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급할 가치 없어"…민주당 지도부 언급 자제 당부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입에 오르내렸다. 지난 5월 16일 국회 본회의장으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하는 윤 대통령.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등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 취임 4개월 만에 당 지도부 중심으로 '탄핵론'이 고개를 들자 중도층 반발, 여권 결집 등 역풍을 우려해 재빨리 내부 단속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금기어가 된 '탄핵'의 재등장은 여야 극한 대치 국면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에 따르면 당 원내지도부는 최근 자당 의원들에게 '탄핵 언급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 단체 텔레그램방에 '탄핵' 관련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대통령 탄핵이나 사퇴, 퇴진 등의 표현은 신중해달라"는 의원들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는 당 안팎의 강한 우려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조응천 의원은 지난 15일 일각의 '탄핵 암시' 발언에 대해 "불안해하니까 탄핵하자,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다. 한 중진 의원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말할 것도 아닌 그냥 그런 얘기다. 헛소리"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 역시 "대통령 탄핵이라고 하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적으로 논쟁할 때 탄핵이 쑥 나오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당내 상당수는 그런(대통령 탄핵) 생각에 대해 '글쎄 왜'라는 느낌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야권에서 '탄핵'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지난 7월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7월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의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며 "사적 채용, 측근 불공정 인사 등으로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 권력의 사유화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것이었지만 정치권 반응이 뜨거웠다. 윤석열 정부 인사 논란, 대통령실 및 김건희 여사 의혹 등으로 윤 대통령도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된 탓이다.
역대 정치권은 두 차례 대통령 탄핵소추 시도를 했다. 2016년 12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개표가 진행되는 모습. 탄핵소추안 표결에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했으며, 총 234명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기권은 2표, 무효는 7표였다. /국회사진취재단 |
이후 이달 들어 당 지도부에서 '탄핵 암시' 발언이 다시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백현동·대장동 사업 특혜 의혹 관련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날인 지난 8일 박찬대 최고위원은 당 긴급 회의에서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과거 정치적 문법과 신공안시대로 돌이키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국민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고 임기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난 13일에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석 민심을 전하며 "'대통령이 뭘 모르는 것 같아 불안하다'면서 심지어 '이러다가 (윤 대통령이) 임기는 다 채우겠느냐'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5일 간 당 지도부에서 탄핵 암시 발언이 반복 노출된 것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탄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두 번의 탄핵 시도'에 대한 교훈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 국정 파탄 등의 이유로 2004년 3월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바 있다. 역풍은 거셌다. 16대 국회에서 49석에 머물렀던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몸집을 키웠고, 탄핵에 찬성했던 새천년민주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탄핵 역풍을 타고 당선돼 현재 당내 중진이 된 이들은 누구보다 '탄핵'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을 알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탄핵 발언' 등에 대한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3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기념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재명 당시 성남 시장. /임세준 기자 |
2016년 두 번째 탄핵 시도는 정치권 바깥에서부터 바람이 밀려왔다. 국정농단 사건 보도 이후 '탄핵' 촛불시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정치권이 응하는 모양새였다. 여기에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박계 의원들의 동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명확한 법 위반과 이에 따른 여론 형성 없이 정치권이 나서 탄핵을 추진할 경우 중도층이 반발하고 상대 진영이 결집하는 역풍이 불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여권에선 바로 '이재명 대표 수사 맞불용'이라며 역공을 펼치고 있다. 당권주자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취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임기를 운운하며 서슴지 않고 탄핵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뻔뻔한 태도는 대선에 불복하는 오만불손 그 자체"라며 "이 대표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대통령 탄핵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대국민 협박이자 선동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여 투쟁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민주당 내 탄핵 암시 발언에 대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다음 총선 때 탄핵 문제를 이슈로 전면에 내걸고 200석(탄핵 가결 정족수)을 얻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어 "지금 (윤 대통령이) 법률적으로 딱히 위반한 것도 없는데 무능하다고, 지지율 낮다고 탄핵 이야기를 자꾸 하면 진짜 탄핵 카드를 뽑아 들 때 역풍 맞을 우려가 있어서 신중론이 나오는 것"이라며 '탄핵 발언' 등을 자제시키는 당내 리더십을 꾸준히 보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