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죄 심각성 우려 커져…입법 외면하는 국회
마약류의 유통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마약 관련 법안들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편의점에서 담배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의 대중화, 보급형 뽕의 시대."
2019년 개봉해 관객 수 1600만 명을 넘었던 영화 '극한직업'에서 나온 대사다. 웃으면서 넘겼던 일이 현실이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연예계 일부와 폭력조직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인식됐던 마약 관련 범죄가 최근에는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 유통과 공급이 다양한 통로로 급속도로 퍼지면서 '마약 청정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지고 있다.
마약류(마약·향정신성의약품·대마를 포함하는 개념)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통계는 차고 넘친다. 우선 우리나라는 마약 신흥시장으로 불릴 만하다. 국외에서 국내로 마약류가 들어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관세청과 경찰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동안(2017~2021년) 마약밀수 단속량이 18.4배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관세청의 마약밀수 단속량은 2017년 69.1kg에서 지난해 1272.5kg으로 18배가량 늘어났다. 밀수 경로별로 같은 기간 수출입화물 등을 통한 마약밀수 단속량이 1285.8kg으로 가장 많았고, 국제우편(329.9kg), 특송화물(290.1kg), 항공여행자(351.8kg), 해상여행자(6.6kg) 차례로 나타났다. 단속을 교묘히 피해 국내로 유입되는 마약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전체 마약류 사범은 2010~2014년도까지 5년 연속 밑돌던 1만 명대가 2015년부터 뚫렸다. 이후 △2016년도 1만4214명 △2017년도 1만4123명 △2018년도 1만2613명 △2019년도 1만6044명 △2020년도 1만8050명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1만6153명으로 소폭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높은 수치라는 게 대검찰청의 판단이다.
지난 4월 특정 프로그램으로만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 다크웹을 통해 마약을 유통해온 판매상과 구입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검거됐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
공직사회는 물론 군까지 마약류가 확산하는 추세다. 임병헌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와 각 군으로부터 제출받은 '마약사범 적발 및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군에 걸쳐 7급 군무원 1명, 9급 군무원 1명, 군인 55명을 포함한 총 49명이 마약사범으로 적발됐다. 임 의원은 "날로 늘어가는 마약범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전쟁과 더불어, 군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와 자정 노력을 통해 마약을 반드시 일소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더 심각한 것은, 마약류에 손을 대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류사범 중 20~30대가 56.8%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9세 이하 적발된 인원은 450명으로 전년(313명) 대비 43.8% 급증했다. 젊은 층의 마약류 범죄의 심각성이 드러난 단적인 통계다. 젊은 층이 마약류 밀매 및 오남용을 유도하는 온라인상의 광고에 단순 호기심을 느끼기 쉽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급속히 확산하는 마약 사건과 관련해 심각성을 인지하는 모습이다. 마약류와 관련한 법안이 다수 쌓여 있다. 마약류 취급 등에 있어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취지의 법안들도 그중 하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향정신성의약품의 처방전에 기재항목의 기입을 위반할 경우 처벌 규정을 마련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향정신성의약품의 처방전에 대해서는 현행법에 마약과 동일하게 기재항목의 기입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 규정이 없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국가공무원법에서 임용결격사유로 마약류 중독자가 규정돼 있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마약류 중독자를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냈다. 또한 대규모 상장회사에 한해 사내이사가 마약사건으로 실형을 받거나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 이사의 직을 면직시키는 등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이 담긴 '상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처벌 강화를 위한 한 법안들도 발의된 상태다. 서영석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개정안'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대마를 수수, 제공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상향하는 것이 골자다.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상향하고, 상습적으로 죄를 범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청소년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약이 일상을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법의 허점을 메우고 제도를 보완하며,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역할론이 제기된다. /뉴시스 |
지난 4월 발의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상헌 민주당 의원)은 마약 운전을 포함한 약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현행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음주운전 단속에서는 마약류 투약을 적발할 수 없기 때문에 마약류 사범에 대해 중하지 않은 처벌을 하는 실무 예와 석방된 이후에도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 약류 사범에 대해 면허취소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김병기 민주당 의원)도 발의돼 있다.
마약류 사범은 재범 위험성이 높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 깔렸다.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2017년 36.3%, 2018년 36.6%, 2019년 35.6%를 기록했다. 마약류 자체가 강한 중독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초범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국민적 비판이 많다. 지난해 한 재벌가 마약사범이 집행유예 기간 중 또다시 마약을 투약해 실형을 선고받은 예가 있다.
다만, 대검찰청에 따르면 마약류사범 기소유예율은 △2017년 17.1% △2018년 18% △2019년 19.5% △2020년 20.1% △2021년 19.6%였다. 이는 다른 범죄 유형과 비교했을 때 기소유예율이 적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상해나 추행 등 일부 범죄의 기소유예율은 30%가 넘는 높은 수준"이라면서도 "사법부와 사정당국도 마약 관련 범죄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다만, 통계상 수치로 어떠한 범죄에 대한 처벌의 강약을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지 2년이 넘은 현재 마약 관련 법안 70여 개 중 상당수가 계류 중이다. 발의된 지 2년이 넘도록 상임위 소위에 머무는 법안들도 수두룩하다. 국회 차원에서 마약 공급 및 범죄 차단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무리지만, 입법부가 법의 허점을 메우고 제도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팀장은 통화에서 "마약사범에 대한 형량 강화는 찬반 의견이 갈릴 것"이라며 "마약류 공급망 차단에 검·경의 촘촘한 수사·단속을 위한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하며 예방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치권이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