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기획-백투더퓨처①] '노사모'부터 '재명이네'까지…팬덤 정치 20년
입력: 2022.10.11 00:00 / 수정: 2022.10.11 16:33

'행동하는 정치' 패러다임 변화…정치 참여에서 혐오 조장 변질 시각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은 정치인 최초의 공식 팬클럽이다. 2002년 16대 대선을 승리로 이끈 일등 공신으로 꼽혔던 노사모는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노사모 창립총회 당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은 정치인 최초의 공식 팬클럽이다. 2002년 16대 대선을 승리로 이끈 일등 공신으로 꼽혔던 노사모는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노사모 창립총회 당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2002년은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세계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주목했다. 20년이 지난 2022년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K컬처'는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정치 역시 지난 20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으로 대변되던 '3김 시대' 한국 정치가 막을 내렸고, '노무현부터 윤석열'까지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며 정치팬덤, 촛불정치, 검찰개혁, 다당제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더팩트> 정치부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국내 정치사에 기억될 만한 변곡점을 조명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국내 정치의 방향성을 총 5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영남은 김영삼(YS), 호남은 김대중(DJ), 충청은 김종필(JP)'. 고인이 된 이들은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들이다. 20세기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3김(金)'은 확실한 지역 기반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 지역의 '맹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정치력은 그들만의 소프트웨어였고, 굳건한 지역 표심은 최고의 하드웨어였다.

국민적 신망을 받는 '보스'를 중심으로 한 '계파 정치'는 필연적이었다. YS의 '상도동계', DJ의 '동교동계', JP의 '청구동계'가 그것이었다. 어쨌든 이들은 정치적 뿌리가 튼튼하다 보니, 마주했던 숱한 시련과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롱런'할 수 있었다. '3김(金)'을 향한 각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는 마치 거대한 '팬덤'과 같았다.

노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노사모는 전국에 노풍을 만들었다. /노무현재단 누리집 갈무리
노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노사모는 전국에 '노풍'을 만들었다. /노무현재단 누리집 갈무리

'3김 시대'가 저물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치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단순히 표만 던지는 수동적인 지지에서 행동하는 정치인 팬클럽이 생겼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에 국한되는 줄 알았던 일이 정치로까지 번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는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정치 패러다임 바꾼 팬덤 정치

현실 정치인의 대중화와 참여형·소통형 정치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언근 전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인상 깊은 정치인 팬클럽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노사모를 언급했다. 그는 "요즘 정치인 팬덤은 옳고 그름이나 정의나 상식을 떠나 지지하는 정치인이 무조건 옳다는 식이지만, 노사모는 초창기에 순수한 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기반이 경남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은 물론 당 대선 승리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던 인물이다. 당의 기반은 호남이었고 야당의 이회창 당시 후보의 지지층도 두터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임기 말 DJ는 레임덕에 빠져 지지율이 20%대로 저조했었다. 노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단체가 노사모였다. 경선 때부터 돼지저금통 모금 운동의 자발적인 후원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지원활동을 했었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물론 구시대 정치 개혁과 지역구도 철폐를 갈망하는 시대적 흐름 등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만 크게 이견이 없는 것은 노사모의 바람이 강력한 '노풍'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국에 '노란 물결'이 일렁였다. 그 결과, 노 전 대통령은 여러 정치적 어려움 속에서도 2002년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부터 대중 정치가 본격화했으며 온라인 문화가 익숙한 20·30대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이 2016년 11월 서울역 광장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하야를 반대하는 모습. /이효균 기자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이 2016년 11월 서울역 광장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하야를 반대하는 모습. /이효균 기자

다른 정치인 팬클럽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2007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양대 대선주자였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연히(?)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 팬클럽은 대표적으로 'MB연대', '명박사랑'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 팬클럽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유명했다. 당시 5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데다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둘 만큼 각 조직 규모는 컸다.

