조속히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면 산업 현장과 국민 일상생활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관련 발언은 없었다.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이수진 원내대변인이 "민주당은 안전운임제를 올해 정기국회 핵심 민생 입법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논평을 내는 데 그쳤다.
노동계가 정기국회 내 처리를 요구한 일명 '노란봉투법'은 소관 상임위 소위에 상정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17일 국회 환노위 회의장에서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 관련 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공청회가 진행되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정치권 쟁점은 크게 화물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노란봉투법 등이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안전운임제 폐지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가 정부로부터 '지속 추진' 약속을 받아내고 철회한 바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해 안전성을 강화하는 제도로,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몰제 기한을 한 달여 앞두고도 정치권이 손 놓고 있자 다시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에 당정은 지난 22일 안전운임제를 2025년 말까지 3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으나, 민주노총 측은 제도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를 요구했다.
또,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가 하청뿐 아니라 원청을 대상으로 쟁의할 수 있도록 파업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등을 금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다. 정의당은 노란봉투법 제정을 당론 채택하고 지난 16일부터 정기국회 내 제정을 위한 릴레이 1인 시위 중이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 15일 민주노총과 만나 "상대 프레임 공격에 당하면서 불법 폭력 파업 보호법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게 된 것 같다. '합법파업보장법'이나 '손해배상소송·가압류 불법남용방지법'으로 바꾸자"면서 노란봉투법 제정에 힘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대표 약속과 달리 지난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선 노란봉투법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우선 국민의힘이 재산권 침해, 불법 파업 조장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민주당 역시 '강행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무리해서 강행 처리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노조 범위를 확대하고 손배소가 남용되는 일은 최대한 억제해야 하지만, 소관 상임위에서 더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이 원내대변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안전운임제 폐지안은) 국토위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관련해 24일 국토위 위원들이 기자회견 할 것"이라며 "(노란봉투법은) 여당에서 안건 상정을 못 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인데 30일 법안소위에 올려달라고 얘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 차원의 대응에 대해선 "상임위 위원들이 충분히 논의해서 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절차와 과정들을 생략하고 지도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노동 현안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16일 노란봉투법 제정 촉구 정의당 의원단 릴레이 1인 시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정의당 의원들. /국회사진취재단 |
정의당은 민주당이 노란봉투법 제정 등 노동 현안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안 받고 있고 민주당도 적극적이지는 않은 상황이다. 제대로 설득하고 토론하고 싸울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미리 당론으로 정해서 힘있게 밀어붙여야 하는데 민주당은 상임위에선 최선을 다한다고 해놓고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라며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지를 갖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