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왜, 환수 못해요? 내 세금인데…
입력: 2022.11.17 00:00 / 수정: 2022.11.17 00:00

선거보전비 먹튀, '혈세낭비NO' 기획을 마치고

우리나라는 선거공영제에 따라 대통령·국회의원·지방선거 등 전국단위선거 출마자가 사용한 선거비용을 일부 보전해준다. 과도한 돈 선거를 방지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출마기회를 공정하게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선거 후 보전비용 반환자들이 발생하지만, 환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이동률 기자
우리나라는 선거공영제에 따라 대통령·국회의원·지방선거 등 전국단위선거 출마자가 사용한 선거비용을 일부 보전해준다. 과도한 '돈 선거'를 방지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출마기회를 공정하게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선거 후 보전비용 반환자들이 발생하지만, 환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돈 문제는 예민하다. 요즘처럼 물가, 대출 금리 확확 오를 때는 더 그렇다. 최근 카드값이 좀 많이 나왔다 싶어 명세서를 훑어봤다. 아뿔싸. 다 내가 쓴 거 맞다.

속이 쓰렸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내가 다 쓴 거니까. 만약 당장 내가 쓴 돈이 아닌데 훅 빠져나갔다면 아깝고 억울할 것이다. 이를테면 세금 말이다. 뭐 그리 많이 떼어 가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연말정산 세제 혜택에서 비껴가는 30대 미혼의 직장인. 세금에 예민하다. 종종 세금 낭비, 고액 체납자를 다룬 보도를 보면 분통이 터진다.

이번 기획 [혈세낭비 NO]가 바로 그 세금에 관한 것이었다. 바로 선거비용 보전제도. 돈이 없지만,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 유능한 사람에게 득표율에 따라 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10%, 15%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 출마자에게 법적으로 정해진 한도 내에서 50%, 100%를 각각 보전해준다. 후보 개인의 당선 여부를 떠나 그를 지지한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기에 선거가 끝난 뒤 출마자들은 사용한 선거비용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정해진 용처에 따라 보전신청을 한다. 선관위는 이를 꼼꼼히 따져 돈을 준다. 만약 선거 과정에서 위법 사실이 발견돼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이 확정된다면 보전된 비용을 토해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가 위법행위에 비용을 지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달라는 돈은 주는데 받아야 하는 돈은 받지 못하고 있다.

입장을 밝힌 미반환자들에게는 반환하지 못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듣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사연의 기승전이 어떻게 됐든 결말은 "돈이 없어서"다. 뭐, 그렇다 하자.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항변하던 이들에게, 이들의 배우자 등 가족에게 이를 갚고도 남을 재산이 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더욱이 반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출마한 사람들은 납득의 여지도 없다. 이를 철저히 징수해야 하는 국가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도 납세자로서는 허탈한 부분이다. 내 피 같은 돈이 이런 식으로 쉽게 새 나간다.

억울함을 토로하며 제도의 문제를 짚는 이들도 있었다. 한 미반환자는 "선거 후 6개월 이내에 기소된 사건에는 당선무효가 적용되지만, 6개월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면서 '6개월'이라는 기간에 의문을 제기했다. "(벌금) 90만 원은 상관없는데 100만 원은 당선무효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돈이 생겨 반환하려고 하니 나라에서는 받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미반환금을 기탁해도 '미반환자'로 기록에 남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표용구. /이동률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표용구. /이동률 기자

각자의 억울함은 뒤로하더라도, 우리의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 사실이다. 규제 위주의 공직선거법으로 인해 출마자들은 명함을 돌리는 것 외엔 자신을 알릴 방법이 거의 없다. 정해진 공보물 외에 정책홍보를 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유권자가 자신을 대표할 정치인을 뽑는데 그에 대해 알 길이 없는 셈이다. 모금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은 또 어떠한가. 새로운, 다양한 정치인이 등장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다. '유죄 확정'이란 기록과 반환해야 하는 금액의 숫자 이면에, 이런 구조적 문제 또한 생각해 볼 문제다.

하나하나 따져 올라가면 결국 정치의 문제다.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권력자들도 이 문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일 테다. 쉬쉬하고 모른척하는 사이 국가를 믿고 묵묵히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의 허탈감은 커진다. 세금에 대한 회의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금으로 하는 사업은 물론, 이를 관리·감독하는 법과 제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매번 "뭐 이렇게 많이 떼가"라며 툴툴대면서도 우리는 세금을 낸다. 세금이 있어야 국방, 치안, 각종 공공시설과 사회복지 등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국가가 세금으로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의 참정권을 보장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믿는다.

돈 문제는 철저해야 한다. 돈 문제 깔끔하지 못 한 사람과 엮이지도 말아야 하는 법이다. 골치 아픈 일만 생긴다. 사람은 멀리하면 되는데 그게 국가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과 제도는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조차 믿을 수 없는 사회에는 불신과 갈등만이 남을 게 뻔하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환수해야 하는 돈을 왜 환수하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에 "제도가 미비해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수년째 돌아온다. 전혀 깔끔하지 않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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