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법' '노란봉투법' '쌀 시장격리법' 등 두고 '전투력'만 올린 與野?
지난 1일 정기국회 개원 이후 여야가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날카로운 신경전을 지속하고 있다. 저마다 민생 우선을 외치고는 있지만 '감사원법' '노란봉투법' '쌀 시장격리법' 등 쟁점 법안들을 두고 서로 이견을 보이고만 있어 결국 민생이 '여야 정쟁' 소재로만 소비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지난 1일 정기국회 개원 이후 여야가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날카로운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저마다 민생 우선을 외치고 있지만 '감사원법' '노란봉투법' '쌀 시장격리법' 등 쟁점 법안들을 두고 서로 이견을 보이고만 있어 결국 민생이 '여야 정쟁' 소재로만 소비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먼저 쟁점이 된 법안은 신정훈 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대표발의한 '감사원 정치개입 방지법'(감사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고 현 정부에 맞춰 전 정부 보복성 표적 감사를 막겠다는 게 법안의 취지다. 박홍근 원내대표·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60명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법안은 감사원 임직원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도록 했다. 또 공무원들의 기강해이 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특별감찰'로 규정하고, 국회 소관 상임위의 승인을 거치도록 한다. 감찰 금지사항으로는 '정부의 중요 정책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옳고 그름)'가 명시됐다. 정부와 여당의 '정치보복'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앞으로 감사원법을 당론으로 채택할 가능성도 크다.
여권은 해당 법안이 '감사완박'(감사권 완전 박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15일 한목소리로 법안 발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을 무기로 감사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면, 자율성을 잃은 감사원이 오히려 정치적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여당 간사인 정점식·유상범 의원은 15일 기자회견에서 "감사원은 많은 국민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선관위의 소쿠리 투표 사건, 북한 어민 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코로나 백신 수급 지연 문제 등을 감사 중"이라며 "앞으로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할 경우 민주당이 추진 중인 개정안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될까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법안 발의자인 신정훈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감사원법이) 여야 간 쟁점이 될 수밖에 없지만, 현재 감사원이 전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을 표적 감사하고 축출하는 행위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은 사실"이라며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남윤호 기자 |
법안 발의자인 신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감사원법이) 여야 간 쟁점이 될 수밖에 없지만, 현재 감사원이 전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을 표적 감사하고 축출하는 행위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을 되살려 공직 기관의 기강과 청렴을 다시 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파업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도 여야 대립이 상당해 난항이 예상된다. 정의당은 15일 노란봉투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법안에는 정의당 의원 6명 전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 46명,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 무소속 의원 3명 등 56명이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노란봉투법을 정기국회 중점 추진 과제인 '22대 민생입법과제'에 포함한 만큼 민주당도 법안 통과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한 노조의 단체교섭·쟁의 행위에 대해 기업이 노조나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다. '노란봉투법'의 이름은 2013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노동자들이 사측에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한 시민이 4만 7000원을 봉투에 넣어 전달한 데에서 유래했다.
19대 국회에서부터 숙원과제였던 노란봉투법은 올여름 일어난 '대우조선해양하청 노조 파업사태'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51일간의 파업과 31일간 독(선박 건조 작업장) 점거농성으로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며 하청 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며 노동계를 중심으로 노란봉투법 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공명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재계의 반발을 의식해 노란봉투법을 '강성노조 불법시위 방치법'으로 규정하고 완강한 반대 입장을 유지 중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법안이 발의된 날 페이스북에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청구조차 할 수 없다면, 노조의 이기주의적·극단적 투쟁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며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 국회는 입법을 불법으로 만드는 기이한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쌀값 정책에 항의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
정부가 쌀을 매입(시장격리)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최근 쌀값 폭락으로 농민 고통과 부담이 가중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해 발의한 법안이다. 쌀 시장격리는 이재명 대표의 '농민 지키기'용 지시 사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매입 기준이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다. 또 매입도 의무 규정이 아니라 '매입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에 그친다. 이에 농민들은 최근 쌀값 폭락에 따른 양곡관리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민주당은 27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한다.
국민의힘은 개정안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충분한 검토도 거치지 않고 소위 단독 처리를 강행항 민주당에 "날치기"라며 힐난하고 있다.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이유에 이 대표의 의중이 적극 반영된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농해수위 소속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가 얘기하니 밑에 있는 의원 몇 사람이 '이재명 졸개'가 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여야가 남은 정기국회 기간에도 부동산·노동·정치 현안 등 여야 간 입장차가 상당한 과제들에 있어 서로 반대만을 고집할 경우, 민생은 또 정쟁에 휩쓸려 밀려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선화 기자 |
정기국회에 들어서며 여야 간 너나 할 것 없이 민생을 강조했지만, 법안 처리를 앞두고 서로 입장 차를 굽히지 못해 강대강 대결은 한층 심화된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주요 입법과제 키워드로 '약자·민생·미래'를, 민주당은 '민생·민주·미래'를 제시했다. 하지만 여야가 남은 정기국회 기간에도 부동산·노동·정치 현안 등 여야 간 입장차가 상당한 과제들에 있어 서로 반대만을 고집할 경우, 민생은 또 정쟁에 휩쓸려 밀려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국정을 못 하면 이른바 '가진 자'들은 괜찮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득권들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현재 환율, 금리 등 경제 위기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대처를 못 한다면 국민들만 죽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