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 상륙 전부터 조기 대응…대통령실 '비상대기'도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면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어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현장의 모든 인력이 현장 대처에 매진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게 되면 그만큼 대처 인력들이 보고나 의전에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대통령은 '집'에서 전화를 통해 실시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중략) 사저에는 실시간으로 대통령이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한 정보를 갖고, 보고를 받고, 그 상황 인식 속에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결국은 상황실이다. 대통령이 전화로 지시하는 것과 실제 상황실로 나가는 게 큰 차이가 없다."(8월 9일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
"대통령이 머무는 자택에 청와대 지하 벙커 수준의 통신수단들이 거의 완벽하게 다 갖춰져 있다. (재난 상황에 대한) 지휘는 (자택에서도)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다."(8월 11일 한덕수 국무총리 라디오 인터뷰 발언)
"오늘 자정을 넘어서면 (태풍 '힌남노'가) 제주를 비롯해서 남부지방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중략) 오늘은 제가 (대통령실에서) 비상 대기를 좀 할 생각입니다."(윤석열 대통령 9월 5일 도어스테핑)
지난달 8일 중부지방에 '역대급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자택 상황 지휘로 논란이 됐던 윤석열 대통령이 '역대급 태풍'에는 확연히 다른 대응을 하고 있다. 집중호우 때 자택 인근 서울 서초동 아파트들에 대한 침수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도 정상적으로 퇴근했던 윤 대통령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한반도 상륙이 임박한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은 퇴근 안 하시고 상황을 챙기시나'라는 질문에 "오늘은 제가 비상 대기를 좀 할 생각입니다"라고 답했다.
'재난 상황 대처 공간'뿐 아니라 메시지도 달라졌다. 집중호우와 관련해 출입기자들에게 공개된 윤 대통령의 첫 메시지는 호우가 한창 쏟아지던 8월 8일 오후 11시 54분에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집중호우 상황을 보고받고 "지방자치단체와 산림청, 소방청 등 관계기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를 중심으로 호우 상황을 철저히 관리하고, 급경사지 유실 등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지역에 대한 사전 주민대피 등 각별한 대책을 강구하라"며 "내일 새벽까지 호우가 지속되고, 침수피해에 따른 대중교통시설 복구 작업에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은 상황에 맞춰 출근시간 조정을 적극 시행하고, 민간기관과 단체는 출근시간 조정을 적극 독려하라"고 지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하지만 '힌남노'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메시지는 우리나라에 상륙하기 3일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일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힌남노'로 우리나라 전역에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됨에 따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중대본의 선제적 가동을 포함해 최고 단계의 태풍 대응 태세를 갖출 것을 재차 지시했다"며 "행안부는 지난 9월 1일 특별지시에 따라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전국 시·도 및 관계부처와 특별점검 회의를 실시하고 전국 전역의 태풍 취약시설에 대한 일제 점검을 실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날 오전 관계기관과 함께 예상되는 태풍 진로 및 영향 등을 분석하고 대비태세에 대한 점검을 실시했으며, 이날 오후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일요일이었던 4일에는 이례적으로 용산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로 출근해 '힌남노' 대비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태풍 진행상황과 전망, 그리고 정부의 대비상황에 대한 종합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국민들 걱정이 더 크실 것"이라며 "정부가 한발 앞서 더 강하고 완벽하게 대응해달라"고 관계 부처들의 선제적 대응을 당부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이번 태풍이 발생해 마음이 무겁다"면서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온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태풍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도 끝까지 상황을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점검회의 중간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참석 부처 장관 및 청장, 지자체장과 압박 면접과 같은 질의응답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소방청장에게 "이번 태풍 기간 긴급 구조 요청이 특정한 지역에 집중될 수 있는데, 이에 대비해서 어떤 협조 체제가 정비되고 있는가"라는 질의을 했다는 게 대통령실 측의 설명이다.
강 대변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관계부처 장관 및 지자체장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에는 "태풍과 같이 진로가 예측 가능한 기상 상황의 경우 선제적 대처가 중요하다. 공직자들은 '선조치, 후보고'를 해달라"며 "즉각적인 피해 복구책과 더불어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제11호 태풍 '힌남노' 대비상황 점검회의에서 태풍 진행상황과 전망, 대비상황에 대한 종합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대통령실 직원들이 평시랑 어떻게 근무 형태가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지난 2003년 태풍 '매미'와 다름없는 그러한 풍속과 피해가 예상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지금 저희 관계 수석실과 관계부처 장관, 그리고 청장까지 대비태세에 이어서 실시간 보고와 상황 파악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며 "굳이 업무 강도로 본다면 오늘 브리핑의 90% 이상이 태풍에 집중이 돼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힌남노'의 한반도 상륙이 임박한 5일부터는 대통령실에서 퇴근하지 않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2003년 태풍 '매미'의 위력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는 '힌남노'가 내일 새벽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윤 대통령은 오늘과 내일 용산 대통령실에 머물면서 종합상황을 보고받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대통령실 (참모들도) 역대급 자연재난 상황에 대한 선제적 대처를 위해서 오늘 24시간 비상근무를 시행 중이다. 행안부, 기상청 등 관계부처, 지자체와 상황을 공유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지난달 집중호우 대응 비판을 '반면교사' 삼아 달라진 대응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관련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폭우 상황 때 컨트롤타워 논란이 있었다. 그때는 (윤 대통령) 집에도 그런 (상황을 점검하고 지시할 시설) 상황이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는데, 이번에 대응이 달라진 것은 태풍이 좀 더 강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때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모든 상황의 답변이 똑같을 수밖에 없어서 송구하다"며 "긴급한 위험에 처했을 때 국민 곁에 서 있어야 되는 공직자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길게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없을 정도로 태풍이 근접해 있다"고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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