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비 좀 왔으면"…與, 얻으려다 잃은 민심
입력: 2022.08.13 00:01 / 수정: 2022.08.13 00:01

김성원, 대국민 사과에도 봉사활동 진정성 의심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서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서 "비 좀 왔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집중호우로 전국 여러 지역이 큰 피해를 봤다. 특히 지난 8일부터 이틀 동안 장대비가 쏟아진 서울과 수도권 곳곳이 빗물에 잠겼다. 115년 이래 가장 많은 강우량이라고 한다. 막대한 재산 피해는 물론 안타깝게도 다수의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꼭 재난이 닥쳐야 사태를 수습하는 구태는 여전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영웅들이 있었다. 삽시간에 물이 불어난 다급한 상황에서도 이웃의 생명을 구하거나, 침수된 도로의 막힌 배수로를 맨손으로 뚫는 '시민 영웅'의 미담 같은 따뜻한 소식도 전해진다. 타인을 위해 자기 안위를 뒤로하거나 악화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 등 사회 곳곳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인했다.

반대로 여당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의원들은 11일 비 피해가 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일대에서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사회지도층으로서 수재민을 위로하고 부족한 일손을 보태겠다는 좋은 취지를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자리에서 비 피해를 본 주민들의 가슴을 깊게 후비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전 작업하기 전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발언을 내뱉어 공분을 샀다. 호우 피해로 망연자실한 주민들을 두 번 울리는 '망언'이었다. 당이 비상대책위원회로 체제를 전환한 이후 첫 공개 일정에 나선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김 의원이 평소에도 장난기가 있다"고 해명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당내에서도 쓴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김종혁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대변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김 의원은 수재 복구 활동이 사실은 위선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보여줬고, 그걸 감싸는 국민의힘은 내로남불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 나선 가운데 김성원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한 모습. /채널A 방송 화면 갈무리
국민의힘이 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 나선 가운데 김성원 의원이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한 모습. /채널A 방송 화면 갈무리

김 의원은 전날 사과문을 낸 데 이어 12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하다. 저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다시 한번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수해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수해 현장에서 함께하겠다"라고도 했다.

비 피해 주민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진정성'을 보이겠다는 얘기로 읽혔다. 그런데 구체성이 없었다. 김 의원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대략 3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기자들이 김 의원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쏟아낸 질문에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여론에 떠밀려 낸 대국민 사과인지, 과연 숙고한 것인지 의문이다.

주 비대위원장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꿨다. 그는 "가까운 시간 안에 비대위원장 자격으로 당 중앙윤리위원회 회부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등원하면서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정말 참담하고 국민과 당원들에게 낯을 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날 김 의원을 감싼 것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경기 포천·가평을 지역구로 둔 최춘식 의원이 사당동 현장에서 "우리는 소양댐만 안 넘으면 되니까"라고 말한 것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 의원은 "소양댐이 범람하지 않으면 지역의 피해가 없다고 발언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서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민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마가 할퀸 상처가 크다. 정전과 주택·차량·농경지 침수 등 민생 피해가 상당하다· 피해 주민들은 분노와 끝없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국민의힘 피해 복구 현장 인근에서 만난 한 상인은 "정치나 잘하라"며 울분을 토했다. 김 의원이 사죄했음에도 이미 상처받은 주민의 마음은 씻을 수 없다. 정치인이 최소한 국민에게 민폐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민심을 얻기는 어렵지만, 잃는 것은 쉽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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