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 압수수색에 초강수…"협치는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중앙당사 압수수색에 '시정연설 보이콧'을 결정했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국방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가 더불어민주당의 불참으로 중지된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3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그러나 마지막 날까지 국감이 파행을 거듭하면서 '정쟁만 남았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은 검찰이 당사 압수수색 등 이재명 대표를 향한 수사망을 좁혀오자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야당 원내대표가 "협치는 끝났다"고 할 정도로 여야 대치가 극에 달하면서 이달 말부터 본격화할 예산정국도 험로가 예상된다.
24일 국회는 겸임 상임위(운영위·정보위·여성가족위)를 제외하고 10개 상임위 종합감사 마무리를 앞뒀지만, 시작부터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했다. 검찰이 이날 오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겨냥해 민주당 중앙당사를 닷새 만에 다시 압수수색하려 하자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국감 일시 연기' 카드를 꺼낸 것이다.
상임위 감사가 예정된 오전 10시, 긴급 의원총회가 열리면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 대부분은 국감에 불참했다. 이에 따라 10개 상임위 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방위, 행정안전위, 외교통일위는 이날 오전 국정감사를 개회했다가 중지했고, 나머지 위원회는 개회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며 국감을 일시 중단했다. 지난 19일에 이어 두 번째다.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검찰독재 신공안통치 민주당사 침탈 규탄 기자회견' 모습. /남윤호 기자 |
의총 후 지도부를 포함해 5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용산으로 향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란 듯이 바로 국감 마지막 날 군사작전 방불하듯이 중앙당사를 기습적으로 침탈했다"며 "이제 협치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여당은 국감 파행에 곧바로 '이재명 살리기 국감쇼'라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민생은 두 발로 걷어차고 모든 의원들이 나서 대통령실과 검찰로 달려가겠다고 겁박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침탈당한 게 아니라 민생과 법치가 침탈당하고 있다"고 저격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인 류호정 의원은 여야 모두를 질타했다. 류 의원은 "오늘 국정감사에 참석하는 수많은 증인, 참고인이 있다. 바쁜 일상을 포기하고, 일정에 맞춰 시간을 낸 보통의 시민이 있다"며 "저 둘(여야)의 박진감 넘치는 다툼이 이런 '일하는 시민', '평범한 우리 이웃'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쓴소리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민주당은 오후 의총에서 국감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국감장에선 어김없이 여야 간 고성이 오갔다.
이 대표를 둘러싼 '대장동 수사'가 진전되면서 급격하게 얼어붙은 정국은 예산국회에서도 대치 분위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여야 협치가 실종되면서 내년도 예산안을 다루는 예산정국도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5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마친 후 본회의장을 돌며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남윤호 기자 |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25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오후 의총 후 "이렇게 국회의 협치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권의 태도에 대해, 야당을 압살하려는 이런 의지를 보이는 상황 속에서 결코 정상적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용인할 수 없음을 민주당 의원들은 결의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지난 해외순방 당시 비속어 발언과 당사 압수수색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본회의장 불참 등 보이콧 방식은 당일 오전 9시 의총을 열고 확정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입장할 때 민주당 의원 전원이 그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시정연설 사전환담에도 민주당 측은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 예산안 시정연설은 내년도 예산안에 담긴 국정운영 기조를 설명하며 국회 협력을 당부하는 의미가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심사를 다음 달 30일까지 마치려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국회법에는 예산안이 심사되지 않으면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부의하고 다음 날 통과시키도록 명시하고 있어 여당에 다소 유리하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은 각종 법안 처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은 예산부수법안과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으로 한 윤석열 정부 정부조직개편안 등을 협상 지렛대로 삼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가 제안한 '대장동 특검'과 민주당발 민생입법 처리를 묶어 패키지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다만 민주당도 예산안에 끝까지 반대하기엔 부담이 있는 만큼 이 대표 수사 관련 국민 여론의 향배에 따라 예산 정국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 측근이 구속되고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이 진행되면서 민주당 입장에선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뭔가 더 나와서 민주당에서도 '안 되겠다'라는 분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벼랑 끝 전술을 벌일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 집권여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향후 정국은) 꽁꽁 얼어붙을 게 뻔하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