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이태원 참사 책임 공방 '민낯'…말로만 '무한 책임'
입력: 2022.11.09 00:00 / 수정: 2022.11.09 00:00

여야, 정쟁 매몰…정부 책임 회피 모양새 '우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 비서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며 경질론에 선을 그었다. 그는 사의를 표명한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참모들은 없었다고 밝혔다. /남윤호 기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 비서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며 경질론에 선을 그었다. 그는 사의를 표명한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참모들은 없었다고 밝혔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가을야구가 한창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두고 SSG 랜더스와 키움 히어로즈가 격돌하고 있다. 다른 구단들은 벌써 팀 조직을 재정비하며 내년 시즌을 정조준하고 있다. LG 트윈스는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2위에 올랐던 류지현 전 감독과 결별했다. 우승 갈증을 못 푼 탓일까. 팀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 전 감독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재계약은 불발됐다.

8년 동안 팀을 이끌며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을 일궈냈던 김태형 전 감독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벗었다. 핵심 전력 이탈로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두산은 올해 10개 구단 중 9위에 그쳤다. '명장'도 퇴진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구단의 속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도력이 검증된 '수장'들을 교체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팬들의 여론 등을 고려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처럼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데, 정치권은 아마추어적인 모습이다. 공식 애도 기간이 끝난 지 벌써 나흘째로 접어들었으나, 국회에선 다툼 소리만 들린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대형 참사를 정략적으로 도구화해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과 사진을 확보해 공개한 뒤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민주당 당직자의 문자 메시지를 문제 삼고 있다. 야당은 여당에 국정조사를 수용할 것과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두 정당의 주장은 이해된다. 참사를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는 모습이 보인다는 여당의 주장도, 경찰의 부실 대응을 경찰이 수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야당의 말도 일리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론에 대해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정작 여야가 서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공방에만 급급한 태도는 실망스럽다. 이것이 정치권의 현재 민낯이다.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참사 당일 총체적인 부실과 안이한 조처가 속속 드러나는 것처럼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고위직 문책성 윤희근(왼쪽)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태원 참사 현안보고를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남윤호 기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고위직 문책성 윤희근(왼쪽)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태원 참사' 현안보고를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남윤호 기자

여야와 관련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8일 대통령실 등에 대한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1980년 신군부의 광주시민 학살과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건을 거론한 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을 사지의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고 떼죽음을 당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정부가 청년을 죽음의 골목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국민의힘 소속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7일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마음의 책임을 지겠다'고 한 발언은 책임 회피의 말장난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오죽하면 여당에서조차 쓴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이태원 사고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만희 의원은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와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구청장은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에 대해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고 발언해 빈축을 샀던 장본인이다.

이태원 참사 전 다수의 112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경찰의 늑장 대응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분명히 국가는 없었던 것"이라며 사실상 정부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같은 날 국감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내각과 대통령실 참모는 없다고 밝혔다. 문책 인사를 건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주무부처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유임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 장관은 참사 당일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키웠다. 안일했던 인식을 가진 장관에게 사태 수습과 사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맡기는 것에 국민은 동의할지 의문이다. 4일 발표된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 결과(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를 보면, '정부와 지자체 책임이 있다'는 응답이 73.1%로 나타났다. '이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답변은 56.8%였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당은 '무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무한 책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막연하다는 느낌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것도 책임지만, 실패했을 때 감내해야 하는 것도 책임일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 '경찰 문책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지도부는 정부 책임론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와 관할 지자체의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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