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은 대선 당시 저에 대한 자책…자괴감 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 후 약 36일 만인 13일 공식석상에 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원내대표, 장제원 의원 및 윤핵관 호소인 등을 직접 겨냥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리위 징계와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그리고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와의 메시지 등 일련의 사안들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참아야 했던 속내까지 모두 드러냈다.
그는 먼저 기자회견 일자와 관련해 산사태, 저지대 침수가 우려되는 집중호우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두고 해야 할 것 같아서 13일로 잡았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큰 선거에서 3번 연속으로 우리 국민의 힘을 지지해주신 국민이 다시 보수에 등을 돌리고 최전선에서 뛰어 승리에 일조한 당원들이 이제는 자부심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자책감을 느낀다"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저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모두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비대위 출범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선당후사 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며 "이 선당후사라는 을씨년스러운 말은 사자성어라도 되는 양 정치권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지지만, 사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쓰인 삼성가노보다도 근본이 없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그래도 유래가 있는 용어인 '선당정치'는 공교롭게도 김정은이 휴전선 이북에서 지금 사용하는 신조"라며 "선당후사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개인의 생각을 억누르고 당의 안위와 당의 안녕만을 생각하라는 이야기일 것 같다. 말하고 보니 북한에서 쓰이는 용법과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중 눈시울을 붉힌 이 대표. /뉴시스 |
그는 지난달 7일 윤리위 징계 이후 저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어차피 당 대표 축출의 목표가 선명한 그들의 뜻을 돌려세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가처분신청을 하면서 저는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다. 의도는 반민주적이었고, 모든 과정은 절대 반지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로서 진행됐기 때문"이라며 "당이 한 사람 몰아내려고 몇 달 동안 위인설법을 통해 당헌·당규까지 누더기로 만드는 과정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으며 정치사에 아주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윤핵관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180석을 가진 절대적 입법권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무리하게 뜯어고치는 시도를 막아내겠다던 당이 이제는 사람 하나 잡자고 집단린치에 이어 당헌·당규까지 졸속 개정하는 자기모순 속에 희화화되고 있다"며 "검수완박 한다고 모든 무리수를 다 동원하던 민주당의 모습과 데칼코마니 같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비상 상황을 주장하면서 당의 지도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황당한 발상으로 규정했다.
그는 또, 논란이 됐던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의 메시지 노출에 대해서도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대통령이 원내대표에 보낸 어떤 메시지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의 위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도력의 위기"라고 힐난했다.
이 대표는 "그 메시지에서 대통령과 원내대표라는 권력자들 사이에서 씹어 돌림의 대상이 되었던 저에게 어떤 사람도 그 상황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던 것은 인간적인 비극"이라고 말하면서는 눈물을 부이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또, 징계 후 페이스북을 통해 양두구육을 뜻하며 윤핵관을 겨냥한 것은 사실 일련의 상황에 대한 자책감 섞인 질책이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돌이켜 보면 저야말로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던 사람이었다"며 "선거 과정 중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을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 중에서 어디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저를 그 새끼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래도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참아야 한다고 크게 '참을 인' 자를 새기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목이 쉬라고 외쳤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저한테 선당후사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매우 가혹한 것"이라며 "선당후사란 대통령 선거 과정 내내 한쪽으로는 저에 대해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 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던 제 쓰린 마음이 여러분이 입으로 말하는 선당후사 보다 훨씬 아린 선당후사였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6일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이 대표는 "내부총질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그 표현 자체에서는 큰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저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양의 머리를 걸고 진짜 무엇을 팔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위기는 윤핵관이 바라는 것과 대통령이 바라는 것, 그리고 많은 당원과 국민이 바라는 것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는 "윤핵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 당의 우세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 때문에 딱히 더 얻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표현을 앵무새 같이 읊는 윤핵관이 조금 더 정치적인 승부수를 걸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권성동, 이철규, 장제원 윤핵관들, 그리고 정진석, 김정재, 박수영 등 윤핵관 호소인들은 윤석열 정부가 총선승리를 하는 데에 일조하기 위해 모두 서울 강북지역 또는 수도권 열세지역 출마를 선언하라"면서 "여러분이 그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절대 오세훈과 맞붙은 정세균, 황교안과 맞붙은 이낙연을 넘어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핵관들이 꿈꾸는 세상은 우리 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국정동력을 얻어서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이 아니다. 그저 본인들이 우세 지역구에서 다시 공천받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그리는 것 같다"며 "호가호위한다고 지목받는 윤핵관과 호소인들이 각자의 장원을 버리고 열세 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선언한다면 어쩌면 저는 윤핵관과 같은 방향을 향해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도권의 성난 민심을 함께 느끼면서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 동지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윤핵관들이 그런 선택을 할 리가 만무한 이상 저는 그들과 끝까지 싸울 것이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가려고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