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등장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 의혹 전면 부인
김의겸 의원-더탐사, 술자리 장소 특정 못해
이른바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이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제보의 진위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지며 특검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 /이새롬 기자, 뉴시스 |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이른바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이 여야 정치권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제보의 진위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논란은 특검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 그리고 대형 로펌 변호사들의 새벽 술자리 의혹의 시발점(始發點)은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7월 19일 밤 술자리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술자리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고급스러운 바에서 이뤄졌고, 당시 한 장관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과 김앤장 변호사 30명가량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의 주장은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과 유튜브 채널 '더탐사' 기자 간 녹취록에 근거했다. 당시 김 의원이 제시한 녹취록에서 이 전 권한대행은 '7월 20일 청담동 갤러리아 인근 카페에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김앤장 변호사들의 모임은 어떤 취지였나'라는 질의에 "제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말할 순 없죠"라고 답했다. 이어 '그때가 밤 굉장히 늦은 시간이었는데'라는 물음에는 "뭐 늦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녹취 내용만 살펴보면 이 전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 그리고 김앤장 변호사들이 만났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늦은 시간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늦지도 않았다'고 답한 만큼 어떤 모임이 있었다는 의혹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파문이 확산하자 이 전 권한대행이 직접 입을 열었다. 이 전 권한대행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위사실 유포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악의적 편집에 의한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이후 이 전 권한대행은 27일 서울지방검찰청에 김 의원과 더탐사 기자를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전 권한대행의 녹취와 기자회견 내용은 180도 달랐다. 그렇다면 이 전 권한대행은 왜 '더탐사'와 통화에서는 술자리가 있었다고 생각할 여지의 대답을 했을까. 녹취를 들은 정치권과 많은 사람은 이 전 권한대행이 말을 뒤집었다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에게 확인이 필요했다.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은 지난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의혹과 관련해 반박했다. /이새롬 기자 |
이 전 권한대행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청담동 술자리 모임을 시인하는 듯한 대답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무슨 청담동 카페에서 술을 먹었겠느냐는 말"이라며 "보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제 스타일이 상대방이 민망하지 않게 '예, 예' 하는 등 넋두리 비슷하게 말한다. 그걸 교묘하게 짜깁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선 "선거 과정에서는 몇 번 봤지만 당선인 신분 이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강조했다. 한 장관과 김앤장 등과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술자리 의혹과 관련한 또 다른 의문은 이 전 권한대행과 해당 녹취에 등장하는 첼리스트와의 관계다. 두 사람은 지인일까, 아니면 일면식도 없는 관계일까.
'더탐사'가 보도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권한대행은 '첼리스트가 대중가요나 반주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다 못하는 게 없죠. 못 하는 것이 없지"라고 답했다. 또 '대통령이 연주를 듣고 굉장히 칭찬했다면서요'라는 물음에는 "그러니까"라고 했다.
첼리스트 역시 또 다른 녹취록에서 이 전 권한대행을 언급했다. 그는 이 전 권한대행의 보좌관을 통해 첼로 연주비 명목으로 2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이 전 권한대행이 (술자리에서) 수고했다고 칭찬을 했고 대통령께서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권한대행과 첼리스트가 서로 안면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 전 권한대행은 문제의 술자리에 동석했다고 알려진 첼리스트에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더팩트>에 "난 첼리스트를 모르고 본 적도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 전 권한대행은 "어디 술집 같은 데를 보면 첼로나 뭐 밴드 같은 것이 있지 않느냐"며 "자기가 가던 집에서 내 이름을 주워들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연주비 200만 원에 대해선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거듭 반박했다.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뒤로는 주차장과 함께 곧바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아파트 단지 뒤로는 산책로와 올림픽대로가 자리를 잡고 있어 상가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으로 보인다. /김정수 기자 |
윤 대통령과 한 장관 술자리 의혹의 가장 핵심 중 하나는 '장소'다. 김 의원과 더탐사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문제의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의혹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공개된 녹취록 등에 따르면 술자리는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뒤쪽 골목으로 차량이 들어오기 쉽지 않은 곳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더팩트>는 녹취록을 근거로 갤러리아 백화점 뒤쪽에 그런 장소가 있는지 확인해봤다. 직접 찾은 갤러리아 백화점 뒤쪽으로는 술자리가 벌어질 만한 장소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백화점 뒤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고 바로 옆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위치해있다. 아파트 단지를 넘어 더 뒤쪽으로 가더라도 산책길과 올림픽대로뿐이다. 아파트 주민 등 관계자들은 "단지 안에 카페도 없고 술집도, 상가도 없다"며 "단지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선 녹취 내용대로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인근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다면 청담동 방면에 있는 술집일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실제로 백화점 오른쪽에 위치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면 복잡한 골목길에 몇몇 술집과 바가 운영 중이다. 다만 의혹이 제기된 장소가 특정되지 않은 만큼 '단순한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탐사는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 청담동 모처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탐사 유튜브 방송 내용 갈무리. |
심야 술자리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은 지난 24일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동선과 관련해 완전히 꾸며낸 소설을 발표했다"며 "아무런 근거 없이 면책특권에 기대 허위 사실을 퍼뜨리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김 의원의 분명한 입장 표명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27일 입장문을 통해 "이름도 모르고 위치도 모르는 청담동 술집에서 현직 대통령, 법무장관,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새벽 3시에 첼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황당한 가짜뉴스를 보란 듯 공개 재생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같은 날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의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 의원이 국회법 제25조(품위유지의 의무)와 146조(모욕 등 발언금지),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제2조(품위유지 의무) 등을 위반했다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징계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은 서로 주장만 있고 입장 차이가 있지 않나. 김 의원 본인이 좀 더 진실을 규명해 보겠다고 하니 지켜볼 것"이라며 "정 그러면 진짜 특별검사를 임용해서 한번 진실을 밝히던지"라고 반박했다.
국정감사장에서 제기된 윤 대통령과 한 장관 그리고 김앤장 변호사 30명의 심야 술자리 의혹은 현재까지 녹취록 외에 새로운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해당 장소에 있었고 녹취의 당사자인 첼리스트가 장소를 특정하고,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한 이번 논란의 진실은 확인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