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의사 결정 부작용 노출…개선 없으면 또 다른 논란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영빈관 신축 계획이 언론에 보도된 지 하루 만에 '전면 철회'를 지시한 가운데 미흡한 설명 탓에 추가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위해 출국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8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린 이후 대통령실의 자산이 아닌 국가의 미래 자산으로 국격에 걸맞는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같은 취지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즉시 (영빈관 신축)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께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윤석열 대통령 16일 저녁 지시)
"국익을 높이고 국격에 걸맞은 내외빈을 영접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의 필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대통령실)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 필요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감해 주리라 믿는다."(대통령실 관계자 16일 오후 발언)
878억 63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영빈관을 신축하려는 대통령실의 계획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15일) 이후 대통령실과 윤석열 대통령이 엇박자를 낸 끝에 하루 만에 해당 계획을 '전면 철회'했습니다. "새 영빈관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약 6시간 만에 나온 윤 대통령의 철회 지시로 '잘못된 판단'이 되었습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 위기로 경제와 민생이 어렵고, 정부 전체가 나서 대대적인 '재정 긴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영빈관 신축을 추진하려다가 들통난 뒤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취소한 것은 잘한 결정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사안은 결과적으로 취소됐다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윤 대통령은 "(영빈관 신축) 취지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는데, 사전 설명 자체가 없었습니다. 언론보도로 해당 사실이 드러났다가 혼선 끝에 철회한 이후에도 누가, 언제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누구와 논의해서 결정을 했는지, 계획 철회는 또 누구와 논의해서 결정했는지 등에서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재정 긴축이라는 정부 기조와 다르고, "청와대 이전비로 500억 원이면 충분하다"는 당초 설명과도 다른 민감한 사안을 '밀실'에서 결정해 아무런 설명 없이 추진하다가, 언론보도로 알려진 이후 갑자기 취소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이번 사안은 대통령실 고위 참모인 수석 일부도, 심지어 한덕수 국무총리도 몰랐다고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과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김건희 여사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 한 대화에서 언급한 "영빈관을 옮길 거야"라는 발언이 회자되고 있고, 야당은 "김 여사 지시로 영빈관 신축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청와대가 개방된 5월 10일 오후 시민들이 영빈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
둘째, 당초 설명과 다른 대통령실 이전비 증액 문제입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3월 20일 당시 청와대를 이전하면 '이전비가 1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야당의 지적에 "근거가 없다"면서 "이전에 496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청에서 약 307억 원을 추가로 전용해서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비용으로 사용한 게 드러난 가운데 또 다른 대통령실 이전비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윤 대통령 내외가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키로 한 것을 두고 "일시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관저를 새로 지으면 옮기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리모델링을 이유로 아직도 입주하지 않은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도 사실상 '임시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대통령실을 옛 국방부 청사로 옮기면서 불가피해진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전도 향후 이전비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 이 장관은 "3000억 원대면 가능하리라 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국민에게 개방한 청와대를 관광 목적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예산안에 467억 원가량을 별도로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비용은 대통령실을 옮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용입니다. 대통령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영빈관 신축·철회 문제를 덮고 넘어가면 추후 다른 이전비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국민 과반이 원하지 않았던 '청와대 이전'을 국민 여론수렴이나 합의 절차 없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머물 수 없다고 밀어붙인 것에 대한 비판도 다시 커질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과 관련해 직접 설명하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실제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이전을 발표한 이후인 3월 22~24일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청와대 집무실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53%로,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이 좋다'(36%)보다 17% 포인트 높았습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대통령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8월 말 더 심화됐습니다. 한국갤럽이 8월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것에 대해 '좋게 본다'는 시각은 31%, '좋지 않게 본다'는 56%로 집계됐습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누리집 참조).
한국갤럽 8월 조사에서 대통령실 이전을 부정 평가한 이들은 '국고·세금 낭비'(41%), '이전할 이유가 없었음'(13%), '계획 미비·졸속·성급함'(8%), '여론수렴·국민동의 없었음'(5%) 등을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야심 차게 밀어붙인 '대통령실 이전'이 치적이 아니라 국정의 발목을 잡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영빈관 신축·철회 과정의 문제를 살피고, 책임소재를 가려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또한 해당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윤 대통령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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