두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단체라는 점도 같다. MB연대와 박사모는 세 확산에 힘을 쏟으며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인터넷 비방전이 과열되면서 '사조직' 논란도 일었다. 이 시기, 단순히 지지 활동에 머물렀던 것에서 상대 정당 또는 같은 당 경쟁 진영을 향한 비난 퍼포먼스가 유행처럼 번졌다. 본선보다 경선이 더 치열했던 까닭이다. 진영 간 갈등이 격화하자 MB연대와 박사모는 비방과 폭로를 멈추자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이 전 대통령(17대)과 박 전 대통령(18대) 팬클럽이 이들의 대선 승리에 미친 영향은 '노사모'보다는 비교적 약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17대 대선에선 정권 교체의 열망이 컸고, 18대 대선 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이 탄탄했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처럼 드라마틱한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MB연대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을 청와대 참모로 중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지금은 활동이 뜸해진 박사모는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맞불을 놓는 등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도 했었다. 일각에선 '광신도 친위대'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렇더라도 팬클럽의 정치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모습. 엄청난 인파가 환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더팩트 DB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모습. 엄청난 인파가 환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더팩트 DB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문팬'은 다른 정치인 팬클럽과 다소 다른 모습으로 평가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팬클럽의 규모가 줄어든 대신 여러 소규모 조직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물론 문 전 대통령의 일부 팬클럽이 통합했던 사례도 있다. 대게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메신저 단체방 등에서 활동하며 문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기반이었다. 문제는 이런 문 전 대통령의 '팬덤' 중 극성 지지자들은 지나친 '팬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건전한 비판도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인사 등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은 소위 '좌표'가 찍혔고, 무차별적인 욕설과 악플, 신상 털기 등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다.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은 속칭 '문파'라고 불렸고 심지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맹목적 지지, 문자 폭탄 등 폐해도

'정치적 동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직언하는 의원들은 수백, 수천 통의 '문자 폭탄'을 떠안아야 했다. 민주당 소장파로 분류됐던 금태섭·김해영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인 피해자(?)로 꼽힌다. 2019년 민주당 의원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언행 불일치 등을 비판했다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문자 테러'를 당했다.

금 전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당시 인간적으로 조 전 장관에 대해 안 됐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해야 할 이야기를 했었다"며 "(거센 비난에) 힘들었지만 당시도, 지금도 '공감한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금 전 의원은 팬덤 정치의 폐해는 팬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리더(정치인)가 제 역할을 못 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작정 특정 상대방을 욕하지 않도록 이끌어갈 수 있는 찬스(기회)가 있었지만, 한국 정치인들이 저버렸다"며 "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이 대표적이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문 대통령이 언급하셨으면 (팬덤 문화가)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아쉬웠던 속내를 털어놨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은 열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 준 양념"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어긋난 팬심은 다른 이들의 반감을 샀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충성은 이분법적으로 적을 생산해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문빠는 눈치를 봐야 할 권력 집단이 된 셈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른바 '친문'(친문재인) 의원에 대해선 응원과 후원이 쏟아졌다. 열성 친문 권리당원들의 결집력과 영향력이 세다 보니 당내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등 역효과가 나타났다. 정치권에서는 맹목적 팬덤 정치의 폐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열성 지지자인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김건희 특검법 추진, 검찰 기소 등 주요 현안을 두고 이 대표를 엄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여러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설된 팬카페 건사랑 회원수는 무려 8만9000여 명이다. /네이버 카페 건사랑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여러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설된 팬카페 '건사랑' 회원수는 무려 8만9000여 명이다. /네이버 카페 '건사랑' 갈무리

패권주의적 정치 팬덤 현상은 현 정부에서도 나타난다. 독특한 점은 윤석열 대통령보다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이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개설된 팬카페 '건사랑' 회원수는 무려 8만9000여 명이다. 김 여사의 페이스북 공식 팬클럽 '건희사랑' 회원 수는 2만4000여 명이다. 지금까지 역대 영부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슈를 몰고 다니는 김 여사에 대한 관심은 역대급이다.

두 팬클럽 모두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공유하거나 야당을 비난하는 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꼭 많은 팬심이 정치적 이익이 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팬 커뮤니티 '건희사랑'은 대통령실에서 제공하거나 언론에서 보도한 사진이 아닌 미공개 사진을 유출하고, 대외비인 윤 대통령의 일정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8월에는 김 여사가 수해 복구 봉사활동 때 모습이라며 사진을 올렸으나, 김 여사가 아닌 소방공무원으로 확인돼 논란이 됐다. 김 여사의 팬카페가 역설적으로 '김건희 리스크'를 키웠다.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의 팬덤은 명암이 뚜렷하다. 정치적으로 팬덤은 엄청난 자산이다.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토대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모여 응원과 지지를 보냈던 정치 팬덤은 혐오를 조장하고 공격적인 모습으로 변질된 양상이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6월 '미래생각' 기고문 '팬덤 정치, 무엇이 왜 문제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팬덤 정치는 모욕을 감수하라는 억지 정치다. 시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켜 놓고, 인간관계를 증오와 혐오로 갈라놓고 뒤에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는 정치다. 팬덤 정치는 서로가 다르게 옳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들만 옳기 위한 정치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독단이다. 독단은 정치의 적이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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