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일각 '명단 공개' 주장…당내에서도 "폭력적 행태" 비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 방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8일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와 관련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전날(7일) 문진석 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받은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참사 정쟁화' 논란에 불을 지핀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당내에서는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는 의견 자체가 '진상 규명'을 외쳤던 당의 목소리를 희석시키는 것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이연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문 의원에게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이 끝났음에도 희생자 전체 명단과 사진, 프로필, 애틋한 사연들이 공개되고 있지 않다'며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이 됐다. 내용 중에는 '수사중인 이유로 정부와 서울시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의도적인 은폐'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후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최민희 국민소통위원장은 8일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156명 희생자, 유족 동의 받아 공개해야 한다. 찝찝하다. 애도하라는데 이태원 10·29 참사에서 156명이 희생됐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이어 "유가족 인터뷰도 거의 없다. 슬픔에 장막을 쳐놓고 애도하라고 한다"며 "희생자 이름과 나이를 알고 영정 앞에서 진짜 조문, 애도하고 싶다. 유가족께 기성세대 한 명으로 사과하고 위로드리고 싶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의 희생자 인적 정보 수집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사진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던 당시. /이새롬 기자 |
민주당은 당 차원의 희생자 인적 정보 수집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날 오전 오영환 원내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그런 논의는 전혀 이뤄진 바 없고 만에 하나 그런 제안을 누군가 했다면 부적절한 의견"이라며 "당내 논의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도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난 7일 최고위 비공개 회의에서도 그런 논의는 전혀 없었다. (희생자 명단 공개 관련 당내 논의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다만 오후에는 '유족이 원하는 범위 안에서' 희생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위한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최고위원도 있었다. '용산이태원참사 대책본부' 본부장인 박찬대 의원은 이태원 파출소에 이어 서울 원효로에 마련된 유실물 센터를 방문해 "유족이 원하는 범위 안에서 영정사진, 위패, 이름 등을 모시고 국민들이 진짜 추모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에 여당의 비판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우려의 시각이 나왔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에 힘써야 할 시기에 야당이 먼저 사건 정쟁화의 빌미를 마련해줬다는 이유에서다.
한 중진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문 의원이 받았던 문자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도 보냈더라. 희생자 명단 공개는 개인 정보와도 연관이 있기에 일방적으로 정당이 입수해 공개한다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고 오히려 위법의 소지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들의 감정을 먼저 고려해야 할 텐데, (민주당에서 먼저 추진했다가는) 정파적 이득을 얻기 위해 문제를 정쟁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일각에서 '희생자 명단 공개' 의견이 나오는 것을 두고 한 관계자는 "지지자들의 말만 듣고 과한 의견을 당에 제시하는 게 국민들에게는 당을 진정성 없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선화 기자 |
민주당 관계자도 "(희생자 명단 공개는)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나온 의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에서 지지자들의 말만 듣고 과한 의견을 당에 제시하는 게 국민들에게는 당을 진정성 없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라며 "(중도층을 고려했을 때) 참사와 관련한 발언들은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당 차원에서의 제재나 징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해 참사를 이용하고 있다며 맹비판을 이어갔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게 말끝마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할 짓인가"라며 "사람은 못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썼다. 장 의원은 이 대표를 겨냥해서는 "결국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마저도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기회로 삼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추모 공간이 아니라 '이재명 방탄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국민 죽음을 정쟁 재료로 소비하려는 민주당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