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명 의원 '중앙위 연기' 요청…"민주주의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
'전당원 투표 당헌 신설' 논쟁이 이재명 사당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서울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최고위원 후보들과 만세를 부르고 있는 왼쪽부터 정청래, 박찬대 최고위원 후보, 이 후보, 서영교, 장경태 최고위원 후보(왼쪽부터).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차기 지도부 선출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이 '권리당원 투표 우선' 당헌 신설로 다시 '이재명 사당화' 논란에 휩싸였다. 당 주요 현안 등에 대한 권리당원 투표 권한을 강화할 경우 일부 강성 당원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돼 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의견 쏠림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친명 지도부'와 맞물려 사당화가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박용진 의원은 23일 '586·친문·이재명의 민주당을 넘어 국민의 민주당으로'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윤영찬·김종민·정태호 의원을 비롯해 김철민, 이병훈, 김영배, 양기대, 양정숙 의원 등이 함께 했다. 이날 토론회는 당초 선거 연패 이후 빗발쳤던 당 쇄신과 '이재명 책임론'이 수그러든 상황에서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모색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됐지만, 24일 중앙위에서 의결 예정인 '권리당원 전원 투표' 조항 당헌 신설이 화두로 떠올랐다.
앞서 민주당 당무위원회는 지난 19일 '전당원투표를 당의 최고 의사결정방법으로 한다'는 조항을 당헌에 신설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민주당 최고 의결 방법은 전국대의원대회지만 당헌이 확정될 경우 권리당원 전원 투표가 이보다 우선하게 된다. 현재 전국대의원대회는 특별당헌과 특별당규를 정하거나 수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 당헌이 개정되면 권리당원이 특별당헌·특별당규를 제정하고 개정 및 폐기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의원에는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체제에서 대거 입당한 '친문' 지지자들이 많은 반면, 권리당원에는 지난 대선 이후 유입된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 의원이 당원들의 지지를 모아 막강한 '당대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비명(비이재명)' 의원들은 '권리당원 전원 투표' 조항에 반발하면서 중앙위 개최를 연기하거나, 부결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당헌 개정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가 없었고, 내용 면에서도 직접 민주주의가 당원에 책임을 전가하고, 일부 당원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영찬 의원은 "당원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말은 좋다. '당원이 당의 주인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당원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함정이 있다"며 "책임성을 물을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로 당원들이 모든 걸 결정한다면 그 의사결정이 잘못됐을 때 누구에게 물어보겠나"라며 독일노동당의 히틀러 선출을 예시로 들었다. 윤 의원은 또 "심의 토론이 없다. 당원들이 의사결정을 다한다면 토론은 언제 하나. 당원들이 당원 전체를 대표할 수 있나. 일부 소수의 조직된 당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참여민주주의는 보완성에 그쳐야 한다. 주인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 타락과 이탈로 갈지 모른다. 우리 당은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원욱 의원도 "과도한 강성팬덤이 대표되는 현상을 막아야 하는데 최소한 투표의 과반 찬성이라고 하는 오랜 원칙이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당대회 경선 룰, 당헌 개정안 등을 언급하면서 "최근 당무를 보면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게 이 의원에게 유리하게 추진되나"라며 "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응천 의원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입장문을 내고 공개 반대했다. 그는 "당의 최고의사결정방식을 대의원대회에서 전당원투표로 변경하는 중대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소속 국회의원인 저조차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을 정도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에 중앙위원회 개최 연기와 오프라인 방식 찬반투표를 요청했다. 조 의원을 포함해 26명 의원이 중앙위 소집 연기를 당 지도부에 요청했다. 박 의원은 "단순히 당원투표의 근거 조항을 마련한 수준이 아니라 당의 의결기구의 최고 단위를 새로 신설하는 중차대한 문제"라며 중앙위 안건 철회와 부결 요청 등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비명계 의원들은 '전당원 투표 당헌 신설'이 절차적, 내용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중앙위 의결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23일 '586·친문·이재명의 민주당을 넘어 국민의 민주당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김종민(앞줄 왼쪽부터) 의원, 박용진 당대표 후보, 이원욱 의원, 윤영찬 의원. /국회사진취재단 |
반면 친명계는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해 당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친명'계는 정청래 의원은 SNS를 통해 "'전당원 투표'로 사당화 논란 재점화? 이재명 지지율 80%대가 사당화가 아니라, 윤석열 지지율 20%대로 국가를 사유화하는 게 문제"라며 "전당원 투표가 문제면 국민투표도 문제인가"라고 반박했다.
당 지도부도 '당원 과대 대표성' 우려에 선을 그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원 숫자가 120만 명 되는데 (강성당원) 5만~7만 정도 숫자로 모든 걸 결정하기는 좀 어렵다. 100만 명 넘는 당원들에게 투표를 시켰는데 4~5만 명이 주도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당헌 개정안이 그대로 의결될 경우 이 의원이 표방해온 '당원 민주주의 확대'와 맞물려 일부 지지층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22일 서울 당원 및 지지자와의 만남에서 "지금 100만 명 정도인 권리당원의 규모를 200만 명까지 늘리고, 각 지역위원회에서 별도의 당원 대회도 정기적으로 열도록 지원하고 권장하려고 한다"며 당원 지위 강화를 차기 지도부 우선 과제로 밝힌 바 있다. 이는 당 쇄신 과제 중 하나로 꼽혔던 '강성 팬덤과의 결별'과는 거리가 먼 행보라는 지적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전당원 투표 당헌 개정 논란을 두고 "이 의원이 대표가 된다고 전제하고 빠른 속도로 '이재명의 민주당'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 안 그래도 민주당 당심과 민심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당심은 민심으로부터 점점 더 괴리되어 갈 것"이라며 "좋게 이야기하면 이 의원 중심으로 원팀으로 갈 텐데 국민이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문제가 있다. 많아야 30% 정도의 이 의원 열성 당원을 중심으로 투표하고 그 사람들 결정에 따라 민주당이 움직일 텐데 그게 직접 민주주의 구현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