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방탄 논란' 당헌 80조 개정 가닥…내홍 일촉즉발
입력: 2022.08.17 00:00 / 수정: 2022.08.17 07:43

친명·비명 갈등 고조…'당헌 뒤집기 반복' 비판도

더불어민주당이 부정부패 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 요건을 1심 유죄 판결시로 완화하는 당헌 개정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16일 민주당 의원총회 모습. /남윤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부정부패 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 요건을 '1심 유죄 판결시'로 완화하는 당헌 개정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16일 민주당 의원총회 모습.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부정부패 혐의에 연루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당헌 80조'를 개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 지도부는 '보복수사 대상 의원 보호 차원'이라며 당헌 뒤집기 명분을 밝혔지만, 비명(비이재명계) 의원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비대위 출범 이후 가라앉았던 내홍이 당헌 개정 논쟁을 계기로 되살아나면서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16일 '당헌 80조'를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관련 당헌 개정 청원이 당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지 16일 만에 응답한 것이다.

개정의 핵심은 직무 정지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는 점이다. 현행 당헌에는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기소된'이라는 부분을 '하급심 유죄시'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안규백 전준위원장은 이날 YTN 인터뷰에서 "사실 기소라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하급심이 기소되더라도 1심, 2심에서 무죄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하급심에서 법원의 판단까지 받아보는 경우에는 누구도 이의를 할 수 없지 않겠나. 수위를 그 정도로 조정하는 것이 국민의 상식에 맞겠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직자에 대한 기소가 이뤄질 경우 윤리심판원이 조사하도록 하는 조항은 유지했다. 다만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윤리심판원 의결을 거쳐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징계처분 의결 기구를 '윤리심판원'에서 '비대위 또는 최고위'가 맡도록 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유죄를 받더라도 최고위에서 징계처분을 취소할 수 있어 '제 식구 감싸기'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전준위에서 의결한 당헌 개정안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당무위, 중앙위에서 최종 확정된다. 당 지도부도 당헌을 바꿔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어 개정은 무난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헌 80조 개정에 대해 "지금 한동훈 장관 중심으로 쭉 끌고 나가는 흐름에서 약간 무모한 보복성 수사들이 꽤 있다"며 "(수사 대상 의원들은) 다음 2년 후에 총선 나가야 되실 분인데 그렇게 노출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논쟁거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피해를 주는 일이다. 그래서 저는 그런 거리를 만들어놓는 것은 손 좀 봐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치탄압이라고 의심되는 경우 징계처분을 심사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지만 이를 적용하는 것 자체로 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 위원장은 일각의 '이재명 지키기' 지적에 대해선 "(이재명 의원과 친문 진영) 양쪽 다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박 의원은 전당대회 일정을 뒤로 하고 의원총회에 참석해 당헌 80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16일 의원총회장 앞에서 참석하는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는 박 후보. /남윤호 기자
박 의원은 전당대회 일정을 뒤로 하고 의원총회에 참석해 '당헌 80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16일 의원총회장 앞에서 참석하는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는 박 후보. /남윤호 기자

당내에선 비명계 의원들 중심으로 크게 반발하고 있어 추진 과정에서 내홍으로 번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들은 당 도덕성을 높인다는 당헌의 기존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 정치탄압의 경우 징계를 취소한다는 예외조항이 이미 마련돼 있어 개정할 명분이 크지 않다는 점, 당헌 뒤집기로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고 있다.

당대표 후보인 박용진 의원은 이날 빠듯한 전당대회 일정을 뒤로 하고 의원총회에 참석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이 얘기를 공론화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유감의 말씀을 드렸고 당헌 80조 개정 관련 논의가 정치적인 자충수가 되고 우리 당의 도덕적 정치적 기준에 대한 논란 가져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말씀을 드렸다"며 "마지막 남은 것은 비대위에서 현명하게 해결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비대위 논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총에서는 박 의원을 포함해 6명 의원이 당헌 개정에 반대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파' 조응천 의원도 "저는 제 입장 다 얘기했었다. (당헌 80조 개정이) 창피하다고"라며 "전준위에 이어 비대위도 그냥 통과시킬 것 같고 이후 전당대회에서 제대로, 바로 잡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과 '이낙연계' 설훈 의원도 의총에서 당헌 80조 개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준위 회의 결과가 알려지자 일부 3선 의원들도 긴급 간담회를 열고 개정 시점이 부절절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원욱 의원은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라며 "일부 개정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지금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보편적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 의원을 비롯해 김경협·남인순·도종환·민홍철·전해철·한정애 의원 등 7명이 참석했다. 비대위원인 이용우 의원(초선)과 박재호 의원(재선), 한정애 의원(3선)은 각각 선수별 의견을 취합해 비대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당내 일각에선 당헌이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 수사'에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고려하더라도, 각종 수사망에 올라와 있는 이재명 의원을 지키려는 '방탄용'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헌 개정이 윤석열 정부의 보복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당헌 뒤집기 반복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당은 이재명 방탄 개정이라며 반격하고 있다.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이재명 의원. /이선화 기자
당헌 개정이 윤석열 정부의 '보복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당헌 뒤집기 반복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당은 '이재명 방탄 개정'이라며 반격하고 있다.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이재명 의원. /이선화 기자

실제 여당은 민주당의 당헌 개정이 현실화하자 '방탄 당헌 개정'이라며 맹비난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위인설법', '1인 사당화' 등의 반대 의견이 많은 당헌 80조 개정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대장동 및 백현동 게이트, 변호사비 대납 사건 등으로 이재명 의원이 기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은 이 의원 수호를 위한 '방탄 당헌' 개정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황 변화를 이유로 당헌 개정을 반복할 경우 당 신뢰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2020년 11월에도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를 실시할 경우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개정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냈다. 이는 선거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대선 경선이 시작된 지난해 6월에는 '대선 180일 전까지 대선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당헌·당규를 수정해 경선 일정을 미루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는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원만하고 합당하지 않나"라며 원칙론으로 당헌 개정 여론을 격파한 바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 방송에서 "박원순·오거돈·안희정 등 성 비위에 대한 사건이 났을 때 당헌·당규에 후보를 안 내게 돼 있지만 냈다.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라며 "이런 선례와 경험을 하고도 또 바꾸겠다는 것은 이 의원 방탄을 위해 당까지도 사당화돼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